‹ 목록으로 버림받은 몸인데 헌터라니

3화

홍대 게이트는 지하철역 출입구처럼 생긴 균열이었다.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가는 골목 한쪽에, 협회 표식이 붙은 임시 펜스와 함께 서 있었다. 편의점 불빛과 술집 네온사인 사이에 끼어 있는 게, 마치 원래부터 거기 있던 시설물처럼 자연스러웠다. 이런 게 서울 한복판에 아무렇지도 않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여전히 실감 나지 않았다. 펜스 앞을 지나가던 대학생 무리가 힐끗 쳐다보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지나쳤다. 저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풍경인 모양이었다. 나에게는 아니었지만. 한상철은 서른 후반쯤 되는 남자였는데, 짧은 인사 이후로는 말이 거의 없었다. 무기는 협회 대여용 단창이었고, 움직임을 보면 확실히 초보는 아니었다. 다만 어딘가 산만했다. 자꾸 스마트폰을 확인했고, 게이트 앞에서도 통화를 짧게 했다. "곧 들어갈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화면을 들여다보던 그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황급히 주머니에 폰을 넣었다. "뭐 문제 있으세요?" "아뇨. 그냥 확인할 게 있어서요." 대답이 너무 매끄러웠다. 연습한 것처럼. "들어가시죠." 그 말 한마디로 우리는 균열 속으로 발을 디뎠다. 안쪽은 예상과 달랐다. 던전이라고 해서 어둡고 축축한 동굴을 생각했는데, 홍대 게이트 내부는 이끼가 낀 지하철 통로처럼 생겨 있었다. 벽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고,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규칙적으로 떨어졌다. 똑, 똑, 똑. 일정한 박자로 떨어지는 소리가 오히려 신경을 긁었다. "여기 원래 지하철 공사하다가 발견된 거예요?" "아뇨. 게이트가 먼저 열리고, 그 안쪽 구조가 이런 형태로 생성된 겁니다. 던전마다 내부 지형이 다 다르게 나와요. 폐건물처럼 생긴 데도 있고, 숲처럼 생긴 데도 있고." "그럼 이 문자는요?" "몰라요. 협회에서도 해석 못 했어요. 그냥 장식이라고 치는 것 같던데." 세상에, 몬스터 학살 기관에서 벽에 새겨진 고대 문자 하나 제대로 해석 못 한다는 게 자랑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해는 갔다. 예산이 몬스터 잡는 데 다 들어가는데 언어학자 고용할 여유가 어디 있겠나. 슬라임은 예고대로였다. 반투명한 젤리 형태의 몬스터들이 통로 곳곳에서 흐물흐물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도현의 몸이 기억하는 감각으로 창을 휘두르니 한 방에 터졌다. 확실히 E급은 위험하지 않았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점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손목에 튄 점액이 미끈거렸다. 위험하지 않다고 해서 깨끗한 것도 아니었다. '몸 좋네. 예전에 나도 이 정도는 했었는데.' 잔재가 흥에 겨워 훈수를 뒀다. '창 각도 좀 더 눕혀봐. 그래, 그렇게. 아니 너무 눕혔잖아.' 무시하고 계속 나아갔다. 저 자칭 선배님의 조언을 들었다가 좋은 꼴 본 적이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나 슬라임 열댓 마리를 처리했을 무렵, 한상철이 걸음을 멈췄다. 시계를 확인하는 척했지만 눈은 통로 안쪽을 향해 있었다. "저쪽으로 좀 더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의뢰서엔 여기까지라고 되어 있는데요." 의뢰서를 실제로 본 건 아니었다. 이도현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협회 의뢰는 대개 A4용지 한 장짜리 표준 양식이었고, 진입 구간과 예상 몬스터 종류, 회수 예정 시간까지 명확히 적혀 있었다. 그 이상으로 들어가는 건 명백한 규정 위반이었다. "확인할 게 하나 있어서요." "확인할 게 뭔데요?" "가보면 압니다." 대충 넘어가려는 말투였지만, 궁금증이 거절할 명분보다 컸다. 게다가 여기서 혼자 돌아가겠다고 하면 저 창 든 남자가 순순히 놓아줄 것 같지도 않았다. 일단은 따라갔다. 통로가 점점 넓어지면서 바닥이 이상해졌다. 슬라임의 점액 흔적이 아니라, 뭔가 무거운 것이 끌려간 흔적이 벽을 따라 길게 새겨져 있었다. 폭이 사람 몸통 세 배쯤 됐다. 흔적을 따라 걸으니 발밑에서 자갈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이거 슬라임이 낸 흔적이 아닌데요." 한상철은 대답 없이 손전등으로 흔적을 훑었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한상철 씨." "…예." "이거 뭐 아세요?" "모릅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모른다는 사람의 목소리가 저렇게 흔들릴 리 없었다. '저 사람 방금 무서워한 거 맞죠? 나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죠?' 동의했다. 흔적의 끝에서 나는 냄새가 문제였다. 습기와 부패가 뒤섞인, 슬라임 특유의 미끄덩한 냄새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악취였다. 코를 찌르는 정도가 아니라, 목구멍 안쪽까지 눅눅하게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이 냄새, 익숙한데.' '익숙해요? 뭔데요?' '몰라. 그냥 익숙하다고.' 도움이 안 되는 대답이었다. "협회 자료에는 이런 게 없었는데요." "자료가 다 틀린 건 아니고요. 며칠 전부터 이 던전에 뭔가 새로 들어온 것 같긴 한데, 정확히 뭔지는 저도 몰라요." "몰랐다고요? 근데 왜 들어온 거예요?"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요." 같은 대답이 반복됐다. 앵무새도 이보다는 다양하게 말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 확인할 게 대체 뭔데요."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라서요."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확신이 굳어졌다. 나는 등급 재심사 대상자였고, 규정상 단독으로 여기까지 못 들어와야 했다. 협회 시스템상 재심사 대상자는 반드시 감독관 동행 아래 지정 구간 내에서만 움직여야 한다는 게 이도현의 기억에도 명확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한상철은 이미 뭔가를 알고 여기까지 유도했다. 이건 규정 위반이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된 일탈이었다. 그 순간 스마트폰 진동이 그의 재킷 안에서 울렸다. 한상철이 흠칫 놀라 화면을 확인하고는, 통로 구석으로 몸을 돌려 짧게 통화를 시작했다. 목소리를 낮췄지만 좁은 통로 안이라 다 들렸다. "···네, 여기 맞아요.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예, 서윤 씨한테는 곧···." 서윤. 그 이름 하나가 모든 걸 설명해줬다. 강서윤. 나를 재심사 명목으로 감시하겠다고 나섰던, 그 새하얀 정장 차림의 여자. 한상철은 협회 소속으로 위장한, 강서윤 쪽 사람이었다. 왜 여기까지 나를 끌고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계산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뭐라고 정리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설마 여기서 나 죽이려는 거 아니겠지.' '모르지. 던전 안에서 죽으면 다 몬스터 짓으로 처리되잖아.' 잔재의 말이 틀린 게 없어서 더 소름이 돋았다. 협회 규정상 던전 내 사망은 대부분 몬스터 습격으로 종결됐다. 목격자도, 증거도 남기기 어려운 구조였다. 만약 강서윤이 진짜로 나를 없애고 싶었다면, 이보다 완벽한 장소가 없었다. '근데 그럴 거면 왜 굳이 저런 어설픈 사람을 붙였을까.' 일리 있는 의문이었다. 진짜로 죽일 생각이었다면 좀 더 능숙한 사람을 붙였을 텐데. 한상철의 저 산만함과 초조함은, 뭔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 쪽으로 계산을 기울게 했다. 답을 낼 시간이 없었다. 그때, 통로 끝쪽에서 낮은 진동이 울렸다. 발밑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지진이 아니라 뭔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진동이었다. 물방울이 떨어지던 박자가 깨졌다. 천장에서 흙먼지가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 한상철이 전화를 끊고 이쪽을 돌아봤다. 얼굴이 완전히 하얘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의 여유는 흔적도 없었다. "···어, 저건 원래 이렇게 빨리 오면 안 되는데." "뭐가요?" 목소리가 예상보다 날카롭게 나왔다. 대답 대신 한상철이 뒷걸음질을 쳤다. 창을 떨어뜨린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챙, 하고 창이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는데도 주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건 E급이 아니에요." 그 말과 동시에 통로 저편에서 뭔가 거대한 것이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벽을 긁으며 끌리는 육중한 무게감, 그리고 그 아래에서 울려오는 낮은 숨소리. 숨소리라고 부르기엔 너무 컸다. 마치 거대한 풀무가 한 번씩 열리고 닫히는 것 같은, 저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공기가 통로를 타고 밀려오는 소리였다. 숨이 턱 막혔다. 이건 계산에 없던 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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