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어머니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이불이며 책상이며 손에 잡히는 대로 다 뒤졌다. 서랍을 열었다가 소리 나게 닫고, 옷장 문을 열어 옷걸이를 흔들어보고, 침대 밑까지 몸을 숙여 들여다봤다. 뭔가를 찾는 게 아니라, 화를 낼 대상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정작 화를 낼 대상은 침대에 걸터앉아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데도.
"엄마, 저 괜찮아요."
일단 이 말부터 던졌다. 낯선 몸으로 낯선 사람 앞에서 낯선 역할극을 해야 한다는 게 어처구니없었지만, 어색한 티를 내는 것보다는 나았다. 목소리 톤부터 잡아야 했다. 이도현이라면 이럴 때 어떤 억양으로 말했을까, 그런 걸 실시간으로 계산하며 말하는 기분은 생각보다 피곤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손목이 그게 뭐야, 회사 사람들 보기도 민망하고, 서윤이네 부모님한테는 뭐라고 설명해!"
서랍을 뒤지던 손이 멈췄다. 어머니는 이제 나를, 정확히는 붕대로 감긴 손목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걱정이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걱정과 짜증의 비율을 따지자면 일 대 구 정도는 되어 보였다.
서윤이네 부모님. 그 대목에서 대화의 구조가 명확해졌다. 이도현의 부모는 강서윤과의 관계를 성사시키는 데 인생을 걸었고, 아들의 자살 시도조차 그 계획에 흠이 생긴 것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람이 살고 죽는 문제가 남의 집 체면 문제로 환산되는 걸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기분이란 게, 생각보다 담담했다. 이미 남의 몸에 들어와 있는 시점에서 놀랄 게 뭐가 더 있겠나 싶기도 했고.
"저 그냥 좀 쉬고 싶어요."
"쉬긴 어딜 쉬어! 다음 주에 서윤이랑 겐지스 그랜드 예약해놨는데, 거기서 청혼이라도 하려면 지금부터 몸 만들어야지. 얼굴이 그게 뭐야, 살도 빠지고, 눈 밑도 이게 뭐고. 그리고 협회 등급 재심사도 신청해놨으니까 이번 주 안에 가서 봐, 알았지? 서윤이네 오빠가 벌써 B급이래. 넌 도대체 몇 년째 E급이니."
말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중간에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 화법이었다. 회사에서 그런 상사를 몇 번 겪어봤다.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상대가 대답하기 전에 결론까지 다 밀어붙이는 유형.
이 몸의 원주인은 청혼을 앞둔 남자였다. 그런데 정작 여자 쪽은 결혼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선언하고 떠난 상태였다. 부모는 그 사실을 아직 모르거나, 알면서도 없었던 일처럼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어느 쪽이든 정상은 아니었다. 겐지스 그랜드가 어디인지도 몰랐지만, 예약이라는 말이 나온 걸 보면 꽤 비싼 곳이라는 것만은 짐작이 갔다.
"엄마, 서윤이는 저랑 끝났어요."
그 말을 하자 어머니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무너졌다가 곧 짜증으로 바뀌었다. 표정이 바뀌는 속도가 인상적이었다. 무너지는 데는 반박자, 짜증으로 복귀하는 데는 반박자. 그 사이에 슬픔이 낄 자리가 없었다.
"그건 네가 자꾸 못난 소리를 하니까 그런 거지. 잘 좀 해봐, 어? 서윤이 아버지가 얼마나 큰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지 몰라서 이래? 네 등급 좀 올려서 인정만 받으면 다 해결돼.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했잖아, D급만 돼도 서윤이네 집에서 다시 볼 거라고."
해결의 방향이 늘 한쪽으로만 흐른다는 게 흥미로웠다. 문제의 원인도 해결도 언제나 이도현이었다. 이 사람들 안에서 아들은 계약을 지키기 위한 담보였고, 계약 상대의 마음에 안 들면 담보를 더 다듬어서 다시 내놓으면 되는 거였다. 등급을 올리라는 말은 담보 가치를 높이라는 말과 똑같이 들렸다. 사람을 상품처럼 취급하는 대화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듣고 있자니, 이 집에서 얼마나 오래 반복된 패턴인지 짐작이 갔다.
"협회는 알겠어요. 갈게요."
반박은 나중으로 미뤘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돈이었고, 돈을 벌 방법은 이 몸이 원래 갖고 있던 헌터 자격뿐이었다. 화를 내는 건 사치였다. 이 상황에서 감정을 소모할 여유가 없다는 계산이 먼저 섰다. 어머니는 그 말에 그나마 진정된 얼굴로 방을 나갔고, 나가면서도 서윤이 얘기를 두 번 더 반복했다. 겐지스 그랜드 예약 시간, 서윤이가 좋아하는 색깔, 서윤이 오빠의 등급까지.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대화의 절반은 서윤이었다.
문이 닫히자 머릿속에서 잔재가 다시 말을 걸었다.
'저 여자 항상 저래요. 뭐 하나만 물으면 다 서윤이로 끝나요. 밥 먹었냐고 물어도 서윤이 얘기, 잠 잘 잤냐고 물어도 서윤이 얘기. 그러니까 나도 어느 날 그냥, 확 놓아버리고 싶었던 거고.'
말투는 여전히 능글맞았지만, 그 뒤에 붙은 말은 조금 다른 온도였다.
'덕분에 그쪽이 대신 살아주게 됐네요. 잘해봐요.'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위로할 마음도 없었고, 위로받을 처지도 아니었다. 대신 몸을 일으켜 옷을 갈아입었다. 옷장 안에는 셔츠와 슬랙스만 가득했다. 던전 탐사용 옷은 따로 있을 텐데, 그건 어디 있는지 짐작도 안 갔다. 일단 활동하기 편한 옷을 대충 골라 입고 지갑과 신분증을 챙겼다.
협회부터 가봐야 했다. 지금 이 몸의 유일한 자산은 E급 헌터 자격증이었고, 그 자격증으로 뭘 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알아야 뭘 계산하지. 등급이 뭘 의미하는지, 던전이 뭘 의미하는지, 삼십만 원이 큰돈인지 작은 돈인지도 이 몸의 경제 사정을 봐야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서울던전탐사자협회 종로지부는 생각보다 관공서처럼 생겼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은행 창구를 닮은 대기 공간이 나왔고, 벽에는 등급표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대기 번호표를 뽑고 앉아 있으니 벽에 붙은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등급은 F부터 S까지, 게이트는 등급별로 분류되고, 헌터는 자기 등급 이하의 던전에만 단독 출입이 허가된다. 그 이상은 협회 소속 파티나 정규 인력이 함께 투입돼야 한다. 옆에는 등급별 평균 보수 표까지 붙어 있었는데, F급과 S급의 숫자 차이가 어이없을 정도로 컸다. E급은 그 표에서도 거의 바닥 줄에 있었다.
번호가 불리자 창구로 갔다. 담당자 명패에 박정우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사십 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눈빛이 유난히 사무적이라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관찰하는 습관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류를 넘기는 손짓도 딱딱했다. 오래 이 일을 한 사람 특유의, 감정을 절약하는 손짓.
"이도현 씨, E급 재심사 신청하셨네요."
"네."
"손목은 왜 그러셨어요?"
직설적인 질문에 잠깐 말이 막혔다. 준비했던 대답이 있었는데도 순간적으로 목이 잠기는 느낌이었다.
"업무 스트레스요."
"업무 스트레스로 그 정도까지 가는 헌터는 잘 없는데."
박정우는 서류를 뒤적이며 별 감정 없이 말했다. 캐묻겠다는 건지 그냥 사실을 확인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표정도 목소리도 한 가지 온도로 고정된 사람이었다.
"재심사는 다음 주에 예약 잡아드릴 수 있고, 그전에 실전 감각 확인하실 거면 저위험 의뢰 하나 넣어드릴게요. 홍대 게이트, E급, 슬라임 무리 정리. 반나절짜리고 보수는 삼십만 원."
삼십만 원. 이 몸의 마이너스 통장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슬라임이라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는 채로 계산기부터 두드리는 스스로가 좀 웃겼다.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가장 정직한 반응이었다.
"할게요."
"좋아요, 신중하시네. 다른 신청자들은 다들 등급 올려달라고 조르는데, 이도현 씨는 좀 다르네요."
박정우가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슬쩍 웃었다. 그 웃음도 딱 필요한 만큼만, 인색하게.
"참고로 파티원 한 명 붙여드립니다. 협회 규정상 재심사 대상자는 단독 투입 안 돼요. 한상철이라는 분인데, 경력 좀 있으니 믿고 다녀오세요. 게이트 입구에서 두 시에 뵙기로 잡아드릴게요."
경력 좀 있다는 말이 정확히 뭘 뜻하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어차피 만나면 알게 될 일이었다.
서류를 받아 나가려는데 박정우가 짧게 덧붙였다.
"아, 그리고 홍대 게이트가 최근에 몇 번 이상 보고가 올라왔다는데, 큰 건 아니라니까 걱정 마시고요."
걱정 마시라는 말은 대체로 걱정할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회사원 시절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항상 뒤가 있었다. 팀장이 "별거 아니니까 걱정 마"라고 말한 다음 날은 늘 야근이었다.
"이상 보고가 뭔데요?"
"별거 아니에요. 슬라임 개체수가 좀 늘었다는 정도. 원래 그 게이트가 좀 그런 편이라."
원래 그런 편이라는 말도 딱히 안심되는 문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캐물어봤자 박정우가 더 자세한 정보를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서류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회를 나서면서 잔재가 다시 낄낄댔다.
'저 아저씨 말투 봤어요? 저거 딱 뭔가 숨기는 사람 말투인데. 걱정 마시라는 말 세 번 하면 진짜 걱정해야 되는 거예요, 이 바닥 국룰.'
동의하고 싶지 않았지만, 동의했다. 유리문을 밀고 나오자 오후의 볕이 눈을 찔렀고, 시계는 벌써 열두 시를 넘기고 있었다. 두 시까지 홍대로 가려면 지금 움직여야 했다. 한상철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슬라임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나는 협회 건물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