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다음 날 아침, 마을에 소식이 전해졌다.
이도현은 공방에서 그 소식을 처음 들었다.
공방 안은 늘 그렇듯 말린 약초와 광물 가루 냄새로 가득했다.
천장 가까이 매달아 둔 약초 다발에서는 씁쓸한 향이 배어 나왔고, 선반 위에는 색색의 증류액이 담긴 유리병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한쪽 화로에서는 달궈진 강화석이 희미한 푸른빛을 내뿜었다.
이도현은 그 냄새와 빛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좋았다.
금속 집게로 강화석을 고정하고, 마력 각인침으로 표면의 문양을 정교하게 다듬고, 포션의 색과 점도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시간. 그것은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손님으로 온 정착민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가끔 포션이나 강화석을 점검받으러 오던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작업대 위에 금이 간 강화석 하나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으며 말을 건넸다.
"이거 좀 봐주실 수 있어요?"
"네. 어디가 문제입니까?"
"며칠 전부터 빛이 약해지더니, 오늘 아침에는 금까지 갔어요."
이도현은 강화석을 받아 들고 표면에 난 균열을 살폈다.
내부의 마력이 고르게 순환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몰려 있었다. 오래 사용한 탓에 각인 일부도 희미하게 닳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화석을 금속 받침대 위에 고정했다.
정착민은 잠시 공방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김태호 선생님, 아시죠?"
"네."
이도현의 손은 여전히 마력 각인침을 쥔 채였다.
큰 기대 없이 되묻는 목소리였다.
"그분, 요즘 안 보이시더라고요. 혹시 소식 들으셨어요?"
"아니요. 왜요."
"그분, 돌아가셨대요."
손끝의 각인침이 바닥에 떨어졌다.
쨍, 하고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공방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정착민은 흠칫 놀란 얼굴로 이도현을 바라보았다.
"언제요."
이도현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5년 전이라던데. 신의 징벌이었다고. 저도 얼마 전에 다른 사람한테 듣고서야 알았어요."
5년 전.
마을 광장에서 김태호가 신에게 저항을 선언한 그날.
이도현은 그날을 잊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잊으려고 애썼던 날이었다.
광장에 세워진 낡은 단상.
사람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그 위에 올라선 김태호의 뒷모습.
그는 늘 조용한 사람이었다.
말수가 적고, 필요한 말만 정확하게 하는 사람.
그런 그가 그날은 목소리를 높였다.
"신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 옳은 겁니까."
광장에 있던 모두가 숨을 죽였다.
누군가는 그를 말리려 했고, 누군가는 겁에 질려 자리를 떴다.
이도현과 서지우는 그 무리 속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겨우 학생이었을 때였다.
그때는 그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김태호는 그날 밤, 마을 사람들 앞에서 다시 한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옳지 않은 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신이라 해도."
그 말이 끝난 직후, 하늘이 울렸다.
웅—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김태호의 마지막이었다.
5년이 지나서야, 이도현은 그 사실을 알았다.
무릎이 살짝 꺾였다.
그는 차가운 금속 작업대를 짚고 몸을 지탱했다.
손님이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하지만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손님이 돌아간 뒤에도 이도현은 한동안 작업대 앞에 서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각인침을 주워 들었지만, 손에 아무 감각이 없었다. 말린 약초의 씁쓸한 향도, 광물 가루의 텁텁한 냄새도, 증류액에서 피어오르던 알싸한 향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그날 밤의 진동만이 귓가에 되살아났다.
---
그날 오후, 서지우가 정찰에서 돌아왔다.
이도현은 공방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그녀의 걸음이 눈에 들어왔다.
어깨를 가로지른 검집과 갑옷 대신 걸친 가죽 조끼는 흙먼지와 습기로 얼룩져 있었다. 검집 끝에는 마른 진흙이 묻어 있었고, 머리카락 몇 가닥은 땀에 젖어 이마에 눌어붙어 있었다.
정찰이 순탄치 않았던 흔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표정이었다.
평소라면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다가왔을 텐데, 오늘은 그저 바닥만 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이도현이 먼저 다가갔다.
"들었어?"
"들었어."
서지우가 짧게 답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이 필요 없는 침묵이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각자의 머릿속에는 같은 장면이 지나가고 있었다.
"5년이나 지나서야 알게 됐네."
이도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소식이 늦게 전해진 게 아니라, 아무도 감히 물어보지 못했던 거겠지."
서지우가 답했다.
그 말에 이도현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서지우는 검을 벽에 기대어 놓고 조끼를 벗어 의자 위에 던졌다. 땀 냄새와 흙 냄새가 약초와 광물 가루의 향에 뒤섞여 좁은 공방을 채웠다.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김태호 선생님, 우리한테 늘 그랬잖아. 옳지 않은 건 옳지 않다고."
"응."
"우리가 처음 여기 왔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무서워하던 우리한테 제일 먼저 다가와준 사람이었잖아."
"그랬지."
서지우는 눈을 뜨고 이도현을 바라보았다.
"근데 그것 때문에 죽었어."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도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정찰의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거역하면 죽는다는 게, 진짜였네."
그가 말했다.
"응. 진짜였어."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공방 밖에서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 다름없는 마을의 소리였다.
그 평온함이 오히려 두 사람의 마음을 더 무겁게 눌렀다.
이도현이 낮게 물었다.
"우리도 언젠가 저렇게 되는 거 아닐까."
"뭐가."
"신한테 밉보이면.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서지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도현의 손을 더 세게 붙잡았다.
그때, 마을 전체에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머릿속이 아니라, 실제로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듣거라.]
모든 정착민이 걸음을 멈췄다.
공방 밖에서 놀던 아이들도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누군가는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렸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왕 토벌이 완료되었다.]
마을 곳곳에서 낮은 함성이 터졌다.
누군가는 울음을 터뜨렸다.
멀리서 누군가 소리쳤다.
"드디어! 드디어 끝났어!"
그 외침에 이어 여기저기서 웃음소리와 흐느낌이 뒤섞여 퍼져 나갔다.
이도현과 서지우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5년, 아니 정확히는 지금까지 헤아려 온 시간 전체의 무게가 그 짧은 시선 속에 담겨 있었다.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던 날, 아무것도 모른 채 손을 맞잡았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너희는 이제 원래 세계로 귀환할 자격을 얻었다.]
환호가 더 커졌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누군가는 옆 사람을 끌어안고 울었다.
하지만 이도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상해."
그가 낮게 말했다.
"뭐가."
"너무 갑작스러워. 준비할 시간도 없이."
서지우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지금까지 우리한테 뭘 준비하라고 알려준 적이 없었잖아. 5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런데 갑자기 이런 발표를 한다는 게."
"뭔가 이상해."
두 사람의 불안은 근거가 있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신은 침묵으로만 대답했다.
경고도, 예고도 없이 벌을 내렸고, 설명도 없이 축복을 거두었다.
그런 존재가 이제 와서 이토록 상세하게, 이토록 시원스럽게 소식을 전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귀환은 즉시 시행된다.]
그 문장이 하늘에 새겨지듯 울린 순간, 마을 전체가 다시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빛은 처음에는 옅은 안개처럼 마을 가장자리에서부터 스며들었다.
그러다 순식간에 밀도를 더해가며 공방 안까지 밀려들었다.
이도현의 손끝에 닿아 있던 차가운 금속 작업대의 감촉이 서서히 흐려졌다. 공방을 채우고 있던 말린 약초와 광물 가루, 증류액의 냄새마저 빛에 씻겨 나가는 듯했다.
선반에 놓인 포션 병들이 빛을 반사하며 일제히 희게 번졌다.
화로 위의 강화석도 마지막으로 푸른빛을 깜빡인 뒤 형태를 잃어 갔다.
이도현은 반사적으로 서지우의 손을 잡았다.
5년 전, 처음 교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때도 아무것도 몰랐고, 지금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은, 지금 잡은 손의 온기가 그때보다 훨씬 익숙하다는 것뿐이었다.
"준비도 없이 이대로 끝나는 거야?"
이도현이 물었다.
대답할 시간은 없었다.
빛이 두 사람을 완전히 삼켰다.
시야가 하얗게 지워지는 그 순간에도, 이도현의 머릿속에는 김태호의 마지막 말이 맴돌았다.
옳지 않은 건 옳지 않다고.
그 말을 남기고 사라진 사람.
그리고 지금, 아무 설명도 없이 자신들을 삼키는 빛.
이 두 가지가 어쩐지 같은 곳에서 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손끝에 닿은 서지우의 온기만이 유일하게 남은 확신이었다.
사람은 믿는 만큼만 본다.
하지만 지금 이도현이 보고 있는 빛은, 믿고 싶지 않아도 온몸을 잠식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