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짐승은 곧게 달려왔다.
네 발로, 그러나 사람보다 두 배는 큰 몸으로.
이빨은 손가락 두 개 굵기였다.
등줄기를 따라 뻣뻣한 털이 곤두서 있었다.
발굽이 땅을 찍을 때마다 흙먼지가 튀어 올랐다.
누군가 뒤늦게 뛰기 시작했다.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누군가는 넘어졌고, 누군가는 그 위를 밟고 지나갔다.
울음소리와 발소리가 뒤섞여 하나의 소음이 되었다.
이도현은 몸이 굳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뛰어야 한다는 말이 계속 울렸다.
하지만 명령은 다리에 닿지 못했다.
눈앞의 짐승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서지우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뛰어!"
짧은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에 몸이 겨우 움직였다.
발이 땅을 밀어내는 감각이 뒤늦게 돌아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소리가 귓속까지 울렸다.
두 사람은 능선 반대편으로 달렸다.
발밑의 풀이 젖어 있었다.
미끄러질 뻔한 순간, 서지우가 그의 옷깃을 붙잡아 세웠다.
뒤에서 비명이 계속 들려왔다.
날카로운 것도 있었고, 곧 끊기는 것도 있었다.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돌아보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긁었다.
따가움이 느껴졌지만 손으로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서지우의 숨소리가 옆에서 거칠게 들렸다.
그녀도 지쳐 있었다.
그러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달리는 도중 눈앞에 다시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직업을 선택하십시오.]
[연금술사 - 물질의 재구성을 다루는 자.]
[전사 - 강인한 육체로 전선에서 적과 맞선다.]
[검사 - 근력과 검술로 적을 벤다.]
[궁수 - 원거리에서 적을 저격한다.]
선택할 시간이 없었다.
글자를 읽을 틈도 없었다.
하지만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도현의 손끝에서 옅은 빛이 번졌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낯선 감촉이었다.
빛이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흐르며 작은 소용돌이를 그렸다.
연금술사, 라는 글자가 눈앞에 박혔다.
서지우는 옆에서 넘어질 뻔한 몸을 바로 세우며 손을 뻗었다.
손바닥에 검은 빛이 응축되었다.
빛이 길쭉하게 늘어나며 검의 형상을 갖췄다.
손잡이 부분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검사, 라는 글자가 그녀의 눈앞에도 박혔다.
"이게 뭐야."
서지우가 검을 쥔 손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몰라. 그런데 무기 같아."
이도현이 답했다.
그도 자신의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빛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남아 있다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등 뒤에서 짐승의 그르렁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땅이 진동하는 것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서지우는 발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먼저 가."
"뭐?"
"내가 막을게."
이도현은 그녀의 팔을 잡았다.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안 돼."
"시간 없어."
서지우의 눈은 이미 짐승을 향해 있었다.
망설임이 없는 눈이었다.
"이런 걸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이도현이 다급하게 말했다.
"모르겠지만 해봐야지."
그녀가 검을 고쳐 쥐었다.
"넌 뒤에 있어. 방해하지 마."
짐승이 도약했다.
공기가 순간 무거워졌다.
서지우가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검이 짐승의 앞다리를 갈랐다.
날이 살을 파고드는 소리가 짧고 선명하게 울렸다.
피가 튀었다.
검은 피였다.
짐승이 포효하며 물러섰다.
포효는 귀를 찢을 듯 날카로웠다.
이도현은 반사적으로 두 팔로 귀를 감쌌다.
그 짧은 순간에도 서지우는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서지우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검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겁이 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손끝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숨은 짧고 가빴다.
짐승은 상처 입은 다리를 절며 물러났다.
그러나 완전히 물러가지는 않았다.
붉은 눈이 여전히 두 사람을 응시하고 있었다.
"됐어. 이제 가자."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지만, 걸음은 확고했다.
두 사람은 다시 뛰었다.
등 뒤에서 짐승의 그르렁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멀어진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
그날 밤, 살아남은 학생들은 작은 동굴에 모였다.
동굴 안은 축축했고 돌 냄새가 났다.
발밑에서 물기가 배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마흔한 명 중 서른일곱 명이었다.
누군가 인원을 세는 목소리가 낮게 흘렀다.
한 명, 두 명, 셋……
숫자를 세는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네 명의 이름이 조용히 불렸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름을 부른 사람의 목소리가 마지막에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아졌다.
강민준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두 눈은 뜨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는 눈이었다.
박지훈은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어깨가 가끔 들썩였다.
한소연은 눈물을 참는 듯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고 있었다.
윤서아는 그런 한소연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다.
손끝으로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릴 뿐이었다.
윤서아의 눈앞에는 낮부터 사라지지 않은 글자가 떠 있었다.
[전사]
무기가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대신 온몸의 근육과 뼈에 이전보다 단단한 힘이 깃든 감각이 선명했다.
윤서아는 자신이 육체 강화와 근접 전투에 특화된 직업으로 각성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동굴 한쪽에서는 누군가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누구인지 확인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확인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이도현은 동굴 입구에 서서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뗄 수 없었다.
낮의 장면들이 자꾸 눈앞에 겹쳐 떠올랐다.
쓰러진 사람들, 뛰어가던 발, 끊긴 비명들.
서지우가 다가와 옆에 섰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검이 들려 있었다.
빛은 사그라들었지만 형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죄책감 느끼지 마."
그녀가 말했다.
"넌 아무도 못 구했을 상황이었어."
"알아."
이도현이 답했다.
"그런데 자꾸 생각나."
"뭐가."
"멈춰 있던 다리."
그가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뛰어야 했는데, 못 뛰었어. 네가 잡아주지 않았으면 나도……."
서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을 살짝 쥐었다.
손끝이 아직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오히려 그를 진정시켰다.
"손이 아직 떨려."
이도현이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괜찮아."
"안 괜찮아 보이는데."
"됐어. 신경 쓰지 마."
서지우가 손을 빼려 하자 이도현이 오히려 그 손을 더 꽉 잡았다.
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굴 안쪽에서 강민준이 낮게 물었다.
"내일은 뭘 해야 하는 거야."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질문은 허공에 떠 있다가 그대로 흩어졌다.
박지훈이 무릎에서 얼굴을 들었다.
"그 창이 다시 뜨겠지. 뜨면 그때 알겠지."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한소연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살 수 있는 거예요?"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이었다.
확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윤서아가 그녀의 어깨를 더 세게 감쌌다.
"살아야지."
짧은 대답이었다.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동굴 밖에서 다시 그르렁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하나가 아니었다.
소리는 겹쳐서 울렸고, 서로 다른 방향에서 다가오는 듯했다.
이도현과 서지우는 동시에 몸을 돌렸다.
서른일곱 명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누군가의 숨소리가 멈췄다.
누군가는 뒤로 물러나며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동굴 어귀에 붉은 눈동자 두 개가 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오직 그 두 눈만이 선명했다.
크기로 보아 낮에 상대했던 짐승보다 훨씬 컸다.
몸의 윤곽조차 어둠에 섞여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눈만은 또렷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서지우가 검을 다시 고쳐 쥐었다.
손끝의 떨림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도현의 손끝에서 다시 옅은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경고: 상급 개체가 근접했습니다.]
눈앞에 뜬 붉은 경고문이 그렇게 알려주고 있었다.
글자는 붉은빛을 내며 허공에 박혀 있었다.
누구도 그 글자를 지울 수 없었다.
강민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지훈도 무릎을 펴며 일어났다.
한소연과 윤서아는 서로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뒤로 물러났다.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동굴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땅을 딛는 소리가 낮에 들었던 것보다 훨씬 무거웠다.
본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는 계속 봐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