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방문 안쪽에서 유리 조각이 흩어지는 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소리였다.
연달아 두 번, 그리고 침묵.
박철수가 문틀을 잡고 안을 들여다봤다.
"준서야!"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절대 내지 않을 소리였다.
나는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어두웠다.
창문의 천을 걷어내지 않은 지 오래된 공기가 코를 찔렀다.
습하고, 곰팡이 냄새가 섞여 있었다.
사람이 오래 머문 방의 냄새가 아니었다.
사람이 오래 갇혀 있던 방의 냄새였다.
바닥에는 깨진 소주병이 흩어져 있었다.
셋.
아니, 넷.
빈 병들이 방구석에 쌓여 있는 것도 보였다.
준서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손에는 유리 조각을 쥐고 있었다.
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손목에 얕은 상처가 나 있었다.
피가 조금 흐르고 있었지만, 깊지는 않았다.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상처처럼 보였다.
망설임이 남긴 얕은 선.
죽으려는 사람의 상처가 아니었다.
죽지 못하는 사람의 상처였다.
"이놈아!"
박철수가 소리를 지르며 준서에게서 유리 조각을 빼앗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이, 아들의 손보다 더 심하게 떨렸다.
김순자가 방문 앞에서 무너지듯 앉았다.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낮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울음이었다.
"준서야, 왜 이래, 왜 이래…"
같은 말이 반복됐다.
대답을 바라는 말이 아니었다.
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벽만 바라봤다.
그 눈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분노도, 슬픔도, 두려움도 없었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눈이었다.
나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손목을 살폈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방치하면 감염될 수 있었다.
손끝에 남은 미약한 마력을 모았다.
아주 조금이었지만, 상처를 아물게 할 정도는 됐다.
20년 동안 몸에 새겨진 감각이었다.
전장에서 동료의 상처를 봉합할 때 쓰던 그 감각.
이런 곳에서, 이런 상처에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마력을 흘려 넣었다.
상처가 서서히 닫혔다.
살갗이 아물고, 붉은 선이 사라졌다.
준서가 그 광경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처음으로 눈에 뭔가가 담겼다.
놀람이었다.
"뭐 하는 거요."
"상처를 치료했습니다."
"약초가 아닌데."
그가 손목을 만져보며 중얼거렸다.
상처가 흉터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손목을 몇 번이나 뒤집어 봤다.
"당신 뭐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을 마주 봤다.
"살고 싶지 않은 겁니까."
준서가 시선을 피했다.
그 회피가 대답이었다.
"그냥, 사라지고 싶었소."
"이렇게라도, 뭐라도 느끼고 싶었소."
"아무것도 안 느껴지니까."
그 말이,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 20년 동안 비슷한 감각을 여러 번 느꼈다.
전투 중에 죽음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데 느껴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다.
검을 맞대고, 목숨이 오가는 순간에도 심장이 뛰지 않았다.
느껴야 하는데 느껴지지 않는다.
그 공백이, 감정보다 더 무서웠다.
준서도 그런 상태에 있었다.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은.
그 어느 쪽으로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
박철수와 김순자가 방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준서와 마당에 나와 앉았다.
해가 뜨고 있었다.
하늘 끝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몇 시입니까."
"오전 6시요."
준서가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무릎에 팔을 올리고, 그 위에 턱을 얹었다.
피곤함이 온몸에서 배어나오는 자세였다.
오전 6시 07분.
새 우는 소리가 담장 너머에서 들려왔다.
"당신은 왜 여기 있소."
"돌아갈 곳이 없어서요."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게 뭔지 압니까."
준서가 처음으로 나를 제대로 봤다.
눈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안다고 착각하지 마시오."
"당신은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잖소."
"나는 아니오."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오래 눌러둔 말이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여기서 나는, 부모님한테 짐이고, 마을에서는 병신이고, 어디에도 쓸 데가 없소."
"차라리 없어지면 다들 편해질 거요."
말을 뱉고 나서, 준서는 다시 고개를 떨궜다.
자신이 뱉은 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그 말을 듣고, 문득 어떤 생각이 명확한 형태로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부터 머릿속 어딘가에 있던 생각이었다.
말로 꺼낸 적은 없었지만, 이미 계산은 끝나 있었다.
"만약 완전히 다른 곳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준서가 눈을 찌푸렸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만약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못 하는 걸, 완전히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다면."
"아무도 당신을 병신이라 부르지 않는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준서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며칠 전의 침묵과는 조금 달랐다.
경멸이 아니라, 의구심이 섞여 있었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오전 6시 15분.
해가 마당 절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런 곳이 있소."
목소리에 확신이 없었다.
질문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되묻는 말투였다.
"있습니다."
"단, 이곳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준서가 나를 뚫어지게 봤다.
그 시선이 오래 이어졌다.
"당신, 진짜 뭐요."
나는 대답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여기서, 지금 이대로 계속 살고 싶습니까."
준서가 고개를 저었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아니오."
"그런데 그것도 못 하고 있잖소."
"죽는 것도 못 하고, 사는 것도 못 하고."
그 말에, 뭔가가 가슴을 찔렀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준서의 말이 아니라, 준서의 상태가 그랬다.
죽음도, 삶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
그 자리에 멈춰서, 시간만 흘려보내는 사람.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이 순간 이후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준서의 삶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말이 될 것이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지우고, 그 자리에 다른 삶을 채워 넣는 제안.
머릿속으로 계산이 스쳐 갔다.
이 계약이 성립되면, 준서라는 이름은 여기서 끝난다.
박철수와 김순자의 아들이라는 자리도, 마을에서 병신이라 불리던 청년이라는 자리도, 전부 사라진다.
그 빈자리를, 다른 존재가 채운다.
망설임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건 단순한 거래가 아니었다.
사람의 삶을 통째로 매입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준서는 지금, 자신의 삶을 스스로 놓아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틈이, 지금 열려 있었다.
"제안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준서가 나를 봤다.
경계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이었다.
"내가 아는 곳이 있습니다."
"이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다른 법칙이 통하는 곳입니다."
"거기서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준서의 눈빛이 흔들렸다.
의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닫혔다.
오전 6시 22분.
새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대신, 당신은 이곳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합니다."
"이 몸으로, 이 이름으로는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당신 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채우게 될 겁니다."
준서가 나를 오래 바라봤다.
입을 열려다, 다시 닫았다.
그 반복이 세 번쯤 이어졌다.
말을 고르는 게 아니라, 말을 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먼 산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해가 완전히 떠올라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빛이 준서의 얼굴에 닿았다.
피곤함으로 얼룩진 얼굴이, 그 빛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게, 무슨 뜻이오."
준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낮고, 조심스러웠다.
방금 전까지의 반항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감정이 들어서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은 정확히 이름 붙일 수 없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다음 말을 준비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선이 하나 그어질 것이었다.
목이 마르다.
입을 열기 전, 그 마름이 먼저 느껴졌다.
20년을 살아온 몸이 아니라, 겨우 며칠 빌려 쓴 이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박철수와 김순자가 방을 정리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깨진 유리 조각을 쓸어담는 소리.
그 소리가 멈추면, 두 사람이 마당으로 나올 것이다.
이 대화를 끝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준서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눈이었다.
그 눈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뭔가 살아있는 것을 봤다.
지금, 이 말을 뱉으면.
준서라는 사람의 남은 삶 전부가, 다른 방향으로 꺾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