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귀환문을 여는 데 걸린 시간, 20년.
17세에 이 세계로 끌려왔다.
지금 나는 서른일곱이다.
숫자로 세면 간단했다.
하지만 그 20년 안에 있었던 일들은 숫자로 세어지지 않았다.
마왕을 죽였다.
동료 넷을 잃지는 않았지만, 각자 다른 길로 흩어졌다.
자유를 좇아 떠난 사람.
인간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간 사람.
작은 마을에 정착해 아이를 낳은 사람.
복수에 매달려 남쪽 사막으로 간 사람.
그리고 나.
귀향에 미쳐 있던 사람.
10년 전, 우리는 마지막으로 모여 각자의 길을 말했다.
낡은 여관 2층, 창밖으로 비가 내리던 밤이었다.
누군가는 술잔을 든 채 웃었고, 누군가는 끝까지 말이 없었다.
나는 그때도 같은 말을 했다.
"돌아갈 거야."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말릴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중 한 명이 물었다.
"돌아가면, 뭐가 있는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있어야 할 것들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만 생각했다.
부모님, 학교, 친구들, 내가 두고 온 방.
20년이 지났다는 사실은 그때는 제대로 계산하지 못했다.
계산할 여유가 없었다.
돌아간다는 말 자체가 목표였고, 그 말 뒤에 있는 현실은 나중 문제였다.
귀환문을 만드는 이론은 3년 만에 정리했다.
실험은 7년이 걸렸다.
실패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마력의 결이 맞지 않아 문이 열리다 닫힌 적이 열두 번.
좌표를 잘못 잡아 엉뚱한 차원의 틈으로 손을 집어넣은 적이 세 번.
그중 한 번은 팔이 사흘 동안 감각이 없었다.
손끝부터 어깨까지 시커멓게 죽은 듯한 색으로 변했던 그 팔을, 지금도 가끔 꿈에서 본다.
또 한 번은 눈앞에서 마법진이 통째로 폭발해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흉터는 아직 오른쪽 눈썹 위에 남아 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 그것 하나로 20년을 버텼다.
이론을 완성한 뒤에도 재료를 구하는 데 3년이 더 걸렸다.
마정석의 순도를 높이는 방법을 찾느라 대륙의 절반을 돌아다녔다.
어떤 광산에서는 몸값의 열 배를 요구받았다.
어떤 마을에서는 마법사라는 이유만으로 쫓겨났다.
그래도 계속 걸었다.
걷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오늘, 마지막 시도를 한다.
장소는 옛 신전의 지하, 폐허가 된 제단 앞이다.
좌표는 완성했다.
마력의 순도도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더 이상 손댈 곳이 없었다.
이게 마지막이다.
실패하면, 다시는 시도할 수 없다.
마력의 근원인 심장의 마정석이 완전히 소진되기 때문이다.
오전 6시 12분.
제단 앞에 도착했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돌바닥 위에 마법진을 새기기 시작했다.
손이 떨렸다.
떨리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떨리는 게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구분할 여유가 없었다.
오전 7시 40분.
마법진이 완성됐다.
마지막 선을 긋는 손끝에서 피가 한 방울 떨어졌다.
피는 문양 위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오전 8시 03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마법진에 손을 얹었다.
"돌아간다."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20년 동안 몇 번이나 되뇌었던 말인데, 오늘 처음 내뱉는 말처럼 낯설었다.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푸른 빛이 점점 짙어졌다.
공기가 팽창하는 소리가 들렸다.
귀가 먹먹해졌다.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
문이 열렸다.
예상했던 감각과 달랐다.
이론상으로는, 원래 있던 세계의 좌표로 곧게 이어지는 통로가 열려야 했다.
따뜻하고 익숙한 냄새, 그게 나야 했다.
어머니가 끓이던 된장국 냄새, 그런 게 맞이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차갑고 낯선 바람이 먼저 밀려왔다.
뭔가 잘못됐다.
좌표를 다시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돌아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예상한 곳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에도 문은 이미 나를 삼키고 있었다.
멈출 방법이 없었다.
멈추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마정석의 마력이 소진되는 속도가 눈에 보이듯 느껴졌다.
지금 멈추면,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채 그대로 소멸할 수도 있었다.
몸이 빨려 들어가는 감각이 들었다.
손끝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존재가 얇게 펴지는 듯한 느낌.
소리가 사라졌다.
빛도 사라졌다.
그 무無 속에서 나는 계속 떨어졌다.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1초일 수도 있었고 1년일 수도 있었다.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 곳이었다.
그 무의 공간에서, 이상하게도 옛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숲으로 들어간 사람의 마지막 뒷모습.
사막으로 떠난 사람의 마른 어깨.
아이를 안고 있던 사람의 웃는 얼굴.
전부 흐릿했다.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들마저 곧 지워졌다.
그리고 갑자기, 바닥에 닿았다.
충격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숨이 턱 막혔다.
눈을 떴다.
하늘이 보였다.
파란 하늘, 낮게 깔린 산.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아팠다.
특히 마정석이 있던 자리, 가슴 한가운데가 텅 빈 것처럼 시렸다.
손을 대 보았다.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지만,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 써버린 것이다.
돌아갈 방법이, 방금 사라졌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몇 초가 걸렸다.
받아들여야 하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년을 버틴 이유가 방금 소진됐다는 것.
그 무게가 아직 실감으로 오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으로 둘러싸인 좁은 계곡.
초가집 몇 채가 흩어져 있었다.
나무로 만든 울타리, 흙으로 다진 마당.
전선도, 전봇대도 없었다.
길은 좁고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어디에도 콘크리트가 없었다.
차 소리도, 사람들 말소리도, 내가 알던 도시의 소음이 전혀 없었다.
새소리와 멀리서 개 짖는 소리뿐이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알던 현대는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가능성을 하나씩 지웠다.
차원 이동에 실패해서 다른 세계로 떨어졌을 가능성.
좌표가 틀려서 같은 세계의 다른 시대로 떨어졌을 가능성.
아니면 내가 알던 세계의 아주 오래된 과거일 가능성.
어느 쪽이든, 지금 당장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숨을 몰아쉬었다.
일단 살아야 했다.
마력도 없고, 무기도 없고,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20년 동안 마왕과 싸우며 배운 것들, 그게 지금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싸구려 주식처럼, 시세가 붙지 않는 종목처럼, 이 세계에서는 내가 가진 게 아무 가치도 없었다.
몸을 일으켜 걷기 시작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무릎이 꺾일 것 같았다.
초가집 하나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
나는 걸음을 멈췄다.
숨을 죽였다.
낯선 언어가 아니었다.
한국어였다.
그것도 억양이 조금 다른, 오래된 말투의 한국어였다.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심장이 크게 뛰었다.
한국어라면, 적어도 완전히 다른 세계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낯설까.
왜 이렇게 오래된 말투일까.
질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울타리 너머로 노부부가 보였다.
남자는 지게를 지고 있었다.
여자는 마당에서 무언가를 씻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나에게로 향했다.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누구요!"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무엇을 입고 있는지도 모른 채, 초라한 마법사의 로브 차림으로 서 있었다.
이 시대에, 이곳에, 이런 옷을 입은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남자의 눈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의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진실을 말하면 미친 사람으로 볼 것이다.
차원을 넘어왔다고, 20년 만에 돌아왔다고 말하면 누가 믿을까.
거짓을 말해도 뭐라 해야 할지 몰랐다.
이름도, 사는 곳도, 아무것도 지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저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남자가 지게를 내려놓았다.
천천히 다가왔다.
손에 낫이 들려 있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날이 아침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그 빛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온몸의 근육이 굳었다.
마력이 있었다면 방어막 하나쯤 세울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나는, 완전히 무방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