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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시연회 당일, 궁정 응접실은 화사한 향으로 가득 찼다. 장미와 백합을 섞은 향유가 은은하게 공기를 채우고 있었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대리석 바닥 위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왕비궁 소속 시녀들과 몇몇 귀족 부인들이 초대되어 있었다. 값비싼 벨벳 드레스를 입은 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부채를 흔들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는 완성된 겨울용 화장수 병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유리병 표면에 새겨진 문양은 내가 밤새 고른 것이었고, 병목에 두른 리본의 색깔도 내가 세 번이나 바꿔가며 정한 것이었다. '저 리본, 은색으로 바꾸길 잘했지.' 금색이었다면 화장수의 투명한 색감을 오히려 가렸을 것이다. 작은 부분이었지만, 그 작은 부분들이 쌓여 오늘의 결과물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한서아는 그 앞에서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화려한 드레스, 자연스러운 손짓, 청중을 사로잡는 목소리. "이번 화장수는 겨울철 건조함과 냉기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고안했습니다." 그녀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부인들의 감탄사가 터졌다. 나는 그 뒤편, 시료대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시료대 위에는 배합 과정에서 사용했던 유리 막대와 계량 도구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는데, 그것들을 정돈한 것도 나였다. 한서아가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자, 나는 화장수 병 하나를 조심스럽게 열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가 부인의 손목에 화장수를 발라주었다. "어머, 정말 따뜻하네요!" 한 부인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부인들도 손목을 내밀며 차례로 시연을 받았다. "이 향, 처음엔 약초 냄새인가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다르게 느껴지네요." 또 다른 부인이 손목에 코를 대며 중얼거렸다. "겨울에 손이 갈라지는 게 걱정이었는데, 이거라면 좀 나아지려나." 부인들 사이에서 나오는 반응들은 하나같이 진심이 담긴 것들이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생강 추출물을 넣은 배합이 예상대로 자극 없이 부드러운 온기를 만들어냈다. 향도 화려하지 않으면서 은은하게 오래 남았다. '성공이다.'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밤을 새워가며 배합비를 조정한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생강 추출물의 농도를 0.1퍼센트 단위로 조정하며 반복했던 실험들, 온도를 재느라 몇 번이고 뜨거운 물에 손을 데었던 기억,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이 순간, 부인들의 감탄사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도, 뭔가 됐구나.' 가슴 한쪽이 조금 뭉근해지는 기분이었다. 왕비궁 시녀 하나가 감탄하며 물었다. "이 배합, 정말 놀랍네요. 누가 개발하신 건가요?" 짧은 정적이 흘렀다. 한서아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 팀에서 함께 개발했어요. 저는 방향을 잡고, 세부적인 조정은 팀원들이 도와줬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확한 말도 아니었다. '세부적인 조정.' 생강 추출물을 넣기로 한 결정, 온도와 시간을 몇 번이고 실패하며 맞춘 배합비, 밤새워 완성한 최종 시료. 그 모든 과정이 '세부적인 조정'이라는 짧은 표현 안에 뭉개져버렸다. 방향을 잡은 사람과 방향을 실현시킨 사람. 둘 중 누가 더 중요한지는 따질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실현시킨 사람의 이름이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는 건 뭔가 잘못된 일이 아닌가. 부인들의 시선은 여전히 한서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시료대 옆에서 그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익숙해져야 한다.'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가슴 안쪽이 조금씩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일인지, 그 순간에는 확신할 수 없었다. 정우진이 옆으로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서윤 씨, 이번 결과물 정말 잘 나왔어요. 다들 좋아하네요." 그 말은 진심처럼 들렸다. 목소리에 섞인 미묘한 안타까움이 그 진심을 더 확실하게 만들었다. "저도 배합 과정에 좀 참여했으니 알죠. 그 생강 추출물 비율, 그거 서윤 씨가 새벽까지 붙잡고 있었던 거잖아요." 나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기억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하지만 그 진심이 공개적으로 표현되는 일은 없었다. 정우진도 그걸 알고 있는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그저 어깨를 살짝 두드려주었을 뿐이었다. 시연회가 끝나고 부인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자, 왕비궁 소속 상급 약사 한 명이 남았다. 나이가 지긋한 여성으로, 이름은 잘 몰랐지만 궁정 내에서 꽤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옷차림은 다른 부인들에 비해 화려하지 않았지만, 옷감의 질과 재단은 오히려 더 고급스러웠다. 손끝에는 오랜 세월 약재를 다뤄온 사람 특유의 굳은살이 배어 있었다. '저 손, 실무를 놓지 않은 사람의 손이다.' 궁정 안에서 직위만 높고 실무는 잊은 사람들과는 다른 부류였다. 그녀는 화장수 병을 집어 들고 유심히 살폈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고, 손등에 살짝 발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손등을 비비며 온기가 퍼지는 속도를 가늠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배합, 생강 추출물을 쓴 게 흥미롭네요. 이런 방식은 학원 교과서에는 없는데." 심장이 살짝 뛰었다. '알아본 건가.' 교과서에 없는 배합이라는 걸 한눈에 짚어낸다는 건, 그녀 역시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제가 개인적으로 시험해본 방식입니다." 상급 약사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호기심인지 경계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눈빛이었다. 그녀는 잠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시료대 옆에 조용히 서 있던 나의 옷차림, 손끝에 남은 얼룩,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눈빛까지.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기억해두겠습니다." 그 말만 남기고 그녀는 자리를 떠났다. 짧은 대화였지만, 나는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감각이 스치는 걸 느꼈다. '기억해두겠다는 게, 좋은 의미일까.' 궁정 안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걸, 그동안의 경험이 알려주고 있었다. 한서아는 저편에서 다른 부인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인사를 나누는 손짓 하나, 미소를 짓는 각도 하나까지 완벽하게 계산된 듯 보였다. 하지만 시연회장을 나서기 전, 한서아가 잠깐 나를 돌아보았다. 그 짧은 순간,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 처음으로 낯선 감정을 읽었다. 확신이 아니라, 아주 미묘한 균열이었다. '저 여유, 방금 흔들린 건가.'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평소라면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을 그녀였다. 시연회가 끝난 후에는 늘 만족스러운 얼굴로 곧장 자리를 떠나던 그녀가, 이번에는 굳이 뒤를 돌아본 것이다. '혹시 상급 약사가 던진 그 말 때문일까.' 교과서에 없는 방식이라는 말, 그리고 그 방식을 시험해본 사람이 나라는 사실. 그 조합이 한서아에게 어떤 불안을 심어준 것은 아닐까. 나는 그 균열의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시료대를 정리하며 시연회장을 나섰다. 정리를 마치고 복도로 나설 때까지도, 등줄기에 남은 서늘한 감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그 균열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는 걸 아주 다른 방식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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