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도현의 숨이 얕아지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상처를 눌러도 피가 멈추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로 계속 흘러나오는 그 뜨거운 액체가 손목을 타고 팔뚝까지 적셔갔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냄새를 맡은 게 오늘만 몇 번째인지 세다가, 그런 걸 세고 있는 내가 우스워서 그만뒀다.
"안 돼. 안 돼, 도현아."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 목소리인데도 낯설었다.
지구에서, 도현이 사고를 치고 내가 뒤집어썼을 때도 이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냥 짜증이었다. 억울함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뭔가가 속에서 뒤집히고 있었다. 이 세계가, 이 상황이, 나 자신이 다 미웠다. 도현을 이곳으로 끌고 온 것도 나였고, 도현을 지키지 못한 것도 나였다.
설아가 절뚝이며 다가왔다. 오른쪽 다리를 거의 쓰지 못하는 걸음이었다. 그런데도 무릎을 꿇고 도현의 상처를 살피는 손길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대로면..."
말을 끝맺지 못했다. 표정이 답을 대신했다. 입술을 깨문 채로 눈을 피하는 그 얼굴이, 어떤 말보다 더 잔인했다.
그것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체가 꿈틀거리며 자세를 바꾸고 있었다. 안개가 또 뿜어지려는 기색이었다. 그 안개에 한 번 닿았을 뿐인데 도현의 배는 저렇게 되어버렸다. 두 번째로 닿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재민 씨, 움직일 수 있어요?"
설아가 소리쳤다. 목소리에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재민이 다리를 끌며 벽에 몸을 기댔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못 움직여요. 다리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재민은 신음만 흘렸다. 아까 그것의 꼬리에 맞아 무릎이 완전히 꺾여버린 걸 나도 봤다. 저 다리로 서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
나는 도현을 바닥에 눕혔다. 손이 떨렸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눕히려 했는데도 도현의 얼굴이 미세하게 찡그려졌다. 그 작은 표정 변화 하나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가운데 눈이 다시 반응했다. 아까 도현의 공격에 맞았던 자리가 아직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다른 곳보다 살짝 움푹 들어간 그 부분이, 빛을 받을 때마다 조금씩 떨렸다.
저기가 약점이라는 확신이 조금 더 짙어졌다. 아까 도현이 그 자리를 찌르고 난 뒤부터 그것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다른 부위는 아무리 공격해도 별 반응이 없었는데, 저기만은 달랐다.
그런데 지금 그걸 노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도현은 쓰러졌고, 재민은 다리를 못 쓴다. 나는 도현을 놓을 수 없었다. 남은 건 설아 하나뿐이었다.
"제가 갈게요."
설아가 다친 팔로 무기를 다시 쥐었다. 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아까 그것에게 얻어맞으면서 팔이 부러진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설아는 손잡이를 고쳐 쥐며 자세를 잡고 있었다.
"그 팔로는..."
"알아요. 그래도 가야죠."
설아의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그런데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부러진 팔로 무기를 쥔 손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 손이 떨리는 걸 나는 분명히 봤다. 그런데도 설아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말리고 싶었다. 그 상태로 나가면 위험하다고,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그런데 입이 열리지 않았다.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안개가 다시 뿜어지면, 이번엔 우리 중 누군가가 확실히 죽는다.
설아가 뛰어나갔다.
절뚝이는 걸음이었지만 그 속도는 놀랍도록 빨랐다. 안개가 뿜어지기 직전, 설아가 몸을 던지듯 그것의 가운데 눈을 향해 무기를 꽂아넣었다.
서걱.
짧은 정적이 흘렀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그 순간,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것의 몸이 크게 요동쳤다. 이번엔 짧은 경련이 아니었다. 몸 전체가 뒤틀리듯 흔들리며, 벽까지 울릴 정도의 진동을 일으켰다.
비명 같은 소리가 그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귀를 찢을 듯한 고음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도현을 감싸안으며 몸을 낮췄다.
"먹혔어! 이번엔 진짜로 먹혔어요!"
설아가 외쳤다. 그 목소리는 승리보다 안도에 가까웠다. 숨을 몰아쉬며 뒤로 물러서려는 그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것의 마지막 발작이, 설아를 그대로 덮쳤다.
콰앙.
설아의 몸이 벽까지 날아가 부딪혔다. 둔중한 소리가 통로를 울렸다. 그 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움직이지 않았다.
"설아 씨!"
재민이 다리를 끌며 기어갔다. 온 힘을 다해 바닥을 밀어내며 나아가는 그 몸짓이,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나도 도현을 안은 채로 소리쳤다.
"설아 씨, 정신 차려요!"
대답이 없었다. 벽에 기대어 쓰러진 설아의 몸이 미세하게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정지된 모습이 도현의 얕은 숨과 겹쳐서, 심장이 조여왔다.
그것의 몸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형체가 흩어지듯 안개로 변해갔다. 처음에는 뚜렷했던 몸의 외곽선이 점점 옅어지며 공기 속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보였다.
죽은 건지, 물러난 건지 알 수 없었다.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그런데 확실한 건, 이번 전투가 끝났다는 것이었다.
대가를 치르고.
재민이 설아 옆에 도착해 맥을 짚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손끝의 미세한 흔들림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숨은... 쉬는데. 약해요."
그 말에 겨우 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동안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죽지는 않았다. 그거면 됐다. 아니, 그게 됐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인가. 팔이 부러지고, 벽에 부딪혀 정신을 잃은 사람을 두고 됐다고 말하는 게 맞는 건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도현이 내 팔 안에서 힘겹게 눈을 떴다. 초점이 흐릿했다. 눈꺼풀이 자꾸 감기려는 걸 억지로 버티는 것 같았다.
"형..."
"말하지 마. 힘 아껴."
"나 때문에... 이렇게 됐지."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거의 입술의 움직임으로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니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도현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목소리가 싫었다. 네가 좀만 더 조심했으면, 네가 그렇게 앞으로 나가지 않았으면. 이런 생각들이 자꾸 떠올랐다가 스스로 지워버리는 걸 반복했다. 그런데도 사라지지 않았다.
신문이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손바닥에 닿는 그 열기가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경고가 아니라 재촉처럼.
[경고 — 두 신도의 생명 반응 위험 수준]
글자가 눈앞에서 붉게 점멸했다. 깜빡일 때마다 심장이 같이 뛰는 것 같았다.
"신관들한테 알려야 해요. 지금 당장."
재민이 소리쳤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그런데 통로 저편, 우리가 왔던 문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느리고, 무거운 발소리였다. 바닥을 짓누르는 듯한 그 소리는 한 걸음마다 통로 전체를 미세하게 울렸다.
안개가 사라진 그것의 자리에서, 다시 여섯 개의 눈이 어둠 속에 떠올랐다.
하나가 아니었다.
둘이었다.
"또 있어..."
재민의 목소리가 완전히 무너졌다. 그 절망이 그대로 전해졌다. 다리를 못 쓰는 재민, 정신을 잃은 설아, 배를 찔린 도현. 그리고 나.
나는 피투성이가 된 도현을 안은 채로, 그 어둠을 바라보았다. 열두 개의 눈이 어둠 속에서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발소리 사이사이로 낮은 숨소리 같은 것이 섞여 들렸다.
이번엔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손바닥의 신문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뜨거워지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안에서 깨어나려는 것처럼. 그 열기는 통증에 가까웠다. 손바닥 전체가 타들어가는 듯한 감각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게 뭐지.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열기였다.
두 쌍의 눈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