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버려진 아이돌, 신도가 되다

3화

여섯 개의 눈이 동시에 우리를 향했다. 순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죽였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숨을 쉬고 있다는 감각이 먼저 왔다. 눈보다 감각이 먼저 알아챈 거였다. 그다음에야 그 여섯 개의 눈이 하나씩 켜지듯 나타났다. 그것이 먼저 움직였다. 거대한 몸체가 어둠 속에서 벽을 긁으며 나왔다. 짐승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었다. 형체가 계속 흔들려서 눈에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마치 물속에서 보는 형상처럼, 윤곽이 자꾸 뒤틀렸다. "저게 뭐야..." 도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미확인 개체 감지 — 위험도 : 산정 불가] 눈앞에 뜬 글자가 그 말을 그대로 확인해줬다. 산정 불가. 등급을 매길 수조차 없다는 뜻이었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 보는 표기였다. 지금까지는 항상 숫자나 등급이 붙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것마저 거부당했다. 시스템조차 판단을 포기한 상대라는 뜻이었다. 재민이 먼저 뛰쳐나갔다. "엄호해!" 외침과 동시에 칼을 휘둘렀다. 서걱. 칼끝이 그것의 몸체를 갈랐다. 그런데 베인 자리가 그대로 다시 붙었다. 마치 물을 벤 것처럼, 상처라는 개념 자체가 통하지 않았다. "안 먹혀!" 재민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균열이 갔다. "한 번 더!" 재민이 다시 칼을 치켜들었다. 그런데 그때, 그것의 팔 같은 것이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콰앙! 재민이 벽까지 날아가 부딪혔다. 등이 벽에 닿는 소리가 둔탁했다. 뼈가 아니라 살덩이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재민!" 설아가 뛰어가려는 걸 내가 막았다. "기다려요. 저거 규칙이 있을 거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근거는 없었다. 그냥, 이 세계도 어딘가엔 규칙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었다. 사람이 만든 게임에도 규칙이 있는데, 사람을 이곳에 던져놓은 이 세계에 규칙이 없을 리 없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규칙이 있으면 저 새끼가 왜 저래?" 설아가 낮게 되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나도 답을 몰랐다. 도현이 빛구슬을 연달아 쏘아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전부 그것의 몸에 닿기 전에 흩어졌다. 마치 그것 주변에 얇은 막이 있는 것처럼, 빛이 닿기도 전에 튕겨 나갔다. "안 맞아. 형, 안 맞는다고!" 도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거리를 좁혀야 하는 건가?" "몰라, 나도 몰라!" 그것의 눈 여섯 개가 이번엔 나를 향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뭔가 겨눠지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무대 위에서 카메라 수백 개가 나를 향할 때와 닮은 감각이었다. 그때는 익숙했는데, 지금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때는 렌즈 뒤에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저 여섯 개의 눈 뒤에 뭐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짙은 안개 같은 것이 그것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안개가 닿은 벽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치이익. 돌이 산에 삭는 소리였다. 저게 벽이 아니라 사람이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피해!" 설아가 소리쳤다. 나는 몸을 굴렸다. 어깨에 안개 끝자락이 스쳤다. 따가운 게 아니라 뜨거웠다. 살이 익는 느낌이었다. "으윽."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옷 위로 연기가 올라왔다. 냄새까지 났다. 살이 타는 냄새였다. 권능도 없이 이 자리에 서 있는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다들 뭔가 하나씩은 있었다. 재민은 칼을, 도현은 빛구슬을, 설아는 뭔가 다른 힘을 썼다.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몸으로 버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박태준 사장이 스캔들 터지자마자 나를 버리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미지가 상품이야. 상품에 하자가 있으면 리콜하는 거고." 그 말을 들었을 때도 이렇게 아무 무기도 없이 서 있는 기분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웃던 게 전부였는데, 그게 사라지고 나니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빈손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그 기억이 떠오르는 걸까. 정신 차려. 지금은 그때가 아니야. "신도님, 뒤로!" 설아가 나를 잡아끌었다. 그 순간 그것의 몸체 일부가 갈라지며 새로운 팔이 튀어나왔다. 살덩이가 찢어지는 소리도 없이, 그냥 새로운 팔이 생겨났다. 마치 몸 전체가 하나의 재료 덩어리인 것처럼. 팔이 설아를 향해 뻗었다. "설아 씨!" 소리쳐도 늦었다. 퍽. 둔탁한 소리가 났다. 설아가 팔에 맞아 바닥에 널브러졌다. 피가 번졌다. 바닥 타일 사이로 붉은 게 스며들었다. "설아 씨, 정신 차려요!" 대답이 없었다. 숨은 쉬는지, 그것조차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도현이 내 앞을 막아섰다. "형은 뒤로 가."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몰라.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어." 도현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웃고 있었다. 무섭다는 걸 감추려는 웃음이었다. 손은 떨리고 있는데 입만 웃고 있었다. "형이 매번 그랬잖아. 나 대신 앞에 서는 거." "지금 그거랑 이건 다르잖아." "뭐가 달라. 똑같지." 지구에서 아버지가 도현에게 손을 올리려 할 때마다 내가 그 앞을 막았던 기억이 스쳤다. 그때 도현은 늘 뒤에서 울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도현이 내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여섯 개의 눈이 이글거렸다. 다음 공격이 온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공기가 무거워지고, 그것의 형체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권능도 없다. 무기도 없다. 규칙도 모른다. 그런데 도현이 내 앞을 막고 있었다. 안 돼. 저건 안 돼. 지구에서 도현 대신 짐을 짊어졌던 그 순간처럼, 몸이 먼저 반응했다. 생각보다 몸이 빨랐다. "비켜!" 소리치며 도현을 밀어냈다. 그리고 그것의 팔이, 정확히 내가 서 있던 자리로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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