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처형당한 얌전한 딸

3화

다과회는 정확히 시놉시스대로 흘러갔다. 세자는 웃으면서 찻잔을 들었다. 이서인이 직접 우려온 차라고, 시녀가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목소리에 은근한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저것 봐, 저렇게까지 정성을 들였다고 광고를 하니 세자가 안 마시고 배길 리가 없지. 세자는 별생각 없이 한 모금 마셨다. 나는 멀리 앉아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손톱을 물어뜯을 뻔했다. 뛰어가서 잔을 뺏어야 하나. 아니, 그럼 더 이상해지겠지. 미친 여자로 소문나는 게 먼저일 거다.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미 마셔버린 후였으니까. 다과회가 끝나고, 나는 인사를 나누는 척 자리를 빠져나왔다. 걸음이 빨라졌다. 방으로 돌아오는 내내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화가 나서 그런 건지, 무서워서 그런 건지 구분이 안 됐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화분 앞에 앉았다. "막을 수 있었어?" 내 목소리에 원망이 섞였다. 화분은 대답이 없었다. 잠깐의 정적. 나는 그 정적이 더 미웠다. "오늘 한 모금으로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설령이 마침내 대답했다. 담담한 어조였다. 저는 위기감이라는 게 없나. "매일 조금씩 쌓여서, 며칠 뒤면 몸이 무너진다. 그전에 막아야 해." 열흘. 시간은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다행일 리가 없지. 열흘이라니, 그게 넉넉한 시간인 것처럼 말하지 마. "그럼 방법을 알려줘. 뭘로 해독하면 되는데." "내 잎을 우려서 마시게 해라. 하루에 한 번씩. 그러면 몸에 쌓이는 독기를 씻어낼 수 있다." 말은 쉬웠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내가 어떻게 세자에게 매일 차를 갖다 바친단 말인가. 공작가의 영애가, 그것도 세자와 딱히 친분도 없는 처지에. 머릿속으로 온갖 그림을 그려봤다. 시녀를 시켜서 몰래 넣을까. 그러다 발각되면 독을 탄 거로 오해받을 게 뻔했다. 아버지께 부탁해서 정식으로 차를 올릴까. 그럼 왜 하필 우리 가문이 차를 바치느냐는 질문부터 받을 거다. 그러다 시간을 다 잡아먹고 세자는 결국 쓰러지겠지. 결국 답은 하나였다. 직접, 내 손으로. 그날 밤, 나는 결심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설령의 잎을 몇 장 따서 손수건에 싸 두었다. 손이 떨렸다. 잎이 부서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접고, 또 접었다. 이걸로 충분할까. 부족하면 어쩌지. 아니, 일단 가서 마시게 하는 게 먼저야. 세자궁으로 향했다. 부모님께는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허락받으려 했다면 절대 안 된다는 소리부터 들었을 게 뻔했으니까. 공작 영애가 세자에게 직접 차를 올리겠다고 하면, 아버지는 아마 내 이마에 손을 짚고 열이 있는지부터 확인하려 들 거다. 세자궁 입구에서 나를 막은 건 다름 아닌 강윤재였다. 붉은 무관복을 걸친 그가 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영애가 여긴 왜 오셨습니까." 그가 물었다. 목소리에 경계가 서려 있었다. "저하께 드릴 것이 있어서요." 나는 손수건을 살짝 들어 보였다. "그냥 몸에 좋은 차예요. 최근 안색이 안 좋으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돼서 준비했어요." "제가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의심 가득한 눈빛. 저 사람은 세자의 호위답게 눈치가 빠르다. 좋은 일이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엔 최악이기도 했다. 나는 순순히 손수건을 열어 보였다. 그냥 마른 잎이었다. 겉보기에는 흔한 찻잎과 다를 게 없었다. 다행히 설령의 잎은 특별히 이상한 색이나 향을 풍기지 않았다. 강윤재는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시선을 들었다. "이걸 왜 이 영애가 준비하십니까. 이런 건 시녀들이 할 일 아닙니까." "제가 직접 드리고 싶어서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 미소 뒤에서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걸리면 끝이었다. 세자에게 뭔가를 몰래 먹이려 한다는 의심을 받는 것만으로도, 회귀 전과 똑같은 상황이 재현될 수 있었다. 독살 미수범. 그 오명을 다시 뒤집어쓰는 건 딱 한 번으로 충분했다. 강윤재의 눈빛이 여전히 미심쩍었다. 나는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흔들리면 진다. "그리고,"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믿기지 않으시면 지금 여기서 저와 함께 확인하셔도 됩니다. 숨길 게 없거든요." 강윤재는 잠깐 나를 응시했다. 마치 내 표정 속에서 거짓을 찾아내려는 듯한 눈이었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더 의심받을 게 뻔했으니까. 다행히 그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길을 비켜주었다. "저하께서 지금 서재에 계십니다. 짧게만 뵙고 나오십시오." 숨을 크게 내쉬었다. 첫 번째 관문. 넘었다. 세자는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열여덟 남짓한 나이의 청년이었는데, 회귀 전 재판정에서 봤던 얼굴보다 훨씬 앳되고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때는 독기에 시달려 얼굴이 누렜었는데. 지금은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아직은, 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이 영애께서 오셨다고요." 세자가 책을 내려놓으며 나를 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몸에 좋은 차를 좀 가져왔습니다, 저하." 나는 손수건을 내밀었다. "매일 이걸 우려 드시면 좋을 듯해서요." 세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이런 걸." 뭔가 그럴싸한 이유가 필요했다.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저하, 실은 며칠 전에 마신 차에 독이 들어 있었어요, 라고 하면 당장 나를 잡아다 조사할 게 뻔했다. 나는 최대한 진지하게 말했다. "요즘 안색이 좋지 않으시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걱정하는 마음에 준비했습니다. 믿기 힘드시면 제가 먼저 마셔보이겠습니다." 그 말에 세자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나는 이미 손수건 속 잎을 조금 떼어 입에 넣고 씹어 삼켰다. 씁쓸한 맛이 났다. 풀 비린내와 흙 맛이 뒤섞인, 딱히 유쾌하지 않은 맛이었다. 그래도 어쩌겠어. 세자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이 정도 쓴맛쯤 못 참으면 안 되지. 세자는 그 모습을 보고 짧게 웃었다. 경계가 조금 풀린 얼굴이었다. "알겠습니다. 받겠습니다." 다행이었다. 첫 관문은 넘었다. 이제 매일 이 짓을 반복해야 한다는 게 문제지만. 세자는 손수건을 시종에게 건네며 뭔가 지시를 내렸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예를 갖추고 물러나려 했다. 그런데 문을 나서는 순간, 복도 끝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머니였다. 한산 공작부인이,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언제부터 저기 서 계셨던 거지. 설마 처음부터 다 보고 계셨던 건 아니겠지. 어머니의 눈빛이 나를 훑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마치 무언가를 캐내려는 눈이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얼굴을 만들어 보였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쉽게 넘어가긴 힘들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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