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생방송이었어.'
그 세 글자가 머릿속에서 벽돌처럼 쌓이더니,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손끝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소리가 귓속까지 울리는 것 같았다.
카메라를 든 스태프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힐끗 보더니, 곧바로 화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뭔가를 듣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한쪽 입꼬리가 미묘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실시간 채팅이 폭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저 표정, 저 표정이 제일 무서운 표정이야.'
방송 스태프가 저런 얼굴을 할 때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굳이 경험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도망쳐야 해.'
몸을 돌리려는 순간, 손목이 잡혔다.
"저기요."
유나였다.
방금까지 다리가 끼어 아파하던 사람이, 손목을 잡는 힘은 의외로 강했다.
눈이 초점을 잃지 않고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방송용으로 다듬어진 눈매인데도, 지금은 그 안에 순수한 감정만 담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네."
짧게 대답하고 손을 빼려 했지만, 손목을 잡은 힘이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살짝 더 세게 쥐어졌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누구의 손바닥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성함이라도, 여쭤봐도···"
"괜찮습니다."
대화가 이렇게 짧게 이어질수록 상황이 더 이상해지고 있었다.
정중한 질문에 무뚝뚝한 대답만 돌아가는 이 대화가, 지금 이 순간 수백만 개의 화면을 통해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자꾸 뒷목을 잡았다.
뒤에서 팀 리더로 보이는 여성이 스태프에게 뭔가를 손짓하며 지시하는 게 보였다.
손짓이 점점 커지고, 표정도 점점 급해졌다.
"동백 언니, 저 카메라 아직 켜져 있는 거 맞죠?"
그 말에 나는 그대로 몸이 굳었다.
'윤동백. 저 사람이 팀 리더구나.'
순간의 관찰이 무슨 소용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정보만 머릿속에 남았다.
쓸데없는 순간에 쓸데없는 기억력만 발동하는 게, 딱 나답다는 생각이 스쳤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장면이 실시간으로 전국에 뿌려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머릿속으로 시나리오가 빠르게 그려졌다.
누군가 캡처를 뜬다.
그 캡처가 커뮤니티에 올라간다.
얼굴, 목소리, 걸음걸이까지 전부 분석당한다.
'끝났다'는 단어가 자꾸 반복되어 떠올랐다.
나는 손목을 살짝 비틀어 유나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손바닥에 남은 온기가 이상하게 오래 갔다.
"다치신 곳은 크지 않은 것 같으니, 팀 쪽에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사무적으로, 최대한 짧게.
그리고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저기, 잠깐만요!"
유나가 뒤에서 불렀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발이 무거웠지만, 멈추면 안 된다는 감각이 발끝까지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더 오래 있으면 안 돼.'
통로 갈림길로 접어들며, 나는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유나는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사와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그 눈빛이,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동백이라는 사람은 벌써 카메라 앵글을 조정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화면 어딘가에 내 뒷모습이 잡혀 있을 거였다.
'제발, 얼굴은 좀 흐릿하게 나갔길.'
말도 안 되는 소원을 빌면서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통로를 몇 번이나 꺾어 돌고,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오르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던전을 빠져나와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렸다.
메시지 알림이 아니었다.
실시간 검색어, 뉴스 알림, 그리고 낯선 번호로 걸려온 부재중 전화 열두 통.
'뭐야, 이거.'
손이 떨려서 화면을 두 번이나 잘못 눌렀다.
겨우 잠금을 풀고 실시간 검색어 창을 열어보니, 1위부터 5위까지 전부 관련 검색어로 도배되어 있었다.
'오채담 생방송 정체불명 남자'
'유나팔레트 구출 영상'
'41층 던전 이상현상'
'열화단 관련설'
'윤동백 방송사고'
조회수는 이미 수백만을 넘어섰고,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숫자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숫자 옆에 붙은 화살표가 계속 위로 뻗어 올라갔다.
꼭 주식 그래프 같았다.
다만 오르는 게 내 얼굴 노출도라는 게 문제였다.
'끝났다.'
관련 영상 썸네일을 몇 개 눌러봤다가, 곧바로 다시 잠금 화면으로 돌려버렸다.
내 뒷모습, 옆모습, 그리고 순간적으로 잡힌 정면 얼굴까지 캡처되어 커뮤니티 글 제목에 박혀 있는 걸 보고 나니, 더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얼굴 뜯어보자'는 제목으로 스레드를 열었고, 이미 댓글이 수백 개씩 달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누가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실제로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서도, 저 얼굴이 이미 수백만 명의 눈에 스쳐 지나갔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정류장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서는 동안에도, 등 뒤가 서늘했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가 전부 나를 알아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발걸음은 자꾸 빨라졌다.
집에 도착해 문을 잠그고 소파에 앉았을 때, 휴대폰이 또 울렸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받지 않았다.
몇 초 뒤, 다시 같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받지 않았다.
세 번째로 걸려왔을 때는, 손끝이 화면 위에서 멈춘 채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뭐지, 왜 이렇게 집요해.'
전화가 네 번째로 끊긴 순간, 곧이어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열화단 곽태산입니다. 잠깐 통화 가능하십니까.'
열화단.
41층 이상을 오르는 실력자들로만 이루어진 길드.
그 리더가,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을까.
머릿속이 하얘졌다가, 곧 다시 새하얘졌다.
번호를 안다는 건, 이미 내 정보 몇 가지를 더 손에 넣었다는 뜻이었다.
그게 어디까지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손끝이 다시 차가워졌다.
휴대폰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무시하자.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다짐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휴대폰을 소파 옆에 던져놓았다.
그러나 놓아둔 지 십 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화면이 밝아졌다.
같은 번호였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골목 어귀 가로등 아래 낯선 남자 하나가 서서 이쪽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깨가 벽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남자였다.
움직임 하나 없이, 그저 이 건물의 창문들을 하나씩 훑어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 시선이 내가 있는 층에서 멈췄다.
숨이 턱 막혔다.
나는 커튼을 반쯤 정도만 남기고 재빨리 닫았다.
'설마, 벌써 여기까지···'
손에 쥔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곽태산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화면 위에서 깜빡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