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삐이이이이이—-!
경보음이 통로 전체를 울렸다.
등 뒤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필요가 없었으니까.
이 소리는 익숙했다.
56층에서 반년을 굴러먹다 보면 어떤 붕괴는 위협이고, 어떤 붕괴는 그냥 배경음이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아챈다.
지금 것은 후자였다.
등 뒤 통로 하나가 자연 붕괴로 막히는 소리, 그뿐이었다.
56층, 던전의 심부.
이곳까지 내려오는 탐험가는 국내에 채 열 명도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 열 명 중 누구도 혼자서 오지는 않는다.
협회에 등록된 정보만 봐도 그랬다.
56층 도달 기록이 있는 파티는 전부 5인 이상, 그것도 전원 A급 이상의 각성자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나 빼고는.
[상태창]
이름: 이서준
레벨: 47
칭호: 없음
칭호가 없다는 게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항목이었다.
칭호가 있다는 건 눈에 띈다는 뜻이고, 눈에 띈다는 건 곧 성가신 일이 붙는다는 뜻이었으니까.
협회에서 붙이는 칭호는 대개 능력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화염의 지배자', '벽을 걷는 자' 같은 식으로.
나한테 붙을 법한 칭호가 뭘지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벽에 등을 붙이고 숨을 골랐다.
심장이 아직도 두근거렸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목덜미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십 분 전 지나온 구간에서 마주친 놈 하나가 하마터면 내 오른쪽 어깨를 뜯어갈 뻔했다.
그 순간의 잔상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그 두근거림이 가라앉기도 전에, 통로 안쪽에서 붉은 눈알 세 개가 동시에 떠올랐다.
'세 마리라.'
귀찮았다.
56층의 몬스터들은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상급 탐험가 파티 하나를 통째로 삼킬 수 있는 놈들이었다.
그런데 그게 셋씩 몰려다닌다는 건, 이 아래에 뭔가 있다는 뜻이었다.
경험상 이런 층에서 몬스터가 무리를 짓는 경우는 둘 중 하나였다.
근처에 더 강한 개체가 있어서 도망치는 중이거나, 혹은 뭔가를 지키고 있거나.
어느 쪽이든 성가신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손끝에 마력을 모으며 짧게 혼잣말을 뱉었다.
"됐고, 학비나 벌자."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만, 사실이었다.
대학생 신분으로 던전 56층을 들락거리는 놈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나.
아마 없을 거다.
있었다면 뉴스에 나왔을 테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던전에서 뭘 하는지 짐작조차 못 했다.
동기들은 내가 편의점 야간 알바를 뛰는 줄 알았고, 교수님은 내가 병약해서 결석이 잦은 줄 알았다.
얼마 전엔 옆자리 애가 "너 요즘 안색이 왜 그래, 알바 좀 줄여" 하고 걱정 어린 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그냥 웃으면서 "곧 그만두려고" 했는데, 그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등록금만 채우면 이번 학기는 안 내려가도 되니까.
···물론 둘 다 틀린 얘기였지만, 정정해줄 이유도 없었다.
눈알 세 개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나는 몸을 낮추고 왼쪽으로 미끄러졌다.
퉁-! 탁-!
첫 번째 놈의 발톱이 벽을 긁으며 지나갔고, 나는 그 틈에 손바닥을 놈의 목덜미에 붙였다.
순간 손끝에서 뻗어나간 빛이 놈을 그대로 관통했다.
놈은 소리 한 번 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사체가 바닥에 닿기 전에 나는 이미 두 번째 놈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있었다.
두 번째, 세 번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번째 놈은 정면으로 달려들다가 내 손바닥에 목덜미를 내줬고, 세 번째 놈은 그나마 눈치가 있어서 옆으로 돌아 들어오려 했지만 그것도 반 걸음 늦었다.
십 초.
딱 십 초 만에 세 마리가 바닥에 쓰러졌고, 나는 그 사체 위로 떨어지는 부산물을 주섬주섬 인벤토리에 담았다.
부산물이라고 해봐야 결정석 몇 개와 가죽 조각들이었지만, 이게 다 돈이었다.
'이 정도면 등록금은 커버되겠네.'
웃음이 나왔다.
남들은 목숨을 걸고 이런 층을 오르는데, 나는 그걸 알바처럼 취급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56층은 내가 유일하게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이었고, 동시에 다른 사람과는 절대 함께할 수 없는 곳이었다.
왜냐고 물으면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냥, 사람이 옆에 있으면 불편했다.
정확히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내가 뭘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드러났고, 드러나는 게 싫었다.
한 번, 딱 한 번 파티에 껴서 던전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저층이었고, 별거 아닌 사냥이었는데도 파티원 중 한 명이 내 움직임을 보고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방금 그거 무슨 스킬이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하는 게 뭔지 나조차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그날 이후로 다시는 파티를 짜지 않았다.
통로 끝, 붕괴가 진행 중인 구역을 지나며 나는 잠깐 걸음을 멈췄다.
천장에서 돌가루가 부슬부슬 떨어지고 있었다.
가느다란 먼지 줄기가 조명 아래에서 반짝이며 흩어졌다.
바닥에는 이미 잔돌들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저기, 원래 저렇게 무너지는 구역이 아닌데.'
56층은 내가 반년 넘게 드나든 층이었다.
지형은 거의 외웠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어느 통로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어느 구간에서 몬스터가 자주 튀어나오는지, 심지어 벽에 난 균열 하나까지도 눈에 익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보는 균열이 벽 한쪽에 새로 생겨 있었다.
'이상하네.'
균열의 모양이 이상했다.
자연적으로 생긴 것치고는 선이 지나치게 매끈했고, 그 안쪽에서 미약하게나마 빛이 새어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착각인가 싶어 눈을 몇 번 깜빡였지만, 빛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이상한 건 이상한 거고, 학비는 학비였다.
나는 그 균열을 눈에 담아둔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때는 몰랐다.
그 균열이 앞으로 내 인생을 완전히 뒤엎어놓을 거라는 걸.
입구로 돌아오는 길, 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균열이 자꾸 마음에 걸렸지만, 오늘은 이미 체력을 많이 썼다.
무리해서 확인하러 들어갔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학비고 뭐고 다 소용없는 얘기가 된다.
'다음에 확인하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던전 출입구를 빠져나오자 익숙한 저녁 공기가 코끝에 닿았다.
매캐한 던전 내부 공기와는 전혀 다른, 도시의 먼지 섞인 공기였는데도 그게 그렇게 반가웠다.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등록금 마감 사흘 전.
계좌에 찍힌 숫자는 여전히 목표치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화면을 몇 번이나 새로고침 해봤지만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방금 판 부산물이 정산되려면 최소 하루는 걸릴 테니까.
'이번 주말에 한 번 더 내려가야겠다.'
그 결심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아까 본 균열의 잔상이 눈꺼풀 안쪽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매끈한 선, 그리고 그 틈으로 새어 나오던 희미한 빛.
'설마 게이트는 아니겠지.'
게이트라면 협회에 신고해야 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리고 신고하는 순간, 그 구역은 폐쇄되고 조사단이 투입된다.
그렇게 되면 56층은 당분간, 어쩌면 영원히 내 사냥터가 아니게 된다.
'신고 안 하면?'
나는 그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한 채로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밤, 나는 그 균열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그때는, 그게 가능한 선택이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