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바닥이 통째로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발밑에서 무언가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돌바닥 틈새에서 붉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스멀스멀 위로 솟아올랐고, 그 끝에서 미묘한 열기가 느껴졌다.
코끝을 스치는 냄새는 쇠붙이를 태운 것처럼 매캐했다.
'이상 현상.'
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쿵, 쿵, 쿵-.
박동이 빨라지는 게 아니라 아예 순서를 건너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채담 팀이 있던 자리, 그 근처 지형이 통째로 함몰되고 있었다.
돌바닥이 갈라지며 아래로 꺼져 들어가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렸다.
콰드드득-.
마치 거대한 짐승이 땅을 씹어 삼키는 소리 같았다.
"으악! 언니, 조심해요!"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날카롭고 다급한, 방금 목이 갈라진 것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가 어디서 났는지 확인할 새도 없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반대 방향, 그들이 있는 쪽이었다.
'개입하지 말자, 개입하지 말자···'
머리로는 그렇게 되뇌었다.
이 층에서 다른 팀 일에 끼어드는 건 규정 위반은 아니었지만, 괜한 시선을 끄는 일이었다.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선.
'저 팀, 시청자 수만 명 붙어 있는 팀 아니었나.'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에도, 다리는 이미 그 방향으로 뛰고 있었다.
발바닥이 돌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탁, 탁, 탁-.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도착했을 때, 상황은 최악이었다.
붉은 안개 속에서 형체 불명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솟아났고, 그 앞에서 유나팔레트가 발이 묶인 채 뒤로 넘어져 있었다.
다리 한쪽이 바닥 틈에 끼여 있었다.
발목이 이상한 각도로 꺾인 채였다.
낯빛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유나야! 손 잡아!"
남자 목소리가 급하게 외쳤다.
아니, 정확히는 팀 리더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목소리가 낮고 다급했지만 손끝은 애매하게 허공을 긁고 있었다.
거리가 맞지 않았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간격.
몸을 던지듯 앞으로 기울였지만, 발이 미끄러지며 다시 뒤로 밀려났다.
"안 돼, 안 닿아···!"
그림자는 이미 유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형체는 뚜렷하지 않았지만, 손끝처럼 뻗어 나온 부분이 서서히 길어지고 있었다.
손톱처럼 뾰족한 끝이 유나의 목덜미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저거, 그림자형 이상 개체다.'
한 번 본 적 있는 형태였다.
41층에서 저런 게 나올 리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41층은 이런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층이었다.
이 층에서 나오는 이상 개체라고 해봐야 겨우 초급 몬스터급, 저런 형태는 최소 55층 이상에서나 목격되는 종류였다.
'그때 그 균열이랑 연관이 있는 건가.'
며칠 전 보았던 그 정체불명의 균열이 머릿속을 스쳤다.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발끝에 마력을 모아 바닥을 박찼다.
콱-!
돌바닥이 살짝 움푹 들어갈 정도의 반발력이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손을 뻗어 그림자와 유나 사이로 몸을 밀어넣었다.
퍽-!
그림자의 손톱 같은 것이 내 팔뚝을 긁고 지나갔다.
통증이 늦게 도착했다.
살갗이 갈라지는 감각보다 먼저, 뜨끈한 것이 팔뚝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아프다.'
뒤늦게 붙는 감정의 이름표였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반대쪽 손으로 방벽을 펼치며 그림자를 밀어냈다.
빛의 막이 순간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큽···"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방벽이 그림자를 뒤로 튕겨냈고, 그 틈에 나는 유나의 팔을 잡아당겼다.
손끝에 잡힌 팔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대답할 새도 주지 않고, 나는 바닥 틈에 끼인 유나의 다리를 살펴봤다.
돌 틈이 좁았다.
살갗과 뼈 사이 간격이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였다.
'힘으로 벌려야 했다.'
하지만 너무 세게 힘을 쓰면 뼈가 먼저 부러질 수도 있었다.
계산할 시간이 없었다.
"잠깐 아플 수 있어요."
미리 경고를 던졌다.
유나의 눈동자가 커졌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엔 다른 반응을 보일 여유가 없어 보였다.
손끝에 힘을 모아 돌 틈에 밀어 넣고, 순간적으로 확장시켰다.
쩌적-!
돌 틈이 벌어지며 다리가 빠져나왔다.
유나는 짧게 신음하며 뒤로 넘어졌지만, 다행히 크게 상처 나진 않은 듯했다.
"으윽···"
이를 악문 신음이 새어 나왔다.
발목 부위가 붉게 부어오르긴 했지만, 뼈가 삐죽 튀어나오거나 이상하게 꺾인 상태는 아니었다.
"이거, 다리는요···?"
옆에서 팀원 하나가 달려와 다급하게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안 부러진 것 같아요."
대답이 짧게 오갔다.
그 뒤로 남은 그림자를 향해 나는 다시 손을 뻗었다.
그림자는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안개 속에서 다시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끝을 봐야 한다.'
손끝에서 빛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빛의 파도가 좁은 공간을 휩쓸었고, 그림자는 흩어지듯 사라졌다.
키이이이익-.
날카로운 소음이 짧게 울리다 뚝 끊겼다.
마치 유리를 손톱으로 긁는 소리 같았다.
정적이 찾아왔다.
숨을 몰아쉬며 뒤돌아보니, 팀원들이 하나같이 입을 벌린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몇몇은 아예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있었다.
팀 리더로 보이던 여성도 말을 잇지 못한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들 저래.'
그 시선이 어색해서 팔뚝의 상처를 확인하려 고개를 숙였다.
붉은 줄이 팔뚝을 가로지르고 있었지만, 다행히 깊진 않았다.
'이 정도면 물약 한 병으로 될 것 같은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시야 끝에 뭔가 걸렸다.
그리고 그 뒤, 짐벌 위 카메라 하나가 정확히 내 얼굴을 향해 있었다.
렌즈가 미세하게 움직이며 초점을 맞추는 소리가 들렸다.
윙-.
빨간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규칙적으로.
'설마.'
생방송 표시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