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던전 56층, 들켜버렸다

2화

던전 입구로 나오자마자 눈이 부셨다. 오후 세 시의 햇빛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진 건 오랜만이었다. 며칠 동안 어두운 균열 안쪽만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밝은 곳으로 나오면, 눈이 그 밝기에 적응하는 데 한참이 걸린다. 나는 손등으로 눈을 가리며 잠시 멈춰 섰다. 주차장을 지나며 흙먼지 묻은 장갑을 벗었다. 손끝이 아직 미세하게 떨렸다. 장갑 안쪽에는 땀이 흥건했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저릿저릿했다. 오늘은 유독 힘을 많이 썼다. '하··· 진짜 오랜만에 이 정도로 썼네.' 몸 전체가 두들겨 맞은 것처럼 무거웠다. 그 균열 구역에서, 예상보다 훨씬 큰 몬스터 무리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거기서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그렇게 힘을 써서는 안 됐다. 균열 안쪽은 통로가 통째로 무너지고 있었다. 돌덩이가 천장에서 쏟아졌고, 그 뒤로 몬스터 한 무리가 통로를 따라 밀려오고 있었다.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그 사이로 몬스터들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 혼자였다면 그냥 돌아갔을 상황이었다. 그 정도 규모의 붕괴라면, 도망치는 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통로 안쪽, 붕괴에 갇힌 구역에서 다른 탐험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려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목소리는 여러 개였다. 적어도 세 명, 아니 네 명은 되어 보였다. 외면할 수 없었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통로 안으로 뛰어들었다. 천장이 무너지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발밑에서 잔돌들이 튀어 올랐고, 머리 위에서는 커다란 암반이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며 갈라지고 있었다. '이대로면 다 묻힌다.' 머릿속이 하얘질 정도로 급박했다. 계산할 시간도,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손바닥을 바닥에 붙이고, 마력을 전부 끌어올렸다. 평소라면 절대 쓰지 않는 방식이었다. 힘을 크게 쓰면 그 흔적이 남고, 흔적은 곧 관심을 부른다. 그동안 나는 최대한 티 안 나게, 최소한의 힘만 써서 조용히 지내왔다. 그게 내가 세운 원칙이었고, 지금까지 그 원칙을 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콰아앙-! 천장 전체를 지탱하는 형태의 방벽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돌덩이들이 방벽 위로 우수수 떨어지며 튕겨 나갔다. 방벽 표면에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우박이 지붕을 때리는 소리처럼 요란하게 울렸다. 동시에 밀려오던 몬스터 무리를 향해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빛의 파도가 통로를 훑고 지나갔다.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바스러졌다. 먼지와 빛의 잔해가 뒤섞여 통로 안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물들었다. 십오 초. 그 십오 초 사이에, 나는 평소라면 절대 보이지 않았을 규모의 스킬을 두 개나 연달아 사용했다. '제발 아무도 못 봤겠지.' 갇혀 있던 탐험가들을 통로 밖으로 밀어내며, 나는 그렇게 빌었다. 그들은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얼이 빠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중 한 명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계속 내 소매를 붙잡으려 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완전히 주저앉아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똑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는 걸 보고, 이 사람들이 아직도 충격에서 못 벗어났다는 걸 알았다. 정신을 차리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해 보였다. 나는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괜찮으니 얼른 나가세요." 그게 다였다. 이름도 안 물었고, 소속도 안 물었다. 그런 걸 물어봤다간 상대도 나에게 뭔가를 물어볼 테고, 그건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으니까. 몸을 돌려 반대쪽 출구로 향하는 동안, 등 뒤에서 계속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못 들은 척, 걸음을 서둘렀다. 허나 그날 나는 하나를 놓쳤다. 갇혔던 탐험가들 중 한 명이 헬멧에 소형 카메라를 달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생방송용 헬멧캠. 41층 근처에서 촬영 중이던 어느 방송 팀이, 근처 지형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 카메라 각도를 옮긴 참이었다. 원래는 다른 던전 구간을 소개하던 방송이었는데, 갑작스런 붕괴음에 카메라맨이 반사적으로 렌즈를 돌린 것이었다. 그 각도에, 균열 구역 통로 입구가 정확히 걸려 있었다. 방벽이 펼쳐지는 순간부터, 빛의 파도가 몬스터 무리를 쓸어버리는 순간까지, 십오 초 전부가 그대로 화면에 담겼다. ···물론 나는 그런 걸 알 방법이 없었다. 그저 힘을 좀 많이 썼다는 자각, 그리고 그 흔적을 누가 봤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정도만 안고, 던전을 빠져나왔을 뿐이었다. 입구를 벗어나며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괜찮아. 다들 정신없었을 텐데, 카메라 각도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겠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주차장에 세워둔 오토바이 시트에 걸터앉았다. 헬멧을 벗어 손잡이에 걸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힘 좀 아껴야 했는데.' 몸이 축 늘어졌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구했다는 사실 하나는 마음 한켠에 조그맣게 남아 있었다. 그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는,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집에 돌아와 라면을 끓여 먹으며 휴대폰을 켰다. 물이 끓는 냄비 앞에 서서, 습관처럼 포털 앱을 눌렀다. 무심코 실시간 검색어 창을 눌렀다. 평소라면 그냥 훑어보고 넘겼을 화면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젓가락을 놓쳤다. 젓가락이 바닥에 떨어지며 딸그락 소리를 냈지만, 그 소리마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실시간 검색어 1위. '던전 41층 정체불명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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