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손님 두 명은 메뉴판도 안 보고 주문했다.
"셰프 마음대로."
어린 쪽이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가 맑았다. 나이에 안 맞게 여유가 넘쳤다. 나이 있는 쪽은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냥 나를 쳐다봤다.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매끈했고, 그 안에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 시선이 소름 끼치게 오래갔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한 채 애매하게 고개만 숙였다.
"주문 받았습니다."
박정만이 능숙하게 물러섰다. 뒷걸음질인데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래 해본 사람의 걸음이었다. 나도 따라 물러섰다. 발이 엉켜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주방으로 걸어가는 동안 등에 땀이 났다. 서늘한 홀 온도랑 안 맞는 땀이었다.
"쟤네 뭐예요?"
주방문을 밀며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모녀. 단골."
김민석이 짤막하게 답했다. 팬을 흔드는 손이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뭐 하는 마녀예요?"
"엄마 쪽은 몰라. 딴 쪽은 눈으로 사람 데워 먹는대."
"데워 먹어요? 사람을요?"
머릿속에서 그 그림이 자동으로 그려졌다.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은 그림이었다.
"소문이야. 확인된 건 아니고."
"확인이 안 됐으면 왜 그렇게 말해요?"
"확인해볼 사람이 없었으니까."
확인이 안 됐다는 말이 하나도 위로가 안 됐다. 오히려 반대였다. 확인해볼 사람이 없었다는 건 확인하러 갔던 사람이 안 돌아왔다는 뜻 아닌가. 나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꺼내봐야 대답이 더 무서울 것 같았다.
하유리가 요리를 내놓기 시작했다.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은 이상하게 아름다웠다. 색이 화려했고 향이 좋았다. 소스가 그릇 테두리를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있었는데, 그 흐름조차 계산된 것처럼 정교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재료 중 하나가 계속 움찔거렸다. 처음엔 착시인가 했다. 다시 보니 확실히 움직였다. 살아있는 건가 싶었는데 물어볼 배짱이 안 났다. 하유리 얼굴을 한 번 쳐다봤다가 바로 시선을 거뒀다. 그 얼굴엔 질문을 받아줄 여지가 전혀 없었다.
첫 접시를 들고 나갔다. 손이 떨렸다. 접시 밑바닥이 손바닥에서 미끄러질 것 같아서 손가락에 힘을 꽉 줬다. 테이블에 접시를 내려놓는 순간, 어린 쪽 눈이 반짝 빛났다.
하나.
한 번 깜빡였다.
숨을 참았다. 셋째 규칙.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외웠던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됐다.
두울.
두 번.
심장이 내려앉았다. 세 번 깜빡이면 도망쳐. 도망칠 곳도 없는데 그 문장만 반복해서 떠올랐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갔다.
세엣.
세 번째는 안 왔다. 그녀가 웃으며 포크를 들었다. 웃는 얼굴이 너무 태연해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방금까지 사람을 두 번 데운 눈으로 웃는 낯짝이라니.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다가 겨우 물러섰다. 뒷걸음질 치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괜찮아?"
박정만이 작게 물었다.
"세 번 깜빡일 뻔했어요."
"뻔한 건 안 세는 거야. 실제로 세 번 해야 위험한 거고."
"그걸 어떻게 미리 알아요?"
"몰라. 감으로."
"감이요?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인데?"
"그럼 매뉴얼이라도 만들어줄까? 세 번째 깜빡임의 각도와 지속시간, 뭐 그런 거."
박정만이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데 반박할 말이 없었다. 감이라니. 이 직장의 안전 매뉴얼이 통째로 감이었다. 첫날부터 이런 데서 일하게 된 내 인생이 원망스러웠다.
다음 접시를 나르는 동안, 나는 홀 안을 슬쩍 둘러봤다. 다른 테이블에도 손님이 하나 더 앉아 있었다. 남자였다. 유일한 남자 손님이었는데 그 사람도 뭔가 이상했다. 앉은 자세는 평범했다. 메뉴도 정상적으로 시켰다. 그런데 손끝에서 계속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가 꺼졌다. 담배 피우듯 자연스러웠다. 마치 손가락 끝에 라이터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은 자기 손을 신경도 안 쓰고 물잔을 들었다.
"저 손님은요?"
"저 사람 마녀 아니야. 마녀랑 계약한 인간. 우리랑 비슷한 신세지 뭐, 좀 더 오래된."
박정만이 스치듯 말했다.
"저희랑 비슷하다고요? 저 사람도 저 낙인 있어요?"
"어딘가에.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정보를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했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이 세계엔 나 같은 사람이 더 있구나. 위로가 되는 정보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그때였다.
쨍그랑!
소리가 났다. 다른 홀 쪽에서, 신입인 게 분명한 웨이터 하나가 접시를 떨어뜨렸다. 나는 그 얼굴을 몰랐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나보다 조금 어려 보였다. 아마 나처럼 오늘 첫 근무인 사람이겠지. 접시 조각이 바닥에 흩어지면서 요란하게 튀었다.
그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머리가 늦게 따라오는, 딱 초보의 실수였다. 나도 저 자리에 있었으면 똑같이 했을 것 같았다.
"안 돼—"
김민석이 소리쳤다. 늦었다.
손끝이 파편에 닿았다.
파직.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눈이 부실 만큼 밝은 빛이 아니었는데도 그 잔상이 눈에 남았다. 웨이터가 손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괜찮아요?"
내가 다가가려는데 박정만이 팔을 잡았다. 그 손힘이 생각보다 셌다.
"가지 마. 지금은."
"왜요? 저 사람 다쳤잖아요."
"셰프가 볼 거야."
그 말투가 이상하게 단호했다. 마치 정해진 순서를 어기면 더 큰 일이 난다는 듯이었다.
주방 문이 스르륵 열렸다. 하유리가 걸어 나왔다. 앞치마도 벗지 않은 채였다. 손에 아무것도 안 들고 있었는데 그게 더 무서웠다. 칼이나 도구를 들고 있었다면 오히려 덜 무서웠을 것 같다. 그녀는 웨이터 앞에 서서 손목을 살폈다. 살이 조금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마치 화상이 서서히 퍼지는 것 같았는데 열기는 전혀 안 느껴졌다.
"몇 조 위반이지."
하유리가 물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두, 두 번째요."
웨이터가 이를 딱딱 부딪치며 대답했다.
"두 번째 뭐."
"손대지 말 것."
"알면서 왜 했어."
"반사적으로—"
하유리가 손을 들었다. 그거로 대화가 끝났다. 손을 든 자세가 별로 위협적이지도 않았는데, 그 짧은 동작 하나로 공기가 얼어붙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서 있었다. 손이 떨렸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규칙 몇 조, 위반, 그런 단어들이 마치 진짜 계약서 조항처럼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더 무서웠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한 거다. 나만 낯선 거다.
"이도현."
하유리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다. 심장이 튀었다.
"네, 넵."
"저쪽 테이블 접시 치워."
"네?"
"손님 나갈 때 됐어."
너무 태연했다. 방금 사람이 다쳤는데 그 옆에서 접시 정리하라니. 시간이 그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다친 사람은 이미 이 홀에서 지워진 존재인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거부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테이블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등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소리도 안 났다. 그게 더 무서웠다. 접시를 치우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돌아보면 뭔가 볼 것 같았고, 보면 안 될 것 같았다.
접시를 치우고 돌아왔을 때, 다친 웨이터는 없었다. 그 자리에 사람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없었다. 바닥은 깨끗했다. 깨진 접시 조각도, 핏자국도,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누가 시간을 되돌려서 그 장면 자체를 지워버린 것 같았다.
"어디 갔어요?"
김민석에게 물었다. 그가 나를 안 보고 대답했다.
"몰라. 안 물어보는 게 나아."
"방금까지 있었잖아요."
"그래."
짧은 대답이 더 무거웠다. 나는 그 이상 묻지 못했다. 물어봐도 대답이 안 나올 걸 알았고, 대답이 나온다 해도 듣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손목의 낙인이 다시 뜨거워졌다. 마치 경고하는 것처럼. 나는 소매를 살짝 걷어 낙인을 확인했다. 붉은 무늬가 평소보다 진해져 있었다. 마치 방금 벌어진 일을 그것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이 가게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게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