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5시 55분. 나는 검은 조끼를 억지로 걸치고 홀에 서 있었다. 조끼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다. 눈 감았다 뜨니 몸에 걸쳐져 있었다. 옷감을 만져봤다. 질감이 이상했다. 천인데 살짝 미끄덩거리는 느낌이 났다. 이 가게, 옷도 알아서 입혀주는구나. 편리하다고 해야 할지 무섭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소매를 걷어봤다. 손목의 낙인이 조끼 아래로 살짝 비쳤다. 검은 잉크 같은 문양이 피부에 스며든 것처럼 보였다.
거울이 있었다면 내 얼굴이 어떤지 봤을 텐데, 이 홀엔 거울이 없었다. 대신 창문마다 붉은 커튼이 처져 있었다. 밖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 정말 저녁 6시가 다 된 시간인지도 알 수 없었다.
"신입이지?"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남자가 서 있었다. 나보다 몇 살 위로 보였고, 눈 밑에 그늘이 짙었다. 잠을 못 잔 사람 특유의 눈빛이었다. 눈동자 색이 좀 흐릿했다. 원래 저런 색인지 아니면 뭔가에 시달려서 저렇게 된 건지 구분이 안 갔다.
"박정만입니다. 여기 3년차."
"3년차나 계셨는데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냐고? 여기 있으면 다 이렇게 돼."
그가 웃었다. 웃음에 힘이 없었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그대로였다. 웃는 척하는 얼굴이라는 게 뭔지 오늘 처음 봤다.
"김민석입니다."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젊은 남자였다. 나보다 어려 보였다.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얼음을 만진 것 같았다. 순간 놓고 싶었지만 그러면 실례일까 봐 참았다.
"손이 왜 이렇게 차요?"
"체질이에요. 원래 이래요."
거짓말 같았다. 근데 캐물을 자신이 없었다.
"여긴 뭐하는 곳이에요, 진짜로."
"레스토랑. 마녀들 전용."
박정만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세 번쯤 되짚었다. 마녀. 마녀들. 전용. 문장을 쪼개서 하나씩 다시 읽어봐도 뜻이 바뀌지 않았다.
"마녀요?"
"응. 진짜 마녀. 만화에 나오는 그런 거."
"장난치시는 거죠."
"아까 하유리 셰프 만났지? 그 칼 봤지?"
"봤어요."
칼을 떠올리자 손끝이 저릿했다. 그 칼, 은은하게 빛나던 그 날붙이. 조명 때문이라고 생각하려 했는데 그럴 수 없는 빛이었다.
"그게 마법 칼이야. 마법 안 쓰면 그렇게 안 빛나."
말이 안 됐다. 그런데 이상하게 반박할 말도 없었다. 낙인이 새겨진 손목을 다시 봤다. 이것도 마법이겠지. 아마. 세상이 이런 식으로 나를 데려다 놨는데 마법 하나쯤 이제 와서 안 믿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손님들도 다—"
"전부 마녀. 인간 손님은 안 받아."
김민석이 접시를 정리하며 말했다. 손이 빠르고 능숙했다. 그릇 부딪는 소리 하나 안 났다. 저 손놀림, 두 달 만에 저렇게 됐다고?
"그럼 우린 뭐예요? 왜 인간 웨이터를 써요?"
"그건 나도 몰라. 취향 아닐까."
박정만이 어깨를 으쓱였다.
"셰프 취향이 우리 목숨 담보로 걸려 있는 취향이라는 게 문제지."
"목숨이요."
"계약서 3조 읽었지?"
"읽었어요."
"그럼 알겠네."
대화가 자꾸 끝나는 방식이 비웃음도 안 나오는 종류였다. 나는 뭐라 더 물으려다 그만뒀다. 대답을 들어도 마음이 편해질 것 같지 않았다.
홀을 둘러봤다. 붉은 벽지, 낮은 조명, 테이블마다 놓인 촛대. 겉모습만 보면 그냥 고급 한정식집 같았다. 은은한 향이 났다. 향초인지 요리 냄새인지 구분이 안 됐다.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탄 냄새가 섞여 있었다.
벽에 걸린 그림들이 좀 이상하긴 했다. 눈이 움직이는 그림이라니.
"저 그림 원래 저래요?"
"움직이는 거? 응. 신경 쓰지 마. 쳐다보면 지는 거야."
"지는 거요?"
"그림이 이겼다고 생각하면 따라다녀. 밤새."
나는 조용히 그림에서 눈을 돌렸다. 근데 시선을 돌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그림 속 눈동자가 나를 따라 움직이는 걸 봤다. 등골이 서늘했다. 이 세계 규칙, 배워야 할 게 산더미였다.
"규칙 몇 개만 알려줘요. 살아남으려면."
박정만이 잠시 나를 봤다. 진지한 눈이었다. 방금까지의 힘없는 웃음이 사라지고 없었다.
"첫째, 손님한테 절대 먼저 말 걸지 마. 물어본 것만 대답해."
"질문 안 하면 말도 못 붙여요?"
"응. 그게 나아. 여기서 먼저 말 거는 건 무례한 거야. 그쪽 세계에서는 그게 예의일지도 모르지만 여기는 아니야."
"둘째, 접시 떨어뜨리면 절대 손으로 줍지 마. 발로 밀어. 손대면 위험한 게 묻어 있을 수도 있어."
"위험한 거라니요."
"몰라. 그냥 하지 마. 나도 안 물어봤어."
박정만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저 사람도 뭔가 겪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셋째, 어떤 손님이 눈을 세 번 이상 깜빡이면 바로 도망쳐. 그건 화났다는 신호야."
"넷째는 없어요?"
"넷째. 하유리 셰프 앞에서 절대 음식 남기지 마. 손님이 남긴 건 몰라도 우리가 남기면 그날로 끝이야."
"끝이라는 게—"
"응. 그 끝."
말투가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마치 오늘 날씨 얘기하듯이 하는 말투였다.
나는 침을 삼켰다. 목이 말랐다. 물 한 잔이 간절했는데 여기서는 그것도 조심스러웠다. 물잔을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물어보기도 애매했다.
"김민석씨는 여기 얼마나 됐어요?"
"두 달."
"박정만씨는 3년이고."
"그렇지. 3년 버티면 뭐가 남을까 궁금하지?"
"뭐가 남는데요."
박정만이 웃었다. 이번엔 진짜 웃음처럼 보였다. 눈가에 잔주름이 잡혔다.
"몰라. 나도 궁금해."
김민석이 옆에서 픽 웃었다.
"형은 3년 동안 그 말만 했어요. 궁금하다, 궁금하다."
"그럼 넌 뭐가 남을 것 같은데?"
"저는 두 달밖에 안 됐잖아요. 아직 몰라요."
이 사람들, 서로 티격태격하는 게 낯설지 않았다. 오래 알아온 사이 같았다. 나만 여기서 이방인이었다.
그 순간 종이 울렸다.
딸랑.
입구 쪽에서 소리가 났다. 셋이 동시에 자세를 바로 했다. 등이 저절로 곧게 펴졌다. 손이 자연스럽게 배 앞으로 모였다. 나도 그 자세를 따라 했다. 몰랐는데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 같았다. 김민석이 낮게 속삭였다.
"첫 손님이다."
문이 열렸다. 찬 바람 같은 게 홀 안으로 훅 들어왔다. 초 몇 개가 흔들리다 꺼졌다. 여자 둘이 들어섰다. 한쪽은 나이가 있어 보였고 다른 한쪽은 어렸다. 자매인지 모녀인지 구분이 안 됐다. 둘 다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이상하게 서늘했다. 입은 웃는데 눈은 이쪽을 관찰하는 눈이었다.
"어서 오세요."
박정만이 완벽한 서비스 미소로 그들을 맞았다. 방금까지 나한테 규칙 읊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표정이 바뀌었다. 나는 그 뒤에 서서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목뒤가 뻣뻣했다.
손님이 자리에 앉으며 나를 흘깃 봤다. 눈이 마주쳤다. 순간 손목의 낙인이 뜨거워졌다. 화상 입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속으로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신입이네."
어린 쪽이 말했다. 목소리가 예뻤다. 그 예쁜 목소리로 다음 말을 이었다.
"맛있어 보인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묻지 않기로 했다. 첫째 규칙, 먼저 말 걸지 말 것. 나는 그 규칙을 충실히 지켰다. 대신 속으로만 되물었다. 맛있어 보인다니, 그게 나를 보고 하는 말이 맞나. 아니면 오늘 메뉴 얘기인가. 그런데 메뉴판은 아직 아무도 안 갖다줬는데.
옆에 선 박정만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가 다시 미소로 돌아왔다. 그 짧은 틈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저 표정, 뭔가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나만 모르는 뭔가를.
낙인이 계속 뜨거웠다. 손목을 슬쩍 만져봤다. 열이 나는 게 아니라 무언가 반응하고 있는 열이었다. 마치 이 손목에 새겨진 게 저 여자들을 알아본 것처럼.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나이든 쪽 여자가 나를 보며 천천히 입술을 핥았다. 그 동작 하나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첫 손님. 첫 근무. 그런데 이 첫걸음부터 뭔가 잘못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