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균열을 처음 발견한 건 순전히 직업병 때문이었다.
십일 년 동안 한빛물류 자재관리팀에서 일하며 몸에 새겨진 습관이 있었는데, 어떤 공간에 들어서든 벽과 천장과 바닥의 상태를 먼저 훑어보는 버릇이 바로 그것이었다. 창고 벽의 균열과 누수는 곧 재고 손실로 이어졌기에, 균열의 방향과 폭, 진행 속도를 보면 그 공간이 몇 년이나 버틸지, 다음 장마철에 물이 새어 들어올지 아닐지가 대략적으로 계산됐다. 이 낡은 아파트로 이사 온 첫날, 짐을 다 풀기도 전에 나는 벽지 아래 도배지가 살짝 들뜬 부분을 손끝으로 짚어보고 있었다.
보증금 삼천에 월세 사십오만 원짜리 방이었다.
이 년의 실업 기간 동안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곳이었고, 예전 같으면 창고에서 이런 상태의 자재를 보면 곧바로 불량으로 분류했을 텐데 이제는 그 불량한 방에 내가 직접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벽지를 걷어내자 시멘트 벽면에 손가락 두 개가 겨우 들어갈 만큼 좁은 균열이 드러났고, 나는 반사적으로 그 폭을 눈으로 재며 보수 비용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균열보수용 실란트 한 통에 육천 원, 인건비까지 따지면 대충 이만 원 안쯤.
집주인에게 연락해서 고쳐달라고 할지, 아니면 그냥 내가 때우고 살지 잠깐 고민했다. 어차피 이 정도 크기의 구조적 균열은 안전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손전등을 가져다 대고 안쪽을 들여다본 순간, 그 판단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균열의 안쪽은 생각보다 넓었다.
손가락 두 개가 겨우 들어갈 만큼 좁은 틈이었는데,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자 그 틈 너머로 마치 방 하나가 통째로 들어있는 것 같은 공간감이 느껴졌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감각을 부정할 방법이 없었다.
이런 건 십일 년 경력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콘크리트 벽 안쪽에 배관이 지나가는 공간이 있을 수는 있어도, 그 공간이 이렇게 깊고 넓게 느껴지는 경우는 상식적으로 성립하지 않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게 인접 세대와의 사이 벽이 무너져서 생긴 공동일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떠올렸지만, 그 생각도 곧 폐기했다. 이 아파트의 세대 간 벽 두께는 아무리 봐도 이십 센티미터를 넘지 않았으니까.
조명을 더 가까이 대자 균열 안쪽에서 어렴풋한 빛이 반사되어 나왔다. 처음엔 그 빛이 물기 같은 것에 반사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습기가 많은 낡은 아파트라면 벽 안쪽에 곰팡이나 물때가 있는 게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지어진 지 삼십 년이 넘은 건물이었고, 벽면 곳곳에 백화현상이 하얗게 번져 있는 걸 이미 확인한 터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 빛은 물기와는 다른, 훨씬 단단하고 매끈한 표면에서 반사되는 것처럼 보였다.
곰팡이나 물때가 만들어내는 반사는 이렇게 균일하지 않다. 빛이 산란되는 방식이 다르고, 각도에 따라 반짝이는 정도도 불규칙하게 변한다. 그런데 이 빛은 마치 유리나 광물의 결정면에서 반사되는 것처럼 일정한 각도에서 또렷하게 되돌아오고 있었다.
숨을 죽이고 눈을 균열에 바싹 붙였다.
그 순간, 시야가 갑자기 확장됐다.
좁은 틈 사이로 보이던 어둠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치 망원경의 초점이 맞은 것처럼 광활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붉은 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거대한 동굴이었고, 천장은 아득히 높아 끝이 보이지 않았으며, 바닥에는 검은 결정체 같은 것들이 산맥처럼 솟아 있었다.
뉴스에서 몇 번 본 게이트 너머 던전의 사진과 흡사했다.
몇 년 전부터 전국 곳곳에 게이트가 열린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그중 일부는 도심 한복판에 균열 형태로 나타났다가 며칠 만에 닫히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물류업계에서는 그런 게이트 인근 물류창고의 임대료가 폭락하는 사례를 두고 한동안 시끄러웠고, 나 역시 한빛물류에서 마지막으로 맡았던 업무 중 하나가 게이트 인근 지역 물류센터 운영 검토였다. 하지만 그 게이트들은 대개 공터나 산속, 폐건물 지하 같은 곳에서 발견됐지, 이렇게 사람이 사는 아파트 벽 안쪽에서 나타난 적은 단 한 번도 보고된 바 없었다.
그리고 그 동굴 한가운데,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었다.
처음엔 그게 바위인 줄 알았다. 크기가 워낙 거대해서, 산의 일부라고 해도 믿을 만큼 압도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표면에 비늘 같은 무늬가 촘촘히 새겨져 있는 걸 발견한 순간, 나는 그게 생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용이었다.
동화책이나 영화에서 봤던 어떤 용의 이미지와도 달랐다. 몸통은 검은 흑요석처럼 매끈하게 빛났고, 등을 따라 이어진 갈기 같은 돌기는 붉은 기운을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접힌 날개는 산 하나를 통째로 덮을 만큼 넓어 보였고, 웅크린 자세로 있는데도 그 크기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숨이 턱 막혔다.
십일 년 동안 온갖 건축물과 구조물의 크기를 눈으로 가늠하는 일을 해왔지만, 저 존재의 실제 규모를 계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파트 한 동은 될까, 아니면 그 이상일까. 재고 관리 대장에 이런 크기를 어떻게 기입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는 사실이, 이 순간에도 직업적 습관이 남아 있다는 걸 스스로 비웃게 만들었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이게 환각이거나, 벽 안쪽에 설치된 어떤 프로젝션 장치의 오작동이라고 믿고 싶었다. 낡은 아파트 벽 틈에서 게이트 너머의 던전이 보인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이런 종류의 감각적 오류라면 과로나 스트레스 때문일 가능성이 컸고, 실제로 이 년 동안 면접에서 떨어질 때마다 며칠씩 잠을 설쳤던 기억도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다음 순간 완전히 무너졌다.
감겨 있던 용의 눈이 천천히 열렸다.
동공이 없는, 온통 붉은빛으로 가득한 눈동자였다. 그 거대한 눈이 정확히 이쪽을, 균열 너머의 나를 향해 돌아왔다.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은 냉기가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마치 존재 자체가 발가벗겨진 채로 저 붉은 눈동자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고, 그 시선이 나라는 사람의 모든 것을, 십일 년의 직장생활과 이 년의 실업 기간과 통장에 남은 잔고까지도 한꺼번에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조차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 존재가 실재한다면, 이 균열이 실제로 게이트라면, 이 아파트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 폭등할까, 아니면 완전히 무가치해질까. 그런 어이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 순간, 나는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직업병은 사라지지 않았다.
손끝이 저릿해지다가 이내 감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용의 눈동자 속에서 뭔가가 소용돌이치듯 회전하기 시작했고, 그 회전이 점점 빨라지면서 균열 자체가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벽 전체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손바닥으로 짚고 있던 벽면에서 낮은 진동이 전해져왔고, 그 진동은 마치 심장박동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커지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이 균열이 단순한 시공 불량이나 노후화의 흔적이 아니라는 걸, 이 벽 자체가 살아있는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귓가에 낮고 무거운 소리가 울렸다. 사람의 언어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소리에서 어떤 의미가 전달되는 것 같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렸다는 듯한, 혹은 시험하고 있다는 듯한 울림이었다.
우연이 셋을 넘으면 우연이 아니라고 했다.
균열이 생긴 것도, 그 균열이 하필 내 눈에 걸린 것도, 그리고 그 너머에 저 용이 하필 지금 눈을 뜬 것도. 이 세 가지가 동시에 겹쳤다는 사실이 결코 우연일 수 없다는 걸, 나는 정신을 잃기 직전 마지막으로 깨달았다.
그 순간 균열 가장자리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내 눈을 향해 쏘아졌다.
피할 틈이 없었다. 아니, 피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늦었다. 그 기운은 정확히 내 두 눈에 박혀 들어왔고, 뜨거운 통증이 안구 전체를 관통하는 순간,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쓰러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용의 붉은 눈동자만은 잔상처럼 시야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