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던전 내부는 예상보다 훨씬 어두웠다. 초급 던전이라던 설명이 무색하게 통로 벽에 붉은 이끼 같은 것이 번져 있었고, 그 위로 미세한 마력 잔재가 스파크처럼 튀었다.
공기부터 이상했다. 초급 던전은 보통 곰팡이 냄새 정도만 나는데, 여긴 뭔가 탄 냄새 비슷한 게 코끝에 걸렸다. 편의점에서 파는 매운 라면 국물 냄새랑 비슷하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정말 그랬다.
백은서는 앞장서서 걸었다. 나는 뒤를 따랐다. 카메라 드론 두 대가 우리 위로 조용히 따라붙었다. 저 드론들은 대체 배터리를 얼마나 넣고 다니는 건지, 몇 시간째 저러고 떠 있는데 한 번도 충전하러 가는 걸 못 봤다.
"이 정도 던전이면 뭐가 나오나요?"
"보통은 저급 슬라임이나 초급 코볼트."
"보통은요."
"네. 보통은."
그 대답이 왠지 불안했다. 백은서 씨, 그 '보통'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힘주어 말하면 안 되는 거 아세요.
삼십 분쯤 걸었을 때, 통로 끝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코볼트 세 마리, 예상 범위. 백은서가 검을 휘둘렀고 정확히 두 번의 동작으로 세 마리가 동시에 쓰러졌다. 나는 뒤에서 그냥 구경했다. 짐꾼답게.
동작이 예뻤다. 검술 유튜브 채널 하나 파도 조회수 대박 날 것 같은 그런 동작이었는데, 정작 본인은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 같지 않았다. 검을 거두는 손짓도 무심했다.
"이대로면 편할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그 순간 통로 바닥이 흔들렸다.
와. 이건 뭐지.
바닥에서 뭔가가 솟아올랐다. 붉은 이끼가 뭉쳐서 만들어진 것 같은, 사람 두 배 크기의 형체였다. 던전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개체. 즉흥 출현형 변수. 방송 리얼리티 던전에 흔히 있는, 시청률을 위한 '깜짝 이벤트'였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생각하는데, PD들은 대체 시청자들이 뭘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 같으면 그냥 조용히 던전 클리어하는 방송을 보고 싶은데.
"이런 게 있었나요?"
"없었어요."
백은서가 검을 다시 겨눴다. 표정에 처음으로 미세한 긴장이 스쳤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한 걸 느꼈다.
괴물의 몸통 표면에 아주 얇은 선이 보였다. 마치 실핏줄처럼 이어진 그 선이 특정 지점에서 갑자기 끊겨 있었다. 정확히는 왼쪽 어깨 아래, 옆구리로 이어지는 지점.
뭐지 저건.
처음엔 그냥 조명 각도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건가 싶었다.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런데도 선은 그대로였다. 하얗게, 정확하게, 그 지점에서 끊어진 채로.
백은서가 정면으로 검을 휘둘렀다. 정타였는데도 괴물의 몸이 그대로 다시 붙었다. 재생형 개체였다.
"안 죽어요."
"보이는데요."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뭐가 보여요?"
"왼쪽 어깨 아래, 옆구리 쪽으로. 거기 선이 끊겨 있어요."
백은서가 나를 돌아봤다. 지금 이 상황에 그런 소리를 하냐는 눈빛이었다. 나도 안다, 이게 얼마나 뜬금없는 소리인지. 방금까지 짐꾼이라고 자칭하던 남자가 갑자기 괴물 약점을 지적하고 있으니.
하지만 그녀는 다음 순간 그냥 내 말을 믿었다. 이유는 몰랐다. 나도 몰랐다.
그 짧은 순간, 백은서의 눈에 스친 건 의심이 아니라 결단이었다. 검을 고쳐 잡는 손목의 움직임이 그걸 말해줬다.
검이 정확히 그 지점을 파고들었다. 괴물의 몸이 그대로 무너졌다. 재생하지 못하고, 붉은 이끼 덩어리가 바닥에 흩어져 사라졌다.
정적.
"...방금 뭐였죠."
백은서가 물었다. 나도 몰랐다. 나도 방금 내가 뭘 본 건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삼 년 전에도 이런 게 있었다. 파티원들의 장비나 스킬 발동 순간, 어딘가 아주 얇은 선이 끊긴 것처럼 보이는 지점. 그때는 그냥 눈이 이상한가 싶어서 무시했다. 아무도 그런 걸 본다는 얘기를 안 했으니까.
한번은 힐러의 지팡이 손잡이 부분에 그 선이 보였다. 다음 전투에서 지팡이가 부러졌다.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또 한번은 탱커의 방패 테두리에 보였다. 그날 방패가 깨졌다. 그때부터 조금씩 알아챘어야 했는데, 그땐 그냥 재수 없는 우연들이 겹치는 거라고 넘겼다.
최강혁이 나를 버린 이유 중 하나도 그거였다. 전투 중에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라고. 그때 그 자식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짐꾼이 뭘 안다고 나서냐는, 딱 그런 표정.
"저도 몰라요. 그냥... 보였어요."
"항상 보이나요?"
"아니요. 이런 상황에서만... 아니 그것도 확실치 않아요."
말하면서도 스스로 답답했다. 삼 년 동안 아무한테도 설명 안 하고 넘어갔던 거라 이제 와서 설명하려니 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
백은서는 잠시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에서 이전과 다른 뭔가가 스쳤다. 경멸도 아니고 동정도 아닌, 순수한 호기심.
"다시 걸어볼까요."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녀의 걸음이 아까보다 살짝 빨라진 걸 느꼈다. 나를 앞질러 걷는 뒷모습이 뭔가 달라 보였다. 방금 전까지는 그냥 실력 좋은 헌터였는데, 지금은 뭔가를 확인하려는 사람 같았다.
남은 통로는 별다른 사건 없이 지나갔다. 슬라임 몇 개체가 나왔고, 백은서가 처리했다. 나는 그 사이사이 계속 주변을 살폈다. 혹시 또 그 선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동시에 제발 안 보이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둘 다 진심이었다.
던전 끝, 귀환석이 있는 방에 도착했을 때, 우리 뒤를 따라온 드론이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정확히는 드론이 아니라 그 위에 달린 작은 구체가 홀로 공중에 떠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저건 뭐죠."
"시스템 관리 유닛인 것 같은데요."
백은서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경계가 섞였다. 검을 완전히 거두지 않은 채 자세를 살짝 낮췄다. 습관이 몸에 박힌 사람 특유의, 별거 아닌 것 같은데도 딱 준비된 자세.
구체가 우리 앞에서 멈췄다. 표면에서 빛이 몇 번 점멸하더니, 기계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싱크로 로그, 이례적 신호 검출."
"...뭐라고요?"
"백색 파동, 미확인 패턴. 재확인이 필요합니다."
구체가 나와 백은서를 번갈아 스캔했다. 빛이 붉은색에서 갑자기 하얀색으로 바뀌었다.
그 하얀빛이 정확히 내 쪽을 향해 멈췄다.
던전 안에 있던 다른 모든 소리가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다. 백은서도 그걸 느꼈는지 나를 쳐다봤다. 구체는 계속 점멸했다. 마치 뭔가를 결정하는 것처럼, 혹은 뭔가를 보고하는 것처럼.
"뭘 확인한다는 거예요."
내가 물었지만 구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계속 나를 향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