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최약 짐꾼, 최강을 읽다

2화

정확히 삼 초 정도, 스튜디오 전체가 얼어붙었다. 카메라 렌즈 십수 개가 일제히 방향을 틀어 나를 향하는 게 느껴졌다. 조명 아래서 땀이 흐르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정적이었다. 나는 무대 맨 끝, 참가자 라인 중에서도 가장 눈에 안 띄는 자리에 서 있었는데, 그 정적이 정확히 나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다음엔 사방에서 웃음소리, 야유, 탄식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방청석 맨 앞줄에 있던 누군가가 "장난하나"라고 외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옆줄에서는 누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옆 사람에게 뭐라고 속닥이는 게 보였다. 다들 저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나만 몰랐던 것 같았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붙잡고 헛기침을 했다. "어, 예상치 못한 선택이 나왔는데요. 백은서 님, 확인차 다시 여쭙겠습니다. 저기 맨 끝, 한도윤 씨를 선택하신 거 맞으신가요?" "네." 대답이 짧았다. 부연 설명도 없었다. 백은서는 그냥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방청석의 소란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서 있었다. 이게 몰래카메라인가 싶었지만 카메라는 진짜였고 조명도 진짜였다. 조명이 너무 뜨거워서 이마에 땀이 배는 것도 진짜였다. 진짜인 건 죄다 안 좋은 쪽이었다. 무대 뒤에서 최강혁이 걸어 나왔다. 특별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해 있던 그가, 마이크를 받아 들고 웃으며 말했다. "은서 씨, 혹시 동정심이십니까? 아니면 뭐, 특별한 취향이 있으신가." 방청석에서 다시 웃음이 터졌다. 최강혁은 아주 신났다. 넥타이까지 살짝 풀어 젖히면서 여유 있는 척을 하는 게, 삼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인간은 변한 게 없었다. 저 웃는 얼굴만 보면 옛날 생각이 자동으로 따라붙는데, 그중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었다. "저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는 제가 잘 압니다. S급 파티에서 짐이나 나르던 인간이거든요. 정확히는 그것도 못 해서 버림받았죠." 다시 웃음. 몇 명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웃었다. 나는 그냥 서서 그걸 다 들었다. 이런 거에 익숙해지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이제는 헷갈렸다. 익숙해진다는 것 자체가 이미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백은서가 최강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저 얼굴은 방금 전 나를 지목했을 때와 정확히 같은 온도였다. "짐을 나른다는 건, 파티가 그를 필요로 했다는 뜻이겠죠." 스튜디오가 다시 조용해졌다. 방청석에 앉은 누군가가 "오..." 하고 짧게 내뱉는 소리가 마이크에 잡혔다. 최강혁의 웃음이 살짝 굳었다. "필요요? 아니, 은서 씨, 그냥 있으나 마나 한 인간이었다는 겁니다. 전투력 측정 불가. 아마 오늘 싱크로율도 역대 최저를 찍을걸요." "그럼 지켜보시면 되겠네요." 짧게 끊어버리는 화법. 최강혁은 뭐라 더 말을 이으려다 그냥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방청석에서 몇몇이 낮게 웃었지만 아까 같은 폭소는 아니었다. 사회자가 재빨리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듯 다음 순서로 넘어가려는 기색을 보였다. 나는 백은서를 봤다. 백은서는 나를 보고 있었다. 여전히 표정이 없는데,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나를 골라준 이유를 나만 모르는 것 같은, 그런 이상한 기분. 조명 아래서 백은서의 옆얼굴이 유난히 하얗게 빛났고, 그게 이 소란스러운 공간과 어울리지 않게 고요해서 오히려 눈에 밟혔다. "저를 왜 선택하셨습니까?" 방송 카메라 앞이라는 걸 알면서도 물어봤다. 어차피 여기서 조용히 있어봤자 편집도 안 될 텐데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뭐라도 물어봐야 덜 억울할 것 같았다. 백은서가 대답했다. "약해 보였고, 여분의 것을 요구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게 답니까?" "불만이신가요?" "아뇨. 딱 저다운 이유네요." 방청석 누군가가 킥킥거렸다. 최강혁이 못마땅한 얼굴로 자리를 떴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은 삼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진심이구나. 진심이라는 단어가 저렇게 나쁜 방향으로 쓰이는 걸 보면 좀 서글퍼지는데, 이제는 서글퍼지는 것도 지친다. 다른 페어들이 차례로 발표됐다. 도하나와 선우진. 윤소야와 이유성. 강노아와 도강준. 신하은과 여리안. 다들 자연스러운 조합이었고, 다들 나름의 기대와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발표될 때마다 방청석에서 환호가 터졌고, 페어들은 서로 손을 맞잡거나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화면에는 그들의 능력치와 등급이 자막으로 떠올랐다. A급, B급, 심지어 S급 후보까지. 다들 뭔가 그림이 되는 조합이었다. 나와 백은서 페어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자막도 애매하게 짧았고, 화면 전환도 빨랐다. 대신 다른 것이 있었다. 참가자들의 노골적인 시선. "최강 검사가 왜 저런 사람을..." 도하나가 선우진에게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못 들은 척하는 게 나의 특기였다. 웬만한 소음은 다 그냥 흘려보내는 훈련이 삼 년 동안 잘 됐다. 강노아는 대놓고 말했다. "뭐야, 저거 진짜야? 백은서 씨 안목 의심되는데."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기보다는, 딱히 반박할 근거도 없어서였다. 백은서의 안목이 의심스럽다는 데엔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였다. "첫 매칭 발표가 끝났으니, 이제 본격적인 첫 시험을 진행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다시 활기를 띠었다. "각 페어는 지금부터 지정된 초급 던전에서 합동 탐색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데이터로 싱크로율이 최초로 측정됩니다." 스크린에 던전 지도가 떴다. 낡은 유적 형태의 초급 던전. 위험도는 낮다고 표시돼 있었지만, 이런 프로그램에서 '낮다'는 표시는 별로 신뢰가 안 갔다. 삼 년 동안 여기저기서 짐을 나르며 봐온 초급 던전들이 얼마나 자주 사람을 물어 죽였는지 생각하면, 저 파란 글씨는 그냥 방송용 안심 문구에 가까웠다. 백은서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걸음걸이가 이상할 만큼 흔들림이 없었다. 저런 사람이 왜 나 같은 걸 골랐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스쳤지만, 물어봐도 뭐 대단한 답은 안 나올 것 같았다. "준비됐나요?" "준비랄 게 있나요. 저는 짐꾼이라서요." "이번엔 짐이 아니라 파트너입니다." 담백한 말투였는데, 그게 왜 이렇게 낯설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짐이라는 말과 파트너라는 말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멀게 느껴진 게 오랜만이었다. 장비를 챙기고 던전 입구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카메라 렌즈가 나를 계속 따라오는 걸 느꼈다. 대기실에서 받은 경장갑과 단검 하나가 내 전부였다. 다른 참가자들은 각자의 무기와 방어구를 자연스럽게 걸치고 있었는데, 나는 그 사이에서 어색하게 끈을 조이며 걸었다. 이 순간부터 뭔가가 시작된다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는 아직 몰랐지만. 던전 입구 앞에서 백은서가 검을 뽑아 확인했다. 칼날이 조명을 받아 하얗게 번쩍였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들어가죠." 문이 열렸다. 안에서부터 냉기가 밀려나왔다. 마치 이 안에 있는 게 뭐든, 우리를 반기지 않는다는 걸 미리 알려주는 것 같았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