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다음날 새벽, 장을 보러 산길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산내리 슈퍼는 마을 초입에 있고, 거기까지 가려면 작은 산길을 하나 지나야 한다.
평소랑 다를 게 없는 아침이었다.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봉지, 그리고 어제 깜빡 잊은 소금까지.
머릿속으로 장바구니 목록을 정리하며 걷고 있었다.
20년째 혼자 밥해먹고 사는 놈이 장보기 리스트 짜는 게 인생의 낙이라는 게 좀 처량하지만, 뭐 어쩌겠나.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숲이 너무 조용했다.
새소리도, 벌레 소리도 없이, 완전한 침묵.
탐색자로 산과 던전을 오래 누빈 사람은 안다.
이 정적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건지.
매미도 울어야 하고, 산비둘기도 구구거려야 하고, 저 아래 개울에서 개구리 몇 마리는 밤새 짝짓기 콘서트를 열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어떤 소리도 없다.
마치 온 산이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전도서 3: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지금은 잠잠할 때인가 본데, 나는 이게 좋은 신호가 아니라는 걸 20년 탐색자 경험으로 안다.
성경도 가끔은 날씨예보보다 정확하다.
다만 예보관이 좀 불친절하다는 게 문제지.
타다다닥!
뭔가 빠른 발소리가 산길 위쪭에서 들려왔다.
사람 발소리처럼 급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을 올려다봤다.
등산객인가?
이 시간에 이 산을 오르는 사람은 없는데.
하다못해 나물 캐는 할머니들도 해 뜨고 나서 움직이신다.
작은 체구의 아이 하나가, 숲을 헤치고 내 쪽으로 굴러 내려왔다.
허름한 로브 같은 걸 걸치고 있었는데, 원단이 좋아 보이는 걸 보니 시골 옷은 아니었다.
가만 보니 저건 시장표 로브가 아니라 브랜드 태그 뜯어낸 명품 로브다.
등산화도 안 신고 저런 걸 입고 산을 뛰어다니는 거 자체가 이미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머리카락은 다 헤져서 뭉쳐 있었고, 얼굴엔 흙과 나뭇잎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누가 봐도 며칠은 씻지 못한 몰골.
저 나이대 아이가 저런 상태로 혼자 산을 뛰어다닌다는 것부터가 이미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신호다.
그 뒤로, 뭔가 거대한 그림자가 나무들을 부러뜨리며 쫓아왔다.
쿠쿠쿵! 쿠쿠쿵!
땅이 흔들렸다.
발밑으로 진동이 그대로 전해졌다.
아, 이거 지진 아니고 그냥 짐승이 뛰어오는 소리구나.
덩치가 집채만 한 멧돼지처럼 생겼는데, 등에 가시 같은 게 촘촘히 나 있고 눈이 세 개였다.
딱 봐도 C급 몬스터, '삼안멧돼지' 정도 되겠다.
저놈이 나무를 부러뜨리며 지나가는 궤적을 보니, 딱 태풍 지나간 자리 같았다.
조만간 산림청 직원이 와서 벌목 허가증 요구할 판이다.
[욥기 41:22, 그것의 목에는 강한 힘이 있고 그 앞에는 절망이 있으니]
애가 지금 딱 그 절망을 등에 지고 뛰고 있는 셈이다.
욥기가 진짜 무서운 게, 이런 순간에 딱 맞는 구절이 항상 튀어나온다는 거다.
성서 저자가 몬스터 헌터였나 싶을 정도다.
여기서 잠깐, 그 아이의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는 몰랐지만, 이 아이는 서은하였다.
서은하는 명문 마술 가문 백로가의 딸로 태어났다.
백로가라면 이 대륙에서 마법사 집안 순위를 매길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그런 유서 깊은 가문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마력값 측정을 받았고, 그 숫자는 가문의 운명을 결정한다.
평범한 마법사가 백에서 이백, 유망한 인재는 삼백을 넘겼다.
가문의 적장자나 적장녀 정도 되면 오백을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서은하의 수치는 10이었다.
측정관이 그 숫자를 발표하는 순간, 홀 안이 정적에 잠겼다.
누군가는 헛기침을 했고, 누군가는 시선을 피했다.
가주는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렸다.
그게 다였다.
축하도, 위로도, 심지어 실망의 말 한마디도 없었다.
그날부터 서은하는 백로가의 어디에도 이름이 남지 않았다.
식사 자리에서도, 가문 행사에서도, 존재 자체가 지워졌다.
초상화에도, 족보에도, 그 어디에도 그 이름은 적히지 않았다.
"쓸모없는 아이야."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게 은하가 여덟 살 때였다.
그날 이후로 은하는 자기 자신을 그 말로 정의했다.
누가 물어봐도 대답은 늘 같았다.
"저는 쓸모없는 아이예요."
마치 그게 자기 이름인 것처럼.
결국 열 몇 살이 된 지금, 가문은 그녀를 완전히 버렸다.
정확히는 버렸다는 말도 사치다.
그냥 어느 날 방문이 잠겼고, 식사가 끊겼고, 하인들도 더 이상 그 방 앞을 지나지 않았다.
여기까지 도망쳐 온 것도, 살기 위해서였다.
숨어 살 곳을 찾다가 이 마을 근처까지 흘러들어왔고, 하필 삼안멧돼지의 영역을 건드린 것이다.
운이 없다는 말로는 부족한 인생이었다.
다시 내 시점으로 돌아오면.
"거기, 이쪽으로!"
나는 소리쳤다.
아이가 이쪽을 봤는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뛰면서도 우는 게 보였다.
숨은 턱까지 차올랐고, 다리는 이미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발은 멈추지 않았다.
무서워서 우는 게 아니라, 뭔가 더 근본적인 걸 포기한 표정 같았다.
그건 죽음이 무서운 얼굴이 아니었다.
차라리 죽어도 상관없다는, 그런데도 몸이 알아서 도망치고 있는 얼굴이었다.
[시편 22:1,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딱 저런 표정이었다.
남들 앞에서 신에게도 못 물을 걸, 몬스터 앞에서 대신 묻는 표정.
사람이 진짜 밑바닥까지 가면 오히려 담담해진다더니, 저 애 얼굴이 딱 그거였다.
삼안멧돼지가 거의 아이 등 뒤까지 따라붙었다.
콧김이 아이의 목덜미까지 닿을 거리였다.
앞발을 들어 올렸다.
저거 맞으면 뼈도 못 추린다.
아니, 뼈는커녕 이름표조차 못 찾을 거리다.
타이밍상 여기서 내가 뛰어가야 하는 게 정상이다.
액션 만화였으면 벌써 주인공이 몸을 날려서 아이를 감싸 안았을 타이밍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왜냐면, 저 정도는 딱히 급할 게 없었으니까.
삼안멧돼지, C급.
내 기준으로는 감자밭에 든 멧돼지랑 크게 다를 게 없는 급이다.
동네 어르신이 삽 들고 나가서 훠이훠이 쫓아도 될 정도의 등급이라는 뜻이다.
다만 저 아이한테는 세상이 끝나는 순간이겠지.
그래서 나는 뛰지 않고, 그냥 손을 들었다.
소매 안쪽에서 뭔가 근질거리는 느낌이 올라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타이밍만 맞으면 된다.
서두를 필요 없다.
20년 동안 배운 게 그거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만큼만.
너무 빨리 개입하면 낭비고, 너무 늦으면 사고다.
이 균형 감각 하나로 여기까지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안멧돼지의 앞발이 아이 머리 위로 떨어지려는 그 순간.
나는 손끝을 살짝 튕겼다.
딱 그거였다.
특별한 동작도, 외침도 없이.
누가 봤으면 그냥 파리 쫓는 손짓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 이상한 게 시작되고 있었다.
삼안멧돼지의 앞발 아래, 공기가 얼어붙는 것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촤르르르륵!
기이한 소리가 났다.
얼음이 얼어붙는 소리 같기도 하고, 유리에 금이 가는 소리 같기도 한, 어느 쪽으로도 딱 맞지 않는 그런 소리.
삼안멧돼지의 발이 그 자리에서 멈춘 채로, 마치 정지화면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이건 또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