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복도에는 부서진 형광등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유리 조각들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302호 문틀은 완전히 뜯겨 나가 있었고, 안쪽 바닥에는 검은 얼룩 같은 것이 넓게 퍼져 있었다.
나는 그쪽을 오래 보지 않으려 애쓰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숨을 쉴 때마다 코끝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계단에는 신발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분홍색 운동화였다.
사이즈로 봐서는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가 신었을 법한 크기였다.
나는 그걸 보고 잠깐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발을 옮겼다.
2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어디선가 물이 새는 소리가 들렸다.
배관이 터진 모양이었다.
벽을 타고 흘러내린 물이 계단 한쪽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나는 그 웅덩이를 밟지 않으려고 발을 크게 벌려 디뎠다.
1층 로비에 다다르자, 유리문이 통째로 깨져 있는 게 보였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로비 바닥 전체에 별처럼 흩어져 있었다.
안내판이 서 있던 자리에는 안내판만 덜렁 넘어져 있고, 화분은 흙째로 쏟아져 있었다.
나는 그 틈으로 밖을 살폈다.
도로 위에 승용차 두 대가 뒤집혀 있었고, 그중 한 대는 아직 시동이 걸린 채 헤드라이트가 켜져 있었다.
엔진 소리가 낮게, 규칙적으로 웅웅거리고 있었다.
저 차는 언제까지 저렇게 켜져 있을까, 나는 잠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노고산로 저 끝에는 아까 봤던 회색 형체가 웅크린 채 뭔가를 뜯어먹고 있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지 않기로 했다.
눈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유리문에서 한 발짝 물러나 로비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건물 담벼락 밑에는 종이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비를 맞았는지 한쪽 귀퉁이가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걸 주웠다.
볼펜으로 급하게 쓴 글씨였다.
글씨가 삐뚤빼뚤한 걸로 봐서, 쓴 사람도 손이 떨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옥상 대피 중, 안전한 곳 아니면 오지 마세요.'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 말고도 이 건물에 숨어 있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로비 안쪽을 훑었다.
어딘가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등을 조금 펴게 만들었다.
관리실 유리창도 깨져 있었다.
나는 창틀에 손을 얹고 안쪽을 들여다봤다.
안에는 CCTV 모니터가 켜져 있었지만, 화면은 반쯤 흑백 노이즈였다.
모니터 여러 대 중 몇 개는 완전히 꺼져 있었고, 나머지는 지지직거리며 화면을 삼켰다 뱉었다 했다.
나는 모니터 속에서 잠깐, 뭔가 움직이는 걸 본 것 같았다.
회색 그림자 같은 것이 화면 구석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확인할 새도 없이 노이즈가 다시 화면을 덮었다.
나는 관리실 안으로 들어가볼까 하다가, 그 생각을 접었다.
지금 저 안에 들어가는 건 아무 이유 없이 위험을 늘리는 짓이었다.
'이제 됐다. 돌아가자.'
나는 계단을 다시 올랐다.
올라가는 동안, 아까 봤던 분홍색 운동화를 다시 지나쳤다.
이번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3층 복도로 접어드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계단 아래쪽 어둠만 조용히 고여 있었다.
그 어둠을 몇 초쯤 더 바라봤지만, 움직이는 건 없었다.
나는 애써 그 느낌을 무시하며 301호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닫고, 아까 치워뒀던 책상과 캐리어와 서랍장을 다시 밀어붙였다.
손이 떨려서 서랍장을 두 번이나 놓쳤다.
세 번째 시도에서야 겨우 서랍장을 문 앞에 붙일 수 있었다.
[테리토리 방어도가 복구되었습니다.]
나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등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어.'
확신은 없었지만, 그 느낌만은 확실했다.
나는 몇 번이나 문 쪽을 돌아보다가, 결국 등을 벽에 붙이고 앉았다.
나는 물 한 병을 꺼내 반쯤 마시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감각이 그제야 살아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했다.
주머니에서 아까 주운 종이를 꺼내 다시 읽었다.
'옥상 대피 중.'
나는 그 문장을 손가락으로 몇 번이나 짚어봤다.
이 건물 어딘가에 다른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조금은 위안이 됐다.
'옥상까지는 몇 층이지.'
'여기서 두 층만 더 올라가면 되나.'
나는 머릿속으로 계단 수를 세어보다가, 지금 움직이는 건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휴대폰 배터리는 68퍼센트에서 멈춘 채 시간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창밖으로 해가 저물어가는 걸 보며 오후 6시쯤이라고 짐작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빛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뭐라도 더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몇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벽에 기댄 채 잠깐 잠이 든 모양이었다.
꿈인지 아닌지 모를 얕은 잠이었다.
눈을 뜬 건, 현관 쪽에서 들려온 소리 때문이었다.
똑, 똑.
노크였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목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괴물이라면 저렇게 노크를 할 리가 없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문틀에 붙여놓은 서랍장 너머로, 누군가의 숨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숨을 죽이고, 문에 귀를 가까이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