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쿵, 하는 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나는 부엌에서 식칼을 집어 들었다.
칼자루가 미끄러워 손바닥에 힘을 꽉 주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처럼 뛰었다.
나는 그 상태로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문에 달린 작은 렌즈로 밖을 내다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누군가 렌즈 반대편에서 나를 마주 보고 있을 것 같은 상상이 계속 들었다.
대신 나는 방 안을 빠르게 훑으며 무거운 것들을 찾았다.
원룸이라 가구가 많지 않았다.
가진 거라곤 접이식 책상 하나, 옷장 하나, 부엌 서랍장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도 이 순간엔 그것들이 전부 방패가 될 수 있었다.
먼저 접이식 책상을 문 앞으로 끌어다 놓았다.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나서 순간 손을 멈췄다.
밖에서 반응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다시 움직였다.
다음으로 옷장 밑에 있던 캐리어를 꺼냈다.
2년 전 여행 갈 때 쓰려고 산 24인치짜리였다.
그 안에 겨울 이불과 패딩을 눌러 담아 무게를 늘렸다.
지퍼가 꽉 껴서 잠기지 않았지만, 어차피 열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부엌 서랍장을 통째로 밀어붙였다.
서랍장 안에는 3년 전 산 이케아 접시들이 부딪히며 짝짝,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서 나는 잠깐 숨을 참았다.
책상, 캐리어, 서랍장.
문 앞에 세 겹으로 쌓고 나니 그제야 조금 숨이 쉬어졌다.
[테리토리 방어도가 소폭 상승했습니다.]
창이 그렇게 알려왔다.
나는 그제야 이 스킬이 아예 쓸모없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적어도 물건을 세는 것, 정리하는 것, 무언가를 쌓는 것에서는 도움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공격 스킬은 없는 걸까.'
나는 창을 몇 번 넘겨봤지만 방어도, 자원, 생성이라는 항목 외엔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싸우는 쪽이 아니라 버티는 쪽으로 만들어진 스킬인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은 걸지도 몰랐다.
나는 원래 싸움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부엌 찬장을 열어 재고를 세어봤다.
즉석밥 세 개, 라면 다섯 개, 생수 여섯 병, 참치캔 두 개.
찬장 문을 여닫을 때마다 경첩이 끼익, 소리를 냈다.
그 소리조차 신경 쓰여서 나는 문을 최대한 천천히 닫았다.
냉장고도 열어봤다.
계란 네 개와 반쯤 남은 김치, 그리고 유통기한이 이틀 지난 우유 하나가 있었다.
우유는 냄새를 맡아보니 아직 괜찮은 것 같았다.
그래도 상하면 바로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걸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손가락을 접으며 계산했다.
하루 두 끼로 잡으면 즉석밥과 라면으로 나흘, 참치캔과 계란으로 이틀 정도 더.
총 엿새.
김치는 반찬으로 조금씩 나눠 먹으면 그보다 더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유는 셈에 넣지 않았다.
어차피 하루 이틀 안에 버려야 할 테니까.
스킬로 물품을 생성한다 해도 하루 자원 30으로는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보유 자원: 25/30, 초기화까지 22시간 41분 남음]
하루에 한 번씩 리셋된다는 뜻인 듯했다.
그러면 하루에 최대 30만큼, 라면 한 봉지에 자원이 얼마나 드는지 다시 확인해야 했다.
나는 창을 넘겨가며 생성 항목을 하나씩 눌러봤다.
라면 한 개에 10, 생수 한 병에 5.
그러니까 오늘 남은 25로는 라면 두 개와 물 한 병이 최대였다.
나는 남은 자원 25로 라면 두 개와 물 한 병을 생성해뒀다.
손에 잡힌 라면 봉지는 익숙한 그 브랜드 그대로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포장지 디자인이 똑같다는 게 이상하게 우스웠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최대한 아껴야 했다.
밖은 조용해졌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 앞으로 다가가 렌즈에 눈을 댔다.
복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302호 문이 반쯤 부서져 안쪽이 시커멓게 보였다.
302호에는 혼자 사는 할머니가 살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항상 장바구니를 끌고 다니셨다.
저 안이 저렇게 됐다면 할머니는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눈앞에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
[경고: 미확인 개체 접근 중.]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다.
렌즈에서 눈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등이 벽에 닿을 때까지 계속 물러났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애썼다.
몇 초, 몇십 초가 지났지만 문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식칼을 두 손으로 꽉 쥔 채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칼끝이 조금씩 떨리는 게 눈에 보였다.
[경고가 사라졌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바닥에 앉아서도 한동안 문 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게 지나간 건가, 아니면 그냥 다른 데로 간 건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게 가장 답답했다.
나는 휴대폰을 다시 켜봤다.
신호는 여전히 없었다.
인터넷도, 통화도, 문자도 되지 않았다.
액정에는 배터리 62퍼센트라는 숫자만 떠 있었다.
이것마저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정보를 얻을 유일한 방법을 떠올렸다.
직접 나가서 눈으로 보는 것.
'하지만 저놈들이 아직 근처에 있을 수도 있어.'
나는 한참을 문 앞에 앉아 고민했다.
방 안에만 있으면 안전할 것 같았지만, 물자는 엿새면 끝이었다.
엿새 안에 이 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었다.
오히려 더 심해질 수도 있었다.
그 안에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어차피 나가야 했다.
나는 창밖을 흘깃 봤다.
커튼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밝았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차라리 지금, 상대적으로 조용한 지금 정찰을 해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다시 살폈다.
후드티에 청바지, 운동화.
움직이기엔 나쁘지 않은 차림이었다.
나는 식칼을 허리춤에 찔러 넣고, 문 앞에 쌓아둔 가구들을 조심스럽게 치웠다.
책상을 옮기고, 캐리어를 옮기고, 서랍장을 밀어냈다.
그 과정에서 접시가 다시 짝짝, 소리를 냈다.
나는 그 소리마다 숨을 멈추고 문밖의 기척을 살폈다.
손잡이를 잡은 손에 땀이 찼다.
'딱 5분만 보고 온다.'
나는 그렇게 되뇌며 문을 조금씩 열었다.
경첩이 낮게 끼익, 소리를 냈다.
복도의 찬 공기가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그 공기 속에서 나는 옅은 피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