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아침 6시 50분, 알람이 울렸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더듬어 알람을 껐다.
마포구 노고산동, 준공 22년 차 도시형생활주택 3층, 전용 6.5평짜리 내 방이었다.
보증금 3천만 원에 월세 55만 원, 서한대학교까지 도보 15분 거리라는 이유로 계약한 곳이었다.
천장 벽지는 누렇게 얼룩져 있었고, 그 얼룩은 정확히 내 머리맡 위쪽에 있었다.
비가 오면 저기서 물이 샌다는 걸 안 건 이사 온 지 한 달째 되던 날이었다.
집주인은 그때 수리비 견적을 받아보겠다고 했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견적서는 오지 않았다.
나는 그 얼룩을 한 번 흘겨보고 몸을 일으켰다.
창문을 살짝 열자 매캐한 도시 공기가 밀려들어 왔다.
새벽 청소차 지나가는 소리와 누군가의 오토바이 배기음이 뒤섞여 들렸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익숙한 아침의 소리였다.
나는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식탁 겸 책상으로 쓰는 접이식 테이블 위에 어제 미리 꺼내둔 식빵 두 장이 놓여 있었다.
파리바게뜨 통밀식빵, 3,900원짜리였다.
한 봉지를 사면 열흘은 아침을 해결할 수 있어서 나는 늘 같은 걸 샀다.
토스터에 식빵을 넣고, 그 사이 텀블러에 인스턴트커피를 탔다.
맥심 모카골드 한 봉을 뜨거운 물에 털어 넣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텀블러는 작년 생일에 조원 중 한 명이 준 거였는데, 그 조원은 지금 이 팀 프로젝트에서 가장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경영전략 세미나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텀블러 뚜껑을 닫으며 오늘 하루 일정을 머릿속으로 짚어봤다.
'9시 발표, 12시 알바, 저녁엔 과제.'
토스트가 익는 3분 동안 나는 발표 자료를 다시 훑었다.
USB에는 어제 새벽까지 만든 PPT 파일이 들어 있었다.
슬라이드는 총 32장이었고, 참고문헌만 열두 개를 정리했다.
조원 다섯 명 중 발표를 맡은 건 나 하나였다.
다들 취업 준비로 바쁘다는 이유였고, 나는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단체 카톡방에는 사흘 전부터 '발표 잘 부탁한다ㅎㅎ'라는 메시지 하나만 덜렁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메시지에 이응 두 개로 답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박이었다.
'이번 학기 끝나면 팀플 없는 수업만 듣자.'
토스트가 튀어 오르는 소리와 동시에, 창밖에서 비명이 들렸다.
짧고, 날카롭고,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토스터를 그대로 둔 채 창가로 다가갔다.
손에는 아직 텀블러 뚜껑이 들려 있었다.
도로가 이상했다.
노고산로 한복판에 균열이 생겨 있었고, 그 틈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스멀스멀 새어나오고 있었다.
버스 한 대가 인도 쪽으로 반쯤 기울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가방도 던져버린 채 달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로 뛰고 있었다.
나는 눈을 몇 번이나 비볐다.
꿈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되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창문 틀을 잡은 내 손끝은 분명히 차가운 알루미늄의 감촉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텀블러 뚜껑을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안개 속에서 뭔가가 걸어 나왔다.
키는 2미터쯤 되어 보였고, 팔이 몸통보다 길었다.
피부는 축축한 회색이었고, 걸음마다 아스팔트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쿠웅, 쿠웅, 하는 그 소리가 3층 창문까지 진동으로 전해졌다.
나는 숨을 멈춘 채 그 형체를 바라봤다.
그것의 얼굴에는 눈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대신 세로로 길게 찢어진 입 같은 틈이 있었고, 그 틈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창틀을 움켜쥔 손에 힘을 줬다.
'저게, 뭐야.'
그 순간 사람 한 명이 그 형체에게 붙잡혔다.
회사원처럼 넥타이를 맨 남자였다.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창문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나는 벽을 짚고서야 겨우 균형을 잡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귓속에서는 내 맥박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아니, 이런 걸 어떻게 신고해.'
그 순간, 머릿속에서 낯선 소리가 울렸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떤 기계음도 아니었다.
그냥, 머릿속에 문장이 떠올랐다.
[특수 조건이 감지되었습니다.]
[스킬 '일상생활(日常生活)'이 각성했습니다.]
나는 눈을 크게 뜬 채 방 안을 둘러봤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토스터에서는 여전히 연기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고, 텀블러의 커피는 아직 뜨거웠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그 비명과 진동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꿈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뺨을 손등으로 눌러봤다.
아팠다.
확실히 아팠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살짝 고일 정도였다.
밖에서 또 한 번, 사람의 것인지 짐승의 것인지 모를 소리가 울렸다.
나는 창가로 다시 다가가려다 멈춰 섰다.
머릿속에 또 다른 문장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처음보다 더 선명했다.
[현재 위치를 '테리토리'로 등록하시겠습니까?]
그 문장은 마치 눈앞에 반투명한 창처럼 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 문장을 만져보려 했다.
'테리토리가 뭔데.'
'등록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6.5평짜리 방, 파리바게뜨 식빵 봉지, 얼룩진 천장 벽지, 그게 내가 아는 전부였다.
나는 그 문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이 그 표면 같지 않은 표면에 닿는 순간, 아래에 작은 문구 하나가 추가로 떠올랐다.
[경고: 최초 등록 이후에는 등록 위치를 변경할 수 없습니다.]
나는 손을 그대로 허공에 멈춘 채 굳어버렸다.
창밖에서는 또 한 번 아스팔트 갈라지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텀블러 안의 커피에서 올라오던 김이 어느새 사그라들어 있었다.
나는 그 경고문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