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눈을 떴을 때, 처음 느낀 건 허리 통증이었다.
바닥에서 자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온몸이 뻐근했다. 어깨는 돌덩이처럼 뭉쳐 있었고, 목을 돌릴 때마다 뻐걱거리는 소리가 실제로 들리는 것 같았다.
【알림: 셸터 유지 시간이 5일 23시간 남았습니다.】
하루가 또 지났구나.
일어나 앉아서 스트레칭을 하며 방 안을 둘러봤다. 손목을 꺾고, 발목을 돌리고, 목을 좌우로 젖히면서 굳은 몸을 억지로 깨웠다.
어제 정리한 그대로였다. 침낭, 손전등, 그리고 텅 빈 바닥.
일단 오늘의 목표는 명확했다. 포인트를 더 모으는 것.
하지만 방 안의 잔해는 이미 다 주워서 인터페이스에 넣었다. 더 이상 주울 게 없었다. 벽돌 조각, 나사못, 부서진 타일 파편까지 싹싹 긁어모은 게 어제였으니까.
그럼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뜻인가.
다시 그 어둡고 습한 통로가 떠올랐다. 으르렁거리던 소리도. 벽을 타고 울리던 그 낮은 진동까지, 생각만 해도 손끝이 저릿했다.
망설이는 사이, 배가 또 요란하게 신호를 보냈다.
꾸르륵.
"알겠어, 알겠다고."
혼잣말을 하며 배급 서랍을 열었다. 물병과 건빵이 또 나왔다. 어제와 똑같은 구성, 똑같은 양. 하루도 빠짐없이 이 두 개만 나오는 걸 보면 여긴 정말 최소한의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곳인 모양이었다.
【알림: 최소 생존 배급은 하루 1회로 제한됩니다.】
헐, 이것도 제한이 있었네.
건빵을 씹으며 인터페이스를 다시 살펴봤다. 혹시 다른 방법이 있을까 해서였다. 이가 아플 정도로 딱딱한 건빵을 우물거리면서, 화면 넘기듯 항목을 하나씩 눌러봤다.
【포인트 획득 방법: 몬스터 처치, 자원 회수, 특수 임무 완료】
특수 임무?
처음 보는 항목이었다. 클릭해보니 목록이 펼쳐졌다.
【임무: 안전 구역 내 이물질 3개 회수 - 보상 10포인트】
이물질?
방 안을 다시 살펴봤다. 어제 다 치운 것 같은데, 정말 있나 싶어서 구석구석을 살폈다. 침낭을 들어보고, 벽 모서리를 손끝으로 훑고, 배급 서랍 안쪽까지 눈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정말로, 문 근처 바닥에서 뭔가 작은 게 눈에 들어왔다.
허리를 숙여 자세히 보니, 그건 흙 부스러기가 아니었다.
···발자국?
작은 발자국이었다. 흙과 먼지가 섞인 자국인데, 성인의 발보다 훨씬 작았다. 손전등을 가까이 대고 다시 봐도 마찬가지였다. 내 발이랑 비교해봐도 명확하게 작았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제 잠들기 전엔 이런 게 없었는데.
분명히 이 자리, 어제 마지막으로 걸레질 비슷하게 손으로 훑고 지나간 자리였다. 그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몬스터의 흔적인가?
하지만 몬스터는 안전 구역에 못 들어온다고 했었는데.
【알림: 안전 구역 내 몬스터 접근은 차단됩니다.】
그럼 이 발자국은 뭐란 말인가.
다시 문을 살펴봤다. 손잡이는 그대로였고, 빗장도 걸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겉보기엔 완벽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빗장이 살짝 어긋나 있었다. 완전히 걸린 게 아니라, 절반만 걸린 상태였다. 손가락으로 밀어보니 아주 쉽게, 저항 없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뭐야, 이거.
어젯밤 분명히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면 내가 착각했던 건가.
다시 생각해보니 어제 너무 피곤해서 대충 잠긴 척만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다. 그때 몸이 반쯤 죽어 있었으니 뭘 제대로 확인했을 리가 없었다.
일단 빗장을 확실히 걸었다. 이번엔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딸깍, 딸깍.
됐다.
그리고 문 앞에 뭔가 표시라도 해둘까 싶어서, 아까 주웠던 작은 철근 조각을 하나 남겨 바닥에 놓았다. 만약 이게 움직이면, 뭔가 들어왔다는 증거가 될 테니까. 위치를 눈에 익도록 몇 번이나 각도를 재보며 놓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좀 과한 조심성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 목숨이 걸린 일에 과한 조심성이란 게 있을 리 없었다.
일단 오늘은 임무를 완료하기로 했다. 이물질 3개 회수.
발자국이 하나 있었으니, 나머지 두 개를 더 찾아야 했다.
방 안을 살피는데, 배급 서랍 뒤쪽에서 뭔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서랍을 완전히 빼내고 손을 뒤쪽 틈으로 밀어 넣었다. 손끝에 뭔가 걸리는 감촉이 있었다.
손을 넣어 꺼내보니, 작은 머리끈이었다. 흔한 검정색 고무 머리끈. 늘어난 정도를 보니 꽤 오래 사용한 물건 같았다.
···이건 확실히 내 것이 아니었다.
내 머리는 짧았다. 애초에 머리끈을 쓸 일이 없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누가 여기 있었던 거다.
【알림: 이물질 2개 발견. 1개 남았습니다.】
시스템은 태연하게 진도를 알려줬다. 그 사무적인 어조가 오히려 더 무서웠다. 사람이 몰래 드나든 방 안에서, 시스템은 그저 게임 진행률처럼 숫자를 세고 있었다.
마지막 하나를 찾기 위해 방 전체를 다시 훑었다. 이번엔 벽 구석, 침낭 밑, 배급 서랍 안까지 다 살폈다. 손전등 빛을 낮게 깔아 바닥을 스치듯 비추면서, 그림자가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지는 구석이 있으면 무릎을 꿇고 들여다봤다.
결국 마지막 이물질은 문틈 아래에서 발견됐다. 작은 실 조각이었다. 옷감 같은 재질이었는데, 내가 입고 있는 옷과는 다른 색이었다.
연한 하늘색 실.
손가락으로 살짝 문질러보니 부드러운 질감이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작업복 소재는 아니었다.
【알림: 임무 완료. 포인트 10을 획득했습니다.】
포인트는 얻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누군가, 아니 뭔가가 이 방에 들어왔다 나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몬스터는 접근이 차단된다고 했는데.
그럼 이건 몬스터가 아니라는 건가.
사람인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여긴 지하 던전이고, 나는 시스템 알림에 의존해서 겨우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상황인데, 갑자기 다른 사람이 있다니. 애초에 이 셸터라는 곳이 나 혼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는 뜻인가.
하지만 발자국의 크기나 머리끈, 실 조각을 보면 아무래도 사람일 가능성이 더 커 보였다.
작은 발, 여성용 머리끈, 그리고 옷감 조각.
혹시 나 말고 다른 생존자가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오히려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이 넓은 던전에서 혼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 최소한 이 어둠 속에 나 혼자 갇혀 죽어가는 게 아니라는 생각.
하지만 그 안심은 곧바로 다른 불안으로 바뀌었다.
만약 그 사람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내가 어렵게 모은 포인트나 물자를 노리는 거라면?
아니면, 내가 자는 사이에 뭔가 더 위험한 짓을 하려던 거라면?
생각이 복잡해졌다. 물병 뚜껑이 제대로 닫혀 있는지, 건빵 포장이 뜯긴 흔적이 있는지까지 다시 확인했다. 다행히 그쪽은 이상이 없었다.
일단 오늘은 문을 더 철저히 지켜야 했다. 침낭 옆에 손전등을 두고, 문이 조금이라도 열리면 바로 알 수 있게 나름의 대책을 세웠다. 철근 조각 옆에 작은 돌멩이도 몇 개 더 올려놓았다. 무너지면 소리가 나도록.
【현재 보유 포인트: 45】
어제보다는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목표치에는 한참 부족했다.
남은 시간은 5일 하고 조금.
지쳐가는 몸을 이끌고 다시 인터페이스를 확인했다.
【교환 가능 항목】
【라디오 - 12포인트】
라디오라니, 이건 좀 신기했다. 던전 안에서 라디오가 되나 싶었지만, 혹시 밖의 상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교환하기로 했다. 12포인트면 아까웠지만, 정보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만한 값어치는 있어 보였다.
작은 검은색 라디오가 손에 들어왔다. 다이얼을 돌리니 잡음만 들렸다.
지지직.
아무 방송도 안 잡히는 걸 보니, 여긴 정말 지상과 완전히 분리된 공간인 모양이었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잡음, 잡음, 그리고 또 잡음.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뭔가 소음이 있으니 조금 덜 외로운 것 같기도 했다. 적어도 완전한 침묵보다는 나았다.
라디오 볼륨을 아주 작게 틀어놓고, 침낭에 몸을 뉘였다.
오늘 밤은 절대 깊게 잠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눈을 뜨고 있으려고 손전등을 얼굴 가까이 두고,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붙잡았다.
하지만 몸은 이미 지쳐 있었다. 하루 종일 방 구석구석을 뒤지고, 긁고, 확인하느라 근육 하나하나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눈이 무겁게 감기는 걸 느끼며, 마지막으로 문 쪽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빗장은 여전히 걸려 있었다.
안심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확히 세 시간 후, 라디오의 잡음 사이로 아주 희미하게, 사람의 숨소리 같은 게 섞여 들렸다는 사실을 나는 깊은 잠에 빠진 채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지지직, 지지직.
그 사이로, 아주 작게, 누군가 숨을 참는 듯한 떨림이 한 번 스쳐 지나갔다. 문 앞에 세워둔 돌멩이 하나가, 아주 미세하게, 소리도 없이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