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소문과 실체는 언제나 다른 법이지만, 소이는 이헌의 경우가 유난히 심하다는 걸 곧 깨달았다.
소문은 단순했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문제아 왕자. 근위대장직을 맡은 것도 실력이 아니라 왕가의 핏줄 덕분이라는 뒷말. 궁 안 시녀들이 모이면 하나같이 그의 이름을 험담거리로 삼았다.
"어제도 근위병 하나를 매질했다던데요. 술에 취해서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소문에 남작영애랑 그렇게 붙어 다닌다더라고요. 혼약녀가 있는데도 말이에요."
"저는 지난달에 그 양반이 마차 안에서 시녀 하나를 끌어당겼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소름 끼치죠."
소이는 시녀들의 수다 속에서 정보를 골라냈다.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 대걸레를 밀며 딴청을 부리는 척, 실은 한 마디도 놓치지 않았다. 그야말로 정보 수집에 있어서는 도가 튼 사람이었다.
'다들 똑같은 소리만 하네.'
여자, 술, 폭력. 세 가지가 돌림노래처럼 반복됐다. 어디서 들어도 새로운 게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어떤 소문에서도 근위대 인장이나 곡물 창고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
하지만 예지몽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꿈에서 소이는 처음으로 이헌의 집무실을 봤다. 좁고 어두운 방 안, 서류 더미 속에 근위대 인장이 찍힌 문서들이 쌓여 있었고, 그중 하나에는 곡물 창고의 재고 수치가 실제와 다르게 조작된 흔적이 있었다. 잉크 색이 미묘하게 달랐다. 누군가 뒤늦게 숫자를 고쳐 쓴 것이었다.
여섯 번째 꿈에서는, 박소윤이라는 이름의 남작영애가 이헌에게 서류 뭉치를 건네는 장면이 보였다. 두 사람의 표정에는 애정보다 계산이 더 짙게 묻어 있었다. 소윤의 손끝이 서류 위를 스치듯 짚었고, 이헌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위에 서명을 했다. 연애가 아니라 거래였다.
일곱 번째 꿈에서는 근위대 전체가 왕자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장면, 그리고 그 앞에서 서류를 태우는 모습이 보였다. 불길이 방 안을 붉게 물들였고, 재가 되어 날아가는 종이 조각들 위로 이헌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겹쳐 보였다.
'폭군이 아니야.'
소이는 확신했다. 이헌은 단순히 성격이 더럽고 여자관계가 문란한 문제아가 아니었다. 근위대라는 국가 조직 전체를 등에 업고, 곡물부터 무기까지 손대는 비리 조직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 파국의 한가운데, 이서연이 있었다.
***
"이건 좀 심각한데."
소이는 방 안에 홀로 앉아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일곱 번의 꿈을 조합해 얻은 그림은 명확했다. 다가올 연회에서, 이헌은 이서연과의 혼약을 공개적으로 깨뜨릴 것이다. 그 자리에서 국가 비리에 대한 진상이 드러나거나, 아니면 은폐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서연은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무릎을 꿇게 된다.
'막아야 해.'
그 결심은 단순했지만, 실행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소이가 아는 것은 반복된 파편적 장면들뿐이었다. 정확한 날짜도, 구체적인 증거도 없었다. 게다가 이 정보를 어디에 가져가야 믿어줄지조차 알 수 없었다.
누구에게 말한단 말인가. 이서연 아가씨께 직접 고할까. "제가 꿈에서 봤는데요, 서방님이 위험한 사람입니다." 이 말을 들은 이서연의 표정이 어떨지 상상만 해도 소이는 절로 눈을 감았다.
당장 미친 여자로 몰려서 궁 밖으로 쫓겨날 게 뻔했다. 아니, 쫓겨나는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었다. 왕가의 혼약을 헐뜯는 불경한 소리를 했다고 옥에 갇힐 수도 있었다.
'예지몽을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답은 뻔했다. 없었다.
소이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런 걸 알아버린 자신의 처지가 새삼 억울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이미 본 것을 안 본 척할 수는 없었다.
***
여덟 번째 꿈은 며칠 뒤 찾아왔다.
이번엔 배경이 더 구체적이었다. 연회장 천장의 샹들리에 모양, 벽에 걸린 왕가의 문장, 심지어 악사들이 연주하는 곡의 박자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잔이 부딪히는 소리, 누군가의 향수 냄새마저 코끝에 남았다.
소이는 그 꿈속에서 자신이 시녀복을 입고 연회장 구석에 서 있는 것을 봤다. 손에 쥔 쟁반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이헌이 소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그 웃음은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냥감을 발견한 자의 웃음에 더 가까웠다.
"너였군."
그 한마디에 소이는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손끝이 떨렸다. 방 안은 조용했지만, 귓가에는 여전히 그 목소리가 맴돌았다.
'저 사람이 날 알아본다.'
이건 지금까지의 꿈과 전혀 다른 종류의 정보였다. 소이가 이 일에 개입한다는 것, 그리고 그 개입이 이헌의 눈에 띈다는 것. 미래는 이미 소이를 포함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일곱 번은 소이가 관찰자였다. 벽 너머에서 몰래 들여다보는 눈. 하지만 여덟 번째 꿈에서는 소이 자신이 무대 위로 끌려 나왔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서, 이헌은 소이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소이는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앉았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몇 번 문질렀다.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지금 상황에서 확실한 건 하나뿐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이서연도, 소이 자신도 위험해진다는 것.
소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 속 깊이 숨겨둔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는 낡은 천으로 몇 겹이나 감겨 있었고, 먼지가 살짝 앉아 있었다. 그 안에는 시녀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검은 단검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오랜만에 손에 쥔 무게가 낯설지 않았다. 손바닥에 딱 맞는 손잡이, 서늘한 칼날의 감촉. 예전의 감각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다시 시작해야겠구나.'
그 결심이 앞으로 이어질 모든 고생의 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