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어둠 속에서 은사슬이 짤랑, 소리를 냈다.
이헌은 두 손을 뒤로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근위대장의 정복 어깨에 달린 금빛 견장이 찢겨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이마에서 흐른 피가 눈썹을 타고 붉은 실처럼 늘어졌다. 발치에는 부러진 검 한 자루가 뒹굴고 있었다. 그의 검이었는지, 다른 누군가의 검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앞에 은소이가 서 있었다.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시녀복 소매를 걷어 올린 팔에는 핏방울 하나 튀지 않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섬뜩했다. 사방에 피가 흩뿌려진 방 안에서, 그녀 혼자만 방금 세탁을 마친 사람처럼 깨끗했다.
이헌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봤다. 금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빛났다.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즐거운 것처럼 보였는데, 그 눈빛이 소이는 낯설지 않았다. 세 번이나 봤으니까.
"너, 처음부터 시녀가 아니었군."
낮게 깔린 음성이었다. 분노보다는 흥미가 더 짙게 묻어 있었다. 목이 묶인 채로도 여유가 넘치는 말투였다. 소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는데, 반짝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시야가 통째로 하얗게 지워졌다.
***
눈을 떴을 때, 소이는 익숙한 천장을 보고 있었다.
청명공작가 별채, 시녀들이 쓰는 작은 방. 창밖으로는 아직 짙은 새벽빛이 걸려 있었다.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불을 쥔 손끝에서 식은땀이 났다.
'또 그 꿈이었다.'
같은 장면. 같은 사슬. 같은 얼굴. 세 번째였다. 처음 꾸었을 때는 그저 낯선 얼굴의 남자였고, 두 번째에는 근위대 정복을 입은 것까지 보였다. 이번에는 목소리까지 들렸다.
'다음엔 뭐가 더 보이려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소이는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졌다. 예지몽 앞에서 궁금증을 느끼다니, 이게 정상적인 반응인가 싶었다.
소이는 이불을 걷고 일어나 앉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곧 평정을 되찾았다. 오래 훈련된 몸이었다. 감정을 얼굴에 남기지 않는 것은 그녀에게 숨 쉬는 것과 같았다. 창가로 걸어가 새벽 공기를 마시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완벽한 시녀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
청명공작가의 시녀, 은소이는 이 저택 안에서 가장 완벽하다는 평을 듣는 인물이었다.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영애의 침실에 향을 피우고, 물의 온도를 정확히 맞춰 세안 준비를 하고, 드레스의 매듭 하나까지 흠 없이 마무리하는 그녀를 보고 다른 시녀들은 종종 혀를 내둘렀다.
"소이 언니는 자면서도 옷을 개는 거 아니에요?" 막내 시녀 하나가 웃으며 물었을 정도였다.
"그럴 리가." 소이가 대답했다. 그러나 표정만은 진짜로 그럴 것 같다는 인상을 남겼다.
그럴 만도 했다. 3년째 단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으니까. 옷의 주름 하나, 찻잔의 온도 하나까지 완벽하게 맞추는 시녀를 다른 저택에서는 본 적이 없다고, 청명공작가를 방문한 손님들조차 감탄하곤 했다.
그런 그녀가 매일 밤 낯선 왕자를 사슬로 묶는 꿈을 꾼다는 사실은, 저택 안 누구도 알지 못했다.
"소이야."
방문 너머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났다. 이서연이었다. 청명공작가의 외동딸이자, 소이가 목숨을 걸고 지키는 유일한 이유.
"들어가겠습니다, 아가씨."
소이는 대답과 동시에 표정을 갈아 끼웠다. 조금 전까지의 서늘함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방문을 열자 침대에서 막 일어난 이서연이 부스스한 얼굴로 하품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일찍 일어났네."
"항상 그렇습니다."
"넌 아침에 일어나는 게 취미냐, 아니면 저주야?"
이서연이 웃으며 이불을 걷어냈다. 그 웃음이 어찌나 해맑은지, 이 저택에 발을 들인 지 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소이는 매번 그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 한쪽이 뻐근해졌다.
소이는 대답 대신 세안대 위에 놓인 물그릇의 온도를 손등으로 확인했다. 조금 뜨거웠다. 곧바로 찬물을 조금 섞어 온도를 맞췄다. 이서연은 그런 손짓을 보며 익숙하다는 듯 웃었다.
'이분만은.'
그 문장 뒤에 이어질 말은 소이도 아직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건, 그 문장이 시작되는 순간 소이의 세계는 딱 하나의 목적으로 좁아진다는 것이었다.
***
그날 밤, 소이는 다시 잠들지 못했다.
촛불을 끄고 누웠지만 천장을 향해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세 번째 꿈이 이렇게 명확했던 적은 없었다.' 예지몽은 늘 흐릿하게 시작해 반복될수록 선명해졌다. 그 말은, 이제 곧 그것이 현실이 될 거란 뜻이었다.
문제는 이헌이란 이름도, 그 얼굴도 저택 안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근위대 정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왕실 쪽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왜 자신이, 그것도 시녀복을 입은 채로 그를 묶고 있는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소이는 몸을 일으켜 창가에 앉았다. 궁 쪽 하늘 위로 별 하나가 유난히 붉게 빛나고 있었다. 저 방향이 왕궁이었다. 처음 이 저택에 온 날부터 지금까지, 왕궁 쪽으로는 눈길조차 준 적이 없었는데.
'누구지, 그 남자는.'
답은 며칠 뒤, 뜻밖의 자리에서 튀어나올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