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전하, 오늘 밤 끝내드릴게요

2화

소이가 처음 예지몽을 꾼 것은 여덟 살 무렵, 도성 외곽의 창고에서였다. 부모를 잃고 노예상인의 손에 넘겨진 지 반년째였다. 그날 밤 창고 안은 유독 후텁지근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지쳐 잠든 지 오래였고, 소이만이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불이 붙은 건 자정 무렵이었다. 누군가의 부주의였는지, 혹은 다른 아이를 팔아넘기려던 상인들 간의 다툼 때문이었는지는 지금도 확실치 않았다. 다만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을 때, 소이는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직전에 이상한 장면을 보았다. 하얀 머리의 소녀가 불타는 창고 문을 열고 자신을 끌어내는 장면. 눈앞이 번쩍하며 스쳐 지나간 그 순간이 너무도 생생해서,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할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고 몸이 먼저 움직였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발이 저절로 창고 뒷문 쪽으로 향했다. '왜 내가 여기로 가고 있지.' 의문을 품을 새도 없었다. 불길이 벽을 타고 번지기 시작했고,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소이는 정신을 반쯤 잃은 채로도 뒷문 근처에 몸을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몇 분 뒤 그 문이 부서지듯 열리며 하얀 머리의 소녀가 뛰어들어왔다. 이서연이었다. 당시 열 살이던 청명공작 영애는 아버지를 따라 상단 시찰을 나왔다가 불길을 발견하고 하인들을 다그쳐 사람을 구하러 뛰어든 것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겁먹은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화를 내는 듯한 얼굴로 소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거기, 정신 있어?" 소이가 대답하지 못하자, 이서연은 두 번 묻지 않고 곧바로 소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 작은 손에서 나오는 힘이 놀랄 만큼 억셌다. 정신을 잃어가던 소이를 업고 나온 것도 다름 아닌 그녀였다. "괜찮아? 정신 좀 차려봐." 연기 속에서 울린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소이는 두려움보다 안도감을 먼저 느꼈다. 이 사람은 절대 자신을 두고 가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었다. *** 그 후 소이는 청명공작가에 거둬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서연이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는 제가 데려갈 거예요." 열 살짜리 영애가 아버지 앞에서 팔짱을 끼고 그렇게 선언했을 때, 청명공작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아이가 저 자세로 서서 눈도 깜박이지 않고 버티는데, 어느 아버지가 이길 수 있겠는가. 못 이기는 척, 결국 허락한 것도 물론 그였다. 소이는 그날부터 시녀 교육을 받았다. 인사법, 다과 준비, 옷매무새 정리하는 법까지 하나하나 익혀 나갔다. 다른 시녀들은 소이를 두고 '주워온 애가 팔자 좋다'며 수군거리기도 했지만, 이서연이 곁에 있는 이상 대놓고 괄시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남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소이가 받은 것은 시녀 교육만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창고 화재 이후, 소이의 몸에는 이상한 감각이 자리 잡았다. 잠들면 종종 낯선 장면이 보였다. 대부분은 의미 없는 파편이었다. 지나가는 마차, 낯모르는 얼굴,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 몇 마디. 그런데 몇 번은, 실제로 벌어질 일과 정확히 일치했다. 처음엔 무서웠다. '내가 미쳐가는 건가.' 밤마다 눈을 감는 게 두려워서 일부러 잠을 미루기도 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꿈일수록 현실과 맞아떨어진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소이는 이 능력을 다르게 쓰기 시작했다. 위험을 미리 보고, 대비하는 것. 한번은 마구간에 불이 날 거라는 꿈을 꾸고 며칠간 마구간 근처를 서성이다가, 정말로 불씨가 옮겨붙는 순간을 발견해 미리 끈 적도 있었다. 그날 이후로 소이는 자신의 능력이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물론 그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흐릿한 파편이 여러 번 반복되어야 비로소 선명해졌고, 아무리 애를 써도 하루 이틀 전에는 결코 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 것을 피하려 발버둥 쳐도 결과의 큰 줄기는 잘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마구간 불도 결국은 다른 형태로 다시 일어났으니까. '큰 흐름은 못 바꿔도, 그 안에서 누굴 살릴지는 바꿀 수 있어.' 그것이 소이가 도달한 유일한 결론이었다. *** 그래서 소이는 그날 밤 세 번째 꿈을 꾸고 나서, 이 능력이 다시 무언가를 경고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낯선 근위대장, 사슬, 그리고 그 뒤에 반드시 있을 이서연의 그림자. 꿈속에서 사슬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유독 선명했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그 소리를 깨어난 뒤에도 한동안 귓가에서 지우지 못했다. 예지몽 속에서 그 남자의 얼굴이 명확해질 때마다, 소이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이름이 자꾸만 떠올랐다. 최근 사교계에서 시끄럽게 오르내리는 이름. 제1왕자, 이헌. "폭군이라던데." "그거 알아? 근위병 목을 조른 채로 술을 마셨다는 얘기도 있어." 다른 시녀들이 수다를 떨던 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여자를 여럿 갈아치우고, 술에 취해 근위병을 매질했다는 소문. 소이는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저 흥미로운 뒷담화쯤 여기며 웃어넘겼다. 그 소문을 대수롭지 않게 들었던 걸 후회했다. '설마 그 사람이 이서연 아가씨의 혼약자라니.' 그날 저녁, 이서연이 직접 알려준 사실이었다. 두 사람의 혼약이 다음 계절 정식으로 발표된다는 것. "아버지께서 정하신 일이야. 나도 어쩔 수 없어." 이서연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말투 끝에 작은 떨림이 스쳤다는 걸 소이는 놓치지 않았다. 평소라면 무슨 일이든 팔짱을 끼고 큰소리로 불만을 터뜨렸을 사람이 이렇게 조용히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소이의 등줄기에 서늘한 것이 흘러내렸다. *** 그날 밤 또다시 잠이 든 소이는, 이전과 다른 장면을 보았다. 화려한 연회장. 반짝이는 샹들리에 아래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이서연이 무릎을 꿇은 채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 언제나 당당하고 고집스러웠던 그 얼굴이, 꿈속에서는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소이는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앉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이마와 목덜미에는 식은땀이 흥건히 배어 있었다. '이건 안 돼.' 손끝이 떨렸다. 소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예지몽이 이렇게 빠르게, 이렇게 선명하게 이어지는 건 처음이었다. 이전에는 같은 장면이 며칠에 걸쳐 조금씩 흐릿하게 반복되며 서서히 형체를 갖췄는데, 이번에는 단 며칠 사이에 세 번이나 몰아치듯 찾아왔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소이는 어둠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달빛조차 없는 새벽이었다. 이서연의 방이 있는 쪽을 향해, 소이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곧 힘없이 내려놓았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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