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쌍둥이 누나들이 내 방에 들이닥친 건 순전히 소문 때문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놀라서 손에 쥐고 있던 드라이버를 놓칠 뻔했다. 채원과 라영이 나란히 서 있었다. 표정만 봐도 알겠다. 심문하러 온 거구나.
"이상한 짓이라니, 그게 뭔데."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물었다. 사실 심장은 좀 두근거렸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장 난 물건 고치고 다닌다며. 아버지한테 자본까지 받았다던데."
강채원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표정이 딱딱했다. 언제나 저 표정이었지, 나한테는.
"맞아."
"왜 그런 걸 해?"
강라영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채원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눈빛은 똑같이 의심스러웠다. 쌍둥이라서 그런지 저런 건 참 똑같다.
"마력이 없으니까, 다른 걸 해야지."
간단하게 대답했다. 사실 그게 전부였다. 마력 없는 애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손이라도 놀려야지.
두 누나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뭔가 확인하려는 것 같은 태도였다. 저러고 있으면 꼭 뭔가 짜고 온 것 같단 말이야.
"너 원래 이런 애 아니었잖아."
채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 뭐 던지고 소리 지르고 그러던 애였는데."
아, 그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전생 얘기를 할 수도 없고. 그냥 하루아침에 착해졌다고 하면 더 의심스러워할 텐데.
"그냥... 생각이 바뀌었어."
뻔한 대답이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안 믿겨."
라영이 딱 잘라 말했다.
"뭐가 안 믿겨."
"갑자기 성격이 확 바뀌는 게 이상하잖아. 무슨 일 있었어?"
음, 그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전생의 기억이 있어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고. 죽다 살아났더니 성격이 바뀌었다고 하면 아마 정신병원에 끌려갈 거다.
"그냥, 어느 날 눈 뜨고 보니 이런 게 재밌더라고."
반쯤 진실이었다. 그냥 이번엔 좀 더 애매하게 말했다.
누나들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방을 둘러봤다. 내가 만든 시계, 고쳐진 서랍, 부품들이 정리된 작업대까지. 채원의 시선이 작업대 위에서 멈췄다. 나사와 톱니, 작은 렌치들이 크기별로 나열되어 있는 걸 신기하게 쳐다보는 눈치였다.
"이거 진짜 네가 만든 거야?"
채원이 시계를 집어 들며 물었다.
"응."
"...신기하네."
그 말에 라영도 살짝 시계를 들여다봤다. 손끝으로 톱니바퀴를 살짝 만져보더니, 미묘하게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톱니 이거, 되게 정교하게 만들었네."
"손으로 깎았어."
"손으로?"
"응. 도구는 좀 썼지만."
두 누나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의심에서 뭔가 다른 것으로.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그 날카로운 눈빛은 아니었다.
채원이 시계를 뒤집어보더니 뒷면에 새겨진 작은 이니셜을 발견했다.
"이건 뭐야?"
"그냥, 만든 사람 표시."
"...귀엽네."
귀엽다는 말을 채원 입에서 듣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날은 그렇게 끝났지만, 며칠 뒤 다시 채원과 라영이 방에 찾아왔다. 이번엔 좀 다른 태도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부터가 지난번과 달랐다. 조심스러웠다.
"저기, 우리도 그거 하나씩 만들어줄 수 있어?"
라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를?"
"그, 서지아 언니 컵 같은 거. 이름 새겨진."
서지아가 만들어준 클론 컵 얘기였다. 그게 어느새 누나들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 소문이 참 빠르다. 이 집 하녀들 정보력이 무슨 정보기관 같단 말이야.
"...만들어줄 수는 있는데."
"진짜? 그럼 채원이 거는 파란색으로 해줘, 내 거는 초록색으로."
채원이 옆에서 눈을 흘겼다.
"내가 언제 파란색 좋아한다고 했어."
"싫어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상관 있지. 안 싫어하면 좋아하는 거지."
"그게 무슨 논리야."
둘이 티격태격하는 걸 보며, 나는 그제야 뭔가 이상한 기류가 바뀌었다는 걸 느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사람들이, 지금은 컵 색깔 가지고 싸우고 있었다. 세상 참 알 수 없다.
"둘 다 이름은 뭘로 새길 거야? 한글로 할지 문양으로 할지."
"문양! 나는 별 모양."
"난 그럼 달 모양으로 할래."
"왜 따라 해."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세트인 거지."
또 시작이다. 어이없으면서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저렇게 유치하게 싸우는 것도 오랜만에 보는 것 같고.
"알겠어. 만들어볼게."
"진짜 만들어줄 거지? 약속한 거다."
"응, 약속."
"손가락 걸어."
라영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이 집 막내 도련님으로 사는 이 시점에도 이런 유치한 약속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손가락은 걸어줬다. 채원도 슬쩍 눈치를 보다가 자기 손가락도 걸었다.
두 누나가 방을 나가고, 나는 다시 작업대 앞에 앉았다. 도자기를 직접 굽는 건 서지아 아버지의 영역이었으니, 일단 서지아에게 부탁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색, 초록색, 별 모양, 달 모양. 머릿속으로 대충 도안을 그려봤다. 어렵진 않을 것 같은데, 굽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가 문제였다.
방문을 열고 서지아를 찾으러 나가려던 참에, 복도에서 하녀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발걸음을 멈추고 벽 쪽에 붙어 섰다. 엿듣는 게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어쩌겠어. 궁금한 걸.
"그 얘기 들었어? 채원 아가씨랑 라영 아가씨가 막내 도련님이랑 친해졌다고."
"그러게, 원래 그렇게 사이 안 좋았잖아. 근데 요즘 뭔가 달라."
"맨날 얼굴만 마주치면 싸우던 남매들인데. 요즘은 방에 같이 있는 시간도 많고."
"당주님도 그거 신경 쓰신다더라고. 자식들끼리 갑자기 친해지니까."
"그게 왜 신경 쓰일 일이야?"
"몰라, 나도 그냥 들은 얘기야. 근데 뭐, 자식들끼리 뭉치는 거 안 좋아하는 부모도 있잖아. 특히 이 집안이면."
걸음을 멈췄다.
아버지가 신경 쓴다니, 그건 또 무슨 뜻일까.
좋은 뜻일지, 아니면 다른 의미일지. 문득 아버지가 나갈 때 남긴 말이 다시 떠올랐다. 기대는 크게 안 한다는 말.
혹시 이 변화가, 그 기대를 다시 흔드는 계기가 되는 건 아닐까. 아니면 반대로, 자식들이 뭉치는 걸 경계하는 쪽이라면 이건 오히려 좋지 않은 신호일 수도 있었다.
이 집안 특성상 형제자매끼리 사이가 좋다는 게 반드시 좋은 뜻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마력을 우선하는 가문에서 마력 없는 막내가 다른 형제들과 가까워진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그림으로 보일 수도 있었으니까.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쳤지만, 지금 당장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서지아를 찾아가서, 새 컵 두 개를 부탁하는 일부터 해야 했다. 그런데 하녀들의 대화가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당주님도 그거 신경 쓰신다더라고, 라는 그 한마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