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아버지, 정략결혼 할게요

2화

새로 온 전속 하녀는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일주일 전부터 나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전 하녀가 그만둔 지 사흘 만에 새 사람을 붙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짜놓았다. 들어오자마자 눈을 부라리고, 말투를 낮추고, 있으면 트집을 잡고. 어차피 며칠 안에 그만둘 거, 미리 겁먹여서 빨리 내보내는 게 서로한테 좋다는 논리였다. 다섯 살짜리 논리치곤 꽤 계산적이었지만, 뭐 어쩌겠어. 몸은 다섯 살이어도 머리는 아니었으니까. 전생의 나이까지 합치면 이 저택에서 제일 늙은 사람이 나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우습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가 처음 내 방에 들어왔을 때, 나는 솔직히 시비 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도련님. 서지아라고 합니다."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자세가 지나치게 반듯했다. 목소리도 낮고 차분했다. 겁먹은 기색이 전혀 없었다. 나이는 열다섯쯤 되어 보였다. 도자기 장인의 딸이라는 이야기가 기억났다. 손끝이 유난히 정갈했다. 손톱 밑에 흙이나 유약 자국 같은 게 아직 남아 있었는데, 그게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다. 첫인상만으로는 판단이 안 됐다. 얌전한 척하는 사람들, 겉으로만 예의 바른 사람들은 지금까지 많이 봤으니까. 문제는 그 예의가 무너지는 순간에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앞당겨서 확인하고 싶었다. "뭘 잘하는데?" 일단 시험 삼아 반말로 던졌다. 예의 없는 질문이라는 건 알았지만, 반응을 보고 싶었다. "도련님이 필요로 하시는 걸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뭐야, 저 대답.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저건 완전 모범답안이잖아. 마치 면접 준비를 백 번쯤은 한 사람 같았다. "그거 말고. 진짜로, 뭘 잘하냐고." 한 번 더 밀어붙였다. 이 정도는 뚫어봐야 진짜 얼굴이 나오지. "바느질을 잘합니다. 그리고 화를 잘 참습니다." 화를 잘 참는다니. 그 말을 참 뻔뻔하게도 한다 싶었다. 이건 거의 나한테 하는 선전포고 같은 거잖아. "컵 던지면 어떻게 할 건데." 대놓고 물어봤다. 전 하녀들이 그렇게 나갔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한 명은 눈물을 쏙 뽑았고, 한 명은 방문을 세게 닫고 나갔다. 서지아는 잠깐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흔들림이 없었다. "닦고, 다시 채워드리겠습니다." "그러다 다치면?" "다치지 않게 잘 피하겠습니다." "만약 못 피해서 피가 나면?" "피가 나면 지혈부터 하고, 상처가 도련님 눈에 보이지 않게 소매로 가리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대답인데, 이상하게 진심 같았다. 나는 순간 말이 막혔다. 어라, 이 사람 뭐지. 지금까지 하녀들은 내가 저런 질문을 던지면 얼굴이 하얗게 질리거나, 억지웃음을 짓거나, 아니면 아예 방을 나가버렸다. 그런데 서지아는 그냥 담담했다. 마치 이미 이런 애를 여러 명 겪어본 사람 같은 태도였다. "아버지가 도자기를 만드셨어요." 서지아가 갑자기 말을 이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말을 꺼내는 게 좀 낯설었다. "제가 어릴 때, 아버지 작업장에 온갖 이상한 손님들이 왔었죠. 성질 급한 귀족들, 값을 깎으려고 트집 잡는 상인들, 물건 깨트리면서 화내는 분들. 저는 그런 분들을 상대하면서 자랐습니다." "그럼 그때도 그렇게 웃으면서 참았어?" "웃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대꾸하지 않는 법을 배웠죠." 아, 그런 거였구나. 뭔가 맥락이 이해됐다. 이 사람은 못된 애들을, 아니, 정확히는 못된 어른들을 상대하는 경험치가 이미 쌓여 있는 거였다. 다섯 살짜리 도련님 하나쯤은 그 경험치 안에서 충분히 처리 가능한 난이도인 셈이었다. 그럼 나도 좀 신경 써야겠는데. 솔직히 이 정도 상대라면, 컵 던지는 걸로는 안 통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럼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 아니, 애초에 다른 방식을 찾을 필요가 있나. 굳이 사람 하나를 내쫓으려고 애쓸 이유가 있나. 일단은 지켜보자, 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켜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때 움직여도 늦지 않으니까. 며칠이 지나면서, 나는 서지아의 태도에서 뭔가 미묘한 패턴을 발견했다. 그녀는 내가 못된 행동을 하면 화를 내거나 겁먹지 않았다. 대신, 딱 한 번 눈살을 찌푸렸다. 그거로 끝이었다. 다음 행동은 언제나 똑같이 차분했다. 예를 들면, 내가 일부러 먹기 싫은 음식을 바닥에 흘렸을 때. 서지아는 잠깐 눈살을 찌푸리더니, 아무 말 없이 걸레를 가져와 닦았다. 그러고는 다시 새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딱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무서웠다. 아니, 진짜 무서운 게 아니라, 뭔가 찔리는 느낌이었다. 눈살 한 번 찌푸리는 거로 "너 지금 뭐하는 거니"를 말하는 것 같았달까. 차라리 화를 내면 나도 맞받아치기 편한데, 이건 뭐 어디 화풀이할 데도 없었다. 며칠 사이 나는 못된 행동의 강도를 슬쩍슬쩍 낮췄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도련님, 마법 수업 시간입니다." 어느 날 아침, 서지아가 알려왔다. 나는 순간 몸이 굳었다. 마법 수업이라니. 이 세계에서 마법을 배운다는 건 결국 마력선을 삽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었다. 머릿속 기억에 그 장면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몸에 얇은 관을 넣고, 체내 마력 회로를 강제로 자극하는 절차. 다섯 살 아이한테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했다. 이 저택에서 자란 아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는 소문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했다. 전생에는 병원 주사도 무서워서 피했던 나였다. 팔뚝 어딘가 찌르는 것만으로도 눈을 질끔 감고 숨을 참았던 사람인데. 그런데 이건 주사보다 훨씬 심한 거잖아. 관을 넣고 마력 회로를 자극한다니, 그게 대체 얼마나 아플지 상상도 안 됐다. "도련님?" 서지아가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괜찮으세요? 얼굴이 하얘요." "아, 아니.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잖아. 목소리가 떨리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근데 그렇다고 여기서 도망칠 수도 없고. 도망친다고 안 하는 것도 아닐 테니까. 언젠가는 해야 하는 절차라면, 지금 안 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마법 교사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침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살짝 떨렸다. 손끝도 차가워졌다. 그때, 서지아가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도련님, 무서우시면 말씀하세요. 억지로 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며칠 동안 그 담담한 얼굴만 봐왔는데,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 목소리엔 진짜 걱정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마법 교사가 이미 문 앞에 서 있었으니까. 그림자가 문틀 너머로 길게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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