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그 고백, 벌칙이었다니

3화

중정은 이미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방과 후치고는 유난히 많은 인원이었는데, 강민준이 벤치 쪽으로 다가갈수록 그 시선의 밀도가 더 짙어졌다. 마치 무대 조명이 그를 향해 하나씩 켜지는 기분이었다. 발밑의 보도블록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고, 저녁 바람이 옷자락을 스치는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한서연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꼬고 있었는데, 그 각도가 지나치게 여유로웠다. 그 옆에는 박진혁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고, 그 주변으로 낯익은 얼굴들, 반의 카스트 상위권들이 원을 그리듯 둘러서 있었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미리 꺼내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웃음을 참는 듯 입가를 손으로 눌렀다. "왔네." 박진혁이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4일 채우느라 고생했다, 강민준." 그 말투에는 이미 결과를 아는 자의 여유가 묻어 있었다. 마치 연극의 마지막 장을 준비해 둔 연출가처럼, 박진혁은 시간을 끌듯 천천히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강민준은 그 순간 옥상에서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던 자신, 그리고 맞잡았던 손. "나도... 사실 너 좋아했어." 그때는 진심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더라면 이 자리에 서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것이다. 그 순간, 박진혁이 휴대폰을 높이 들었다. 화면 속에서 강민준의 얼굴이 재생되고 있었다. 옥상에서 손을 잡던 순간, 어색하게 웃던 순간, 그 모든 장면이 큰 소리로 흘러나왔다. 화면의 밝기가 유난히 선명해서, 그 안의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나도... 사실 너 좋아했어." 그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몇몇은 손으로 입을 가렸고, 몇몇은 대놓고 배를 잡고 웃었다. 누군가는 휘파람을 불었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어 그 장면을 다시 촬영하기 시작했다. 한서연은 그 자리에서 담담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는데, 그 무표정이 오히려 웃음소리보다 더 크게 그의 귀를 때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을 보듯, 시선이 그를 통과해 지나갔다. "이걸로 벌칙 게임 완료." 박진혁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어이, 다들 봤지? 진짜였네, 잡몹이 사랑에 빠지는 거." 주변에서 몇몇이 손뼉을 치며 호응했다. 누군가는 "대박이다"라고 낮게 중얼거렸고, 그 말이 바람을 타고 강민준의 귀에까지 닿았다. 강민준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발밑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지, 몸을 어느 쪽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게 느껴졌고, 그 감각만이 지금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는 유일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왜 그런 표정이야." 박진혁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목소리는 나른했지만 눈빛은 서늘했다. "어차피 너 같은 애가 진짜 사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 웃음소리가 다시 한번 파도처럼 밀려왔다. 강민준은 고개를 숙였다. 시야가 흔들렸다. 눈물은 아니었지만, 그것과 비슷한 무언가가 눈가에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목 안쪽이 조여드는 듯한 감각이 들었고, 삼켜야 할 말들이 그대로 목구멍 안에서 얼어붙는 것 같았다. "...알았어." 그가 겨우 말했다. "이제 끝난 거지." 목소리가 스스로 듣기에도 이상하게 낮고 갈라져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성대를 빌려 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끝났지." 박진혁이 웃었다. "영상은 지워줄게. 대신 이건 남을 거야."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손짓했다. 이미 수십 명이 그 장면을 목격한 뒤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강민준도 알고 있었다. 지워지는 건 영상뿐, 그 순간을 목격한 눈동자들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사실이 어떤 협박보다도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몇몇은 벌써 자리를 뜨며 낄낄거렸고, 몇몇은 여전히 남아 그를 구경거리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들이 등에 박히는 것 같았다. 마치 수십 개의 바늘이 동시에 꽂히는 감각이었다. 강민준은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걸음마다 뒤에서 웃음소리가 따라붙는 것 같았다. 몇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도 숨이 가빠왔다. 저녁 공기가 유난히 차갑게 폐 속으로 밀려들었다. 그때였다. 어깨에 무언가 닿았다. 차가운 손끝이었다. "이제 됐잖아." 낮고 무표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듣는 음색이었는데도 이상하게 귀에 오래 남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는 웃음도, 조롱도, 동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저 사실을 진술하는 듯한 건조함뿐이었다. 강민준이 고개를 들었다. 어깨 길이의 은발이 저녁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고, 무표정한 얼굴 위로 시선이 정확히 그를 향해 있었다. 학교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얼굴, 윤아린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 유리처럼 반사되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슨 생각이 담겨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만해." 그녀가 박진혁을 향해 짧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거의 없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주변을 순식간에 조용하게 만들었다. 웃음소리가 뚝 끊겼고, 몇몇은 서로 눈치를 보며 슬쩍 뒤로 물러섰다. 박진혁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윤아린, 네가 왜 끼어드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여유가 남아 있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미세한 균열이 스며 있었다. 마치 얼음판 위에 처음으로 실금이 그어진 순간처럼. 윤아린은 대답 대신 강민준의 손목을 잡았다. 그 손끝이 놀랍도록 서늘했다. 마치 방금 얼음물에 손을 담갔다 뺀 것처럼, 그 냉기가 손목을 타고 팔뚝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가자." 그녀가 말했다. 명령도 아니고 부탁도 아닌, 이상하게 확신에 찬 어조였다. 주변에 둘러선 아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누구도 감히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한서연만이 여전히 벤치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무심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민준은 저항할 힘도 없이 그녀의 손에 이끌려 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박진혁이 뭔가를 더 외쳤지만, 그 말은 더 이상 그의 귀에 닿지 않았다. 윤아린의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고, 그 보폭에 맞춰 강민준의 다리도 조금씩 움직임을 되찾아갔다. 중정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윤아린은 단 한 번도 그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담장을 돌아 인적이 드문 복도 쪽으로 접어들었을 때, 그녀가 처음으로 걸음을 멈췄다. 강민준은 여전히 숨이 가빴고, 심장은 아직도 그 시선들 속에 갇혀 있는 듯했다. "괜찮아?" 윤아린이 물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지만, 그 안에 미묘한 온도차가 있었다. 강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의 손이 아직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현실처럼 느껴졌다. 윤아린이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넌 아무것도 몰라도 돼." 그녀가 말했다. "그냥 따라와." 그 말 속에 담긴 뜻을, 강민준은 그 순간에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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