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강민준은 교실 문을 열자마자 공기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평소라면 존재감 없이 흘러가던 아침이었는데, 오늘은 문틀을 넘는 순간부터 시선들이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가 재빨리 흩어지는 방식이 달랐다. 무시당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관심이었다. 몇몇은 낄낄거렸고, 몇몇은 안됐다는 눈빛을 보냈으며, 몇몇은 스마트폰을 슬쩍 들어 그를 향해 초점을 맞추는 것 같기도 했다. 창가 쪽 자리에 앉은 아이들이 서로 팔꿈치를 치며 귓속말을 주고받았고, 그 소리는 낮았지만 이상하게도 교실 전체에 퍼져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리에 앉으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가방을 내려놓는 손끝이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움직였다. 어제의 손끝 감촉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았고, 그 온기가 오늘 아침의 냉랭한 시선들과 뒤섞여 이상한 위화감을 만들어냈다. 책상 위에 놓인 필통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뒷줄 어딘가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민준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돌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수업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칠판의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선생님의 목소리는 유리창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멀었다. 그저 등 뒤로 쏟아지는 시선의 온도만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는 서늘한 감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점심시간, 화장실에서 손을 씻던 강민준은 옆 칸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얼어붙었다.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던 물소리가 순간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야, 진짜 사귀는 척 표정 봤냐?" 박진혁의 목소리였다. 웃음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완전 몰입해서 진짜인 줄 알더라."
"내가 뭐랬어, 한서연이 하면 백 프로 성공한다니까." 다른 목소리가 맞받았다. "근데 이번 벌칙 진짜 심하지 않냐? 저 잡몹한테 고백까지 시키고."
"게임인데 뭘. 카드 뽑기에서 진 사람이 4일 동안 제일 인기 없는 애한테 여자친구 코스프레하기, 그게 룰이었잖아."
누군가 낮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타일 벽을 타고 반사되어 강민준의 귀에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부딪히는 것 같았다.
물이 손끝을 타고 흘러내리는 감각이 갑자기 아프게 느껴졌다. 강민준은 수도꼭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할 때까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낯설게 보였다.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웃고 있는 건지, 울고 있는 건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다.
"영상 다 찍었으니까 이제 서연이도 못 빼겠지." 웃음소리가 물결처럼 겹쳐졌다. "4일 다 채우면 지워준다고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계속하겠지."
"근데 진짜 웃긴 게, 걔 표정 봤어? 완전 좋아 죽던데."
발소리가 화장실 문 쪽으로 향했다. 강민준은 반사적으로 몸을 세면대 옆으로 붙였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는데, 그 소리를 누가 들을까 봐 무서운 게 아니라, 그 소리가 지금 무슨 감정을 알리는 신호인지조차 알 수 없어서 더 무서웠다. 분노인지, 수치심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인지.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멀어진 후에도, 강민준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수도꼭지에서는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잠그는 것도 잊은 채,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복도로 나섰을 때 한서연이 거기 서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그녀의 옆얼굴을 반쪼각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어제와 똑같이 차분했다. 마치 방금 전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강민준." 그녀가 다가왔다. 걸음걸이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오늘 점심 같이 먹을까?"
"들었어." 그가 겨우 말을 밀어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벌칙 게임이었다는 거."
한서연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지만, 그것도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녀는 이내 표정을 고쳤다. 마치 스위치를 내리듯, 어떤 감정이 스쳐 갔다면 그것을 순식간에 지워버린 것처럼. "그래서." 단정한 목소리였다. "그게 뭐가 문제야."
"뭐가 문제냐고?" 강민준의 목소리가 커졌다. 처음으로.
복도를 지나가던 몇몇 아이들이 힐끔거리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한서연은 그 시선들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4일이야." 그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4일만 버티면 영상은 지워져. 안 그러면 전교에 뿌려질 거야. 네가 손잡고 좋아서 웃던 모습, 다 찍혀 있는데."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하게 들리는지 그녀는 알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강민준은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아프다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
어제, 손을 잡았을 때 그녀가 웃으며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긴장하지 마. 나 연기 잘하니까." 그때는 그저 다정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 문장 안에는 이미 오늘의 결말이 숨어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사실을 그때 눈치챘더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선택권이 없는 거네." 그가 중얼거렸다.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한서연이 등을 돌렸다. 머리카락이 어깨 위에서 짧게 흔들렸다. "오늘 방과 후, 중정 벤치. 늦지 마."
그녀가 사라진 복도에는 그의 그림자만 길게 늘어져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오후 햇살이 그 그림자를 더 길게, 더 짙게 만들었다. 강민준은 그 그림자를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발밑에 붙어 있는 검은 형체가 마치 자기 자신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졌다.
수업 종이 울렸다. 아이들이 하나둘 교실로 흩어져 들어가는 소리, 사물함 문이 여닫히는 소리,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복도를 채웠다. 강민준은 그 모든 소음 속에서 유독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교실로 돌아가는 길, 강민준은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알 수 없는 번호로부터 메시지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발신자 이름이 없었지만, 마지막 줄에 붙은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오늘 중정으로 나와. 재밌는 거 보여줄게 — 박진혁."
그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재밌는 거, 라는 단어가 유독 목구멍에 걸리는 느낌이었다. 화면의 불빛이 손끝에 닿는 온도조차 이상하게 차갑게 느껴졌다.
수업이 다시 시작될 시간이었지만, 강민준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중정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텅 빈 벤치 위로 오후의 햇살만이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몇 시간 뒤, 저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