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강남 3구역.
내가 살던 골목에서 택시로 이십 분 거리였지만, 완전히 다른 행성이었다.
높은 담벽마다 담쟁이가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그 위로 보이는 정원은 잔디 색깔까지 균일했다. 방범 드론이 조용히 하늘을 돌며 낮은 웅웅 소리를 냈다. 저 드론 한 대 가격이 내가 한 달 벌어야 하는 돈보다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한참 만에 집사복을 입은 사람이 나왔다. 표정 하나 없는 얼굴로 나를 위아래로 슥 훑었다.
"러너 강도윤입니다."
"들어오시죠."
집사를 따라 들어간 저택 안은 숨이 막힐 정도로 화려했다. 대리석 바닥은 내 운동화 밑창에서 삑삑 소리를 냈고, 그 위로 걸린 그림들, 조각상들, 이런 물건 하나가 이 골목의 몇 년치 병원비랑 맞먹을 것 같았다.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는데, 나는 지금 부의 홍해를 건너고 있는 기분이었다. 근데 나만 이쪽 편에서 물벼락 맞고 있는 느낌?
거실 소파에 조여사가 앉아 있었다. 나이는 육십 대쯤, 화려한 보석과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 손가락마다 반지가 하나씩 있었는데, 저 반지 중에 제일 작은 거 하나만 팔아도 어머니 병원비 몇 달치는 나올 것 같았다.
"저 사람이 그 러너예요?"
조여사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 시선이 마치 물건을 평가하듯 차가웠다. 마트에서 유통기한 임박한 우유 보듯 하는 눈빛이었다.
"네, 조 여사님. 아크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최가 옆에서 굽신거리며 말했다. 저 굽신거리는 각도, 평소 나한테 하는 거랑 완전 딴판이었다.
"이름이 아크? 참, 요즘 애들 이름 짓는 거 보면."
조여사가 코웃음을 쳤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내 개 이름은 뽀삐야. 흰 몰티즈. 오늘 아침에 산책 나갔다가 없어졌어. 산책 담당 애가 놓친 거야."
"어디서 없어졌는지 아시나요."
"3구역 공원. 거기서 놓쳤대."
"주변에 카메라는요."
"그런 건 내가 알아? 니가 알아서 찾아와."
그 말투에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참았다. 참는 것도 이제 근육이 생겨서 자동으로 반응하는 것 같았다.
"네, 최대한 빨리 찾아보겠습니다."
"빨리? 세 시간 안에 못 찾으면 보수 반으로 깎을 거야."
계약 조건도 없이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이었다. 갑질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면 예술의 경지구나, 싶었다.
최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걸 보니, 이미 이런 조건에 다 동의했다는 뜻이었다.
"세 시간이면 충분하시죠? 아크님이 실력이 좋으시다고 들었는데."
최가 슬쩍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저 웃음이 진짜 얄미웠다. 니가 동의한 조건인데 왜 나한테 물어보는 척을 하는지.
"...최대한 해보겠습니다."
3구역 공원으로 가서 찾기 시작했다. 마나를 조금 흘려 주변 생명체의 미세한 파동을 느껴보려 했지만, 도시 소음 속에서 작은 강아지 하나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사람들 발소리, 자전거 벨소리, 어디선가 들리는 음악 소리까지 전부 마나 파동에 잡음으로 섞여 들어왔다.
한 시간이 지났다.
벤치에 앉은 노인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사람들, 그 어디에도 흰 몰티즈는 없었다.
두 시간이 지났다.
이마에 땀이 흘렀다. 시계를 볼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오십만 원. 아니, 백만 원. 아니, 절반으로 깎일지도 모르는 그 돈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러다 공원 뒤편, 관목 사이에서 작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덜컥했다.
"뽀삐?"
조심스레 다가가니, 작은 흰 강아지가 다리를 다친 채 웅크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강아지가 낑낑거렸다. 겁먹은 눈빛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조심스레 안아 올렸다. 몸이 바르르 떨고 있었다. 다리에서 피가 조금 나고 있었다. 어디 부딫힌 모양이었다. 관목 가시에 긁힌 건지, 뭔가에 걸려 넘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방어막을 아주 얕게 펼쳐서 강아지를 감쌌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안정될 거라 믿었다. 사실 이런 용도로 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기술인데, 뭐, 쓸모가 있으면 됐지.
저택으로 돌아가니, 두 시간 오십 분쯤 지나 있었다. 간발의 차였다. 뛰어오느라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뽀삐!"
조여사가 강아지를 받아 안았다. 순간적으로 표정이 밝아지는가 싶더니, 강아지 다리의 피를 보고는 다시 표정이 굳었다.
"이게 뭐야, 얘 다쳤잖아!"
목소리가 표독스럽게 튀었다.
"공원 관목 사이에 있었는데, 이미 다친 상태였습니다."
"이미 다쳤다고? 니가 다치게 한 거 아니야?"
"아닙니다. 발견했을 때부터 이미 이 상태였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어. 니 같은 애가 하는 말을."
니 같은 애.
그 말이 가슴에 콱 박혔다. 못이 심장에 박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조 여사님, 저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됐고, 보수는 절반만 줄게. 얘 다친 것 때문에 병원비도 들 텐데, 그것까지 니가 물어줄 순 없나?"
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 강아지를 나 몰래 다치게 한 것도 아니고, 이미 다친 상태로 발견했는데 왜 내가 병원비까지 물어야 하지? 논리로 따지면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다. 근데 이 바닥에서 논리 따위가 통할 리 없었다.
최가 슬쩍 다가와서 귓속말로 속삭였다.
"야, 그냥 그렇다 하고 넘겨. 이 집안이랑 얽히면 골치 아파."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최의 말대로 여기서 더 따지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지? 무등록 러너 신분으로 조여사 같은 사람이랑 싸워서 이길 방법이 있나?
없었다.
"...알겠습니다."
또, 알겠습니다.
이 말이 오늘 하루 동안 몇 번째인지 세다가 그만둬버렸다. 세봐야 뭐하나.
조여사가 강아지를 안고 소파에서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나를 흘겨봤다.
"다음엔 이런 애 말고 제대로 된 러너를 보내."
제대로 된 러너.
그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았다. 등록된, 정식으로 인정받은, 나 같은 밑바닥이 아닌 러너.
저택을 나서며 최에게 물었다.
"보수는 언제 받나요."
"오늘 밤 정산해서 줄게."
"절반이면 얼마죠."
"오십만."
세 시간을 뛰어다니고, 다친 강아지를 찾아내고, 없는 죄까지 뒤집어쓰고 받는 돈이 오십만 원이었다. 시급으로 치면 얼마인지 계산하다가 그만둬버렸다. 계산해봐야 화만 더 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무성 주점으로 돌아오니, 서은채가 아직 거기 있었다. 병원 일이 늦게 끝났는지, 지친 얼굴이었다. 하얀 간호복 위에 걸친 카디건이 구겨져 있었다.
"오늘 어떻게 됐어요?"
"별로 안 좋았어요."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서은채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눈썹이 점점 올라가는 게 보였다.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참으셨어요?"
"참을 수밖에 없죠. 이 바닥에서 저 같은 무등록은 항의할 권리도 없어요."
"그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에요?"
"불공평한 거 알아요. 근데 어쩌겠어요. 어머니 병원비가..."
말을 하다 목이 메었다. 눈물이 차오른다. 그래서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다.
무성 아저씨가 조용히 국밥을 놓고 갔다. 이번엔 아무 말도 없이. 그 말없음이 오히려 더 큰 위로가 됐다.
국밥에서 올라오는 김이 시야를 흐렸다. 아니, 눈이 흐린 건 김 때문이 아니었다.
그날 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최였다.
"어이, 아크. 정산은 내일 하고, 잠깐 얘기할 게 있는데."
"무슨 얘기요."
최의 목소리에서 뭔가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평소의 장난스러운 말투가 아니라, 이상하게 낮고 진지했다.
"니 어머니, 신서울 제3병원에 있는 이순정 씨 맞지?"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숨을 쉬려고 했는데 숨이 안 쉬어졌다.
"...그걸 어떻게 아시죠."
"그냥, 좀 알아봤어. 니가 나한테 그렇게 뻣뻣하게 나오는 거 보니까, 뭔가 좀 다른 방법이 필요하겠구나 싶어서."
등골에 소름이 확 끼쳤다.
이 인간이 지금 뭘 하려는 거지?
"최 사장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목소리가 떨렸다. 손에 쥔 휴대폰이 미끄러울 정도로 땀이 났다.
최는 대답 대신 낮게 웃기만 했다.
그 웃음소리가, 오늘 밤 내가 들은 어떤 소리보다 더 서늘하게 귀에 박혔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