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휴대폰 너머 최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나는 이미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이 인간이 먼저 전화를 거는 경우는 딱 두 가지였다. 새 일을 던져줄 때, 아니면 돈 얘기를 할 때. 그리고 돈 얘기일 때는 대부분 내가 손해 보는 쪽이었다.
"정산이요?"
"어. 니가 받은 그 삼십만, 아니 이십만. 그거 원래대로면 계산이 좀 달랐어야 했거든."
숫자부터 헷갈리는 인간의 정산이라니. 삼십인지 이십인지도 모르면서 뭘 정산한다는 건지.
"어떻게 다른가요."
"그게, 세금이랑 장비 대여료랑 이것저것 빼면 니가 받을 건 사실 십오만이 맞아."
십오만.
귀를 의심했다. 처음 계약할 때 들었던 숫자와 지금 이 숫자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순식간에 절반 이상이 사라져버린 셈이었다.
"장비 대여료요? 무슨 장비를 대여했다는 거죠."
"방어막용 임플란트 대여비. 그거 니 거 아니잖아."
내 목에 박힌 이 낡고 아픈 단자가 대여용이었다고?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로 들린 건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그건 제가 직접 산 겁니다. 제 돈으로요."
"어? 어허, 그거는 우리 쪽에서 계약서에 명시해둔 거라서."
"계약서를 본 적이 없는데요."
"아, 그거 사인은 니가 안 해도 되는 거였어. 처음 등록할 때 자동으로 처리되는 거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건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등록할 때 뭘 냈더라. 지문. 그것뿐이었다. 서명도, 도장도, 아무것도 없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최 사장님. 이건 사기 아닙니까."
"사기? 야, 말 함부로 하네. 니가 원래 이 바닥 잘 몰라서 그래."
"그래도 이건..."
"이봐, 아크. 니가 이 골목에서 일할 수 있는 이유가 뭔지 알아? 나야. 나 아니면 니가 무슨 일을 받을 수 있는데?"
숨이 턱 막혔다.
맞는 말이었다. 이 바닥에서 나 같은 무등록 러너가 임무를 받을 방법은 최 같은 브로커를 통하는 것뿐이었다. 등록되지 않은 능력자는 정식 계약을 맺을 수도 없었다. 시스템(system)이라는 게 있다지만 그 시스템은 애초에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또 그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세어봐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두 마디가 내 인생의 좌우명이 될 판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서은채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그런 식으로 내 표정만 보고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챘다. 눈치가 빠른 건지, 아니면 내가 표정 관리를 못하는 건지.
"많이 힘드시겠어요."
"아뇨, 괜찮아요."
괜찮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더 말할 수 있을까. 십오만 원이 사라졌다고, 목에 박힌 임플란트가 대여용이었다고, 이 모든 게 사기라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면 그녀가 뭘 해줄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같이 답답해질 뿐이었다.
다음날, 나는 최를 직접 만나러 갔다. 항만구 사무소, 그가 자주 있는 컨테이너였다. 녹이 슬어 여기저기 붉은 자국이 남은 그 컨테이너는 최의 사무실이자 창고이자 흡연실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 왔어?"
최가 담배를 물고 나를 맞았다. 그 태연함이 오히려 더 화가 났다. 마치 어제 통화한 게 다른 사람이라도 되는 양,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어제 얘기,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뭐가."
"장비 대여료라는 거요. 계약서를 보여주세요."
최가 씩 웃으며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던졌다. 종이는 테이블 위를 미끄러지다 내 앞에서 멈췄다. 마치 처음부터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서.
종이를 집어 읽어보니, 정말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방어막 관련 장비는 소속사 대여 시 대여료 청구'라는 조항이 있었다. 글씨가 너무 작아서 눈을 찡그려야 겨우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 서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건 제 서명이 아닙니다."
"어, 그거? 등록할 때 니가 지문 찍었잖아. 그게 서명이야."
지문을 찍은 건 기억났다. 처음 등록할 때, 무슨 종이인지도 모른 채 급하게 찍은 지문이었다. 그때는 뭐라도 빨리 등록해서 일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최가 내미는 서류마다 그냥 지문을 찍었다. 그게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이 인간이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구나.
등을 타고 서늘한 소름이 올라왔다. 처음부터 계산된 함정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뭔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이건 정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정정? 뭘 정정해. 계약은 계약이야."
"불공정한 계약입니다."
"불공정? 야, 아크. 불공정한 게 어딨어. 세상이 다 이런 거지."
그가 담배 연기를 뿜으며 웃었다. 연기가 컨테이너 안을 떠돌다가 좁은 틈새로 새어나갔다.
"니가 지금 뭐라도 되는 줄 아나본데, 니는 그냥 등록도 없는 무허가 러너야. 신고하면 니가 더 손해야, 알아?"
맞는 말이었다. 다시 한번, 맞는 말이었다.
이 바닥은 항상 이런 식으로 굴러갔다. 약자는 항상 규칙을 모르고, 아는 사람은 그 규칙을 이용해먹는다. 마치 하이에나 무리 사이에서 상처 입은 톰슨가젤 한 마리가 된 기분이었다. 도망칠 곳도 없고, 싸울 힘도 없는.
"...다음 임무는 좀 정확하게 계산해주십쇼."
"어, 그래야지. 근데 이번엔 특별 임무 있는데, 관심 있어?"
최의 표정이 순간 바뀌었다. 조롱하던 웃음에서 뭔가 이해타산을 재는 눈빛으로. 이런 식의 변화는 항상 새로운 일 얘기가 나올 때 나타났다.
"어떤 건데요."
"부유층 의뢰. 조여사라는 분인데, 반려견이 없어졌대. 찾아주면 보수가 세."
"얼마나요."
"백만."
백만이라는 숫자에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병원비 팔백만 원 중, 그 정도면 크게 도움이 될 텐데. 개 한 마리 찾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위험한 던전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몬스터랑 싸우는 것도 아니고.
"하겠습니다."
"오케이. 오늘 오후 세 시, 강남 3구역 조여사 저택으로 가."
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담배를 비벼 끄며 서류 하나를 더 던졌다. 저택 주소와 조여사의 사진이 담긴 서류였다. 사진 속 여자는 우아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어딘가에 뭔가 서늘한 기운이 스며 있었다. 물론 그게 진짜인지, 내 편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무성 주점으로 돌아와 이 얘기를 하자, 무성 아저씨가 국자를 든 채로 잠시 멈췄다. 뭔가를 끓이던 손이 허공에서 멈춘 채로, 그 표정만 봐도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조여사? 그 조 씨 집안이랑 관련된 거 아니야?"
"조 씨 집안이 뭔데요?"
"그 집안이 이 지역 병원들 지분 갖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조심해라."
병원 지분?
그럼 어머니가 계신 병원과도 뭔가 관련이 있는 건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이 도시라는 곳이 원래 이렇게 좁은 건지, 아니면 내가 유독 이런 일에 자주 걸려드는 건지.
"그냥 개 찾는 일이에요. 별일 없을 거예요."
"글쎄, 니가 하는 일 중에 별일 아닌 게 있던?"
그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지난 몇 달간 내가 맡았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려봐도, 정말로 아무 일 없이 끝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싶었다.
서은채가 옆에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녀는 항상 이런 순간에 조용히 끼어들었다. 강하게 주장하는 법이 없었지만, 그녀가 하는 말은 늘 무시하기 어려운 무게를 가졌다.
"저... 조여사라는 분, 저희 병원 재단 관련 있는 분 같은데요. 그분 성격이 좀... 유명해요."
"유명하다니요."
"직원들 대하는 게... 별로 안 좋다고 들었어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백만 원이라는 숫자가 그 불안을 눌렀다. 병원비 팔백만 원, 어머니의 치료비, 매달 쌓여가는 청구서들. 그 앞에서 불안이라는 감정은 사치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괜찮을 거예요. 저 일만 잘 끝내고 오면 되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별일이 없을 리가 없다는 걸. 무성 아저씨의 국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냄비 속에서 끓어오르는 국물처럼, 뭔가가 조용히 소용돌이치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예감이었다.
그날 오후, 나는 강남 3구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고층 건물들을 보며, 백만 원이라는 숫자와 조 씨 집안이라는 이름 사이에서 계속 저울질을 했다.
그래도 별일 없겠지. 그래도 될까. 어느 쪽이든?
버스는 그 물음에 답을 주지 않은 채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