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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콰직! 머리 위에서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졌다. 먼지가 먼저 눈앞을 가렸다. 그다음에야 소리가 따라왔다. 순서가 이상했다. 원래 세상이 무너질 때는 소리가 먼저 오는 게 맞는데. "피해요!" 소리를 지르며 그 애를 붙잡았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마나를 끌어올리는 손끝이 저절로 떨렸다. 방어막을 순식간에 펼쳤다. 파란 막이 우리 둘을 감쌌다. 쿵! 천장 일부가 그대로 방어막 위로 쏟아졌다. 충격에 무릎이 꺾였다. 이가 딱딱 맞부딪혔다. 혀를 깨물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버텨야 해. 이 아이라도 지켜야 해. 그 생각만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다른 건 다 지워졌다. 온몸의 마나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마치 배수구로 물이 빠지듯이, 순식간에, 되돌릴 수 없게. 다리가 후들거렸다.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막을 풀 수는 없었다. 지금 풀면 우리 둘 다 콘크리트 밑에 깔릴 게 뻔했다. 버텨. 조금만 더. 몇 초쯤 지났을까. 시간 감각이 이상하게 늘어졌다. 십 초가 십 분처럼 느껴졌다. 무너지는 소리가 그쳤다. 방어막을 살짝 열고 밖을 살폈다. 먼지가 자욱했지만, 더 무너질 기미는 없었다. 그제서야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참았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괜찮아요?" "네, 네..." 그 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가 떨렸다. 자세히 보니 열여덟쯤 되어 보였다. 얼굴에 상처가 있었다. 볼에 긁힌 자국, 이마엔 작은 혹까지. 옷은 먼지투성이였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요." "저도... 배정받아서 왔는데, 다들 저를 여기 버려두고 갔어요." 버려뒀다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사람을 여기 이런 위험한 데 두고 그냥 가버린다고? 이 바닥이 원래 인간 취급 안 해주는 데라는 건 알았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 "이름이 뭐예요?" "서은... 아니, 저기, 코드네임은 없어요. 그냥 이번에 처음이라..." 처음이구나. 나도 처음이었을 때가 있었다. 그때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무너지는 건물 안에 혼자 남겨져서, 마나가 다 빠질 때까지 벌벌 떨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나를 구해준 건 순전히 운이었다. 이 애한테는 그 운이 나였던 모양이다. "일단 나갑시다." 먼지 사이로 그 애의 손을 잡고 걸었다. 손이 작고 차가웠다. 벌벌 떨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우두머리 남자와 무리가 저만치에서 웃고 있는 게 보였다. 담배를 태우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 살아 나왔네." 말투가 뭔가를 기대했던 것처럼 시들했다. 마치 우리가 죽어 나왔어도 그다지 상관없었을 것 같은. "당신들이 여기다 버려둔 겁니까?"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낮게 깔렸다. "버려두다니, 말이 심하네. 걔가 알아서 못 나온 거지." "알아서?" "그래, 알아서. 우리가 뭐 유치원 선생이냐? 하나하나 손 잡아줄 시간이 있게?" 무리 중 하나가 낄낄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유독 신경을 긁었다. 분이 치밀었지만, 나는 그 감정을 삼켰다. 여기서 싸워봐야 나만 손해였다. 이 바닥에서 정의감은 사치품이다. 값도 안 나가는 사치품. "오늘 일은 이걸로 됐습니다. 갈게요." 그 애를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등 뒤에서 계속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골목을 벗어나 큰길로 나오니, 익숙한 간판이 보였다. 무성 주점. 17년 전, 내가 초등학교도 가기 전부터 나를 봐준 사람의 가게였다. 낡은 나무 간판에 페인트가 반쯤 벗겨져 있었지만, 그것도 나름 정겨웠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카운터 뒤에서 박무성 아저씨가 고개를 들었다. "어, 도윤이 왔네." 반정령 혈통이라는 그의 눈동자가 살짝 옅은 초록빛으로 빛났다. 나이가 들었어도 그 눈빛만은 여전했다. 어릴 때부터 봐온 그 눈빛. 뭔가 걱정될 때 유독 밝게 빛나는 걸 이제는 안다. "아저씨, 여기 얘 좀 재워줄 수 있어요? 갈 데가 없는 것 같아서요." 무성 아저씨가 그 애를 흘끗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몸에서부터 나오는 깊은 한숨이었다. "또 이런 일이야. 니가 뭐 자선사업가냐." "그런 게 아니라..." "됐다, 됐어. 앉아라, 밥이나 먹고 가." 말은 그렇게 툴툴거리면서도 벌써 주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 사람은 항상 이랬다. 입은 거칠어도 손은 항상 먼저 움직였다. 말과 행동이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 그게 무성 아저씨였다. 그 애가 자리에 앉으면서 어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낡은 나무 테이블, 벽에 걸린 오래된 사진들, 구석에 놓인 화분까지. 처음 온 사람은 다 저런 반응을 보인다. "이름이 뭐냐." "저... 서은채라고 해요." 서은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입안에서 굴려보니 어감이 나쁘지 않았다. "저는 사실 러너가 아니라, 원래 병원에서 일하는데... 임시로 마나 부족한 부서에 파견 나와서 이런 일까지 하게 됐어요." 병원? 순간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병상에 누워 있던 그 얼굴이. "어느 병원이요?" "신서울 제3병원이요." 어머니가 계신 병원이었다. "거기 저희 어머니가 계세요. 이순정이라는 환자인데." 서은채의 표정이 살짝 달라졌다. 눈이 커지면서 뭔가 생각하는 표정이 스쳤다. "...그분 알아요. 담당은 아니지만, 최근에 제가 케어 팀에 배정됐어요." 세상 참 좁았다. 이렇게 좁을 일인가. 아니면 원래 이 도시가 좁은 건가. "잘 부탁드려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어머니 얘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 "네... 근데 저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안 그랬으면 진짜 큰일 났을 거예요." 그 애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낮에 무너지던 건물 안에서 참았던 게 지금 터지는 모양이었다. 아까는 무서워서 울지도 못했던 거겠지. 안전한 곳에 와서야 그제서야 무서웠다는 걸 깨닫는 거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어깨를 두드려줬다.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나도 그런 위로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괜찮아요. 이 바닥 원래 이래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이 바닥이 원래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꿀 수 있는 힘이 나한테는 없었다. 그냥 살아남는 게 최선이었다. 무성 아저씨가 국밥 두 그릇을 들고 왔다. 뜨끈한 김이 훅 올라왔다. "먹어. 얘기는 배부르고 하자." 뜨끈한 국밥을 앞에 두고, 처음으로 오늘 하루가 조금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크리트에 깔릴 뻔했고, 무례한 놈들한테 시달렸고, 마나는 바닥까지 다 썼는데도. 국밥 한 그릇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웃겼다. 국물을 한 숟갈 뜨는데, 무성 아저씨가 슬쩍 말을 걸었다. 옆 테이블을 닦으면서, 마치 별거 아닌 것처럼. "근데 도윤아, 최 그놈 요즘 니 데리고 뭐 하냐?" "그냥 러너 일이요. 왜요?" 숟갈질을 멈추지 않으면서 대답했다. "소문이 좀 그래서. 걔가 요즘 하는 임무들이 죽 좋은 게 아니라던데." "괜찮아요, 저 잘 버티고 있어요." 무성 아저씨가 나를 빤히 보다가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그 눈빛에 뭔가 걸리는 게 있었지만, 굳이 캐묻지 않았다. 이 사람 특기가 그거였다. 걱정은 하되 강요는 안 하는. 서은채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근데... 오늘 받으신 보수, 원래 약속한 대로 다 받으신 거예요?" 순간 말이 막혔다. 숟갈을 든 손이 그대로 멈췄다. "...아뇨. 조금 깎였어요." "자주 그래요?" 대답을 하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최였다. 받을까? 받아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좀 쉬고 싶은데. 화면에 뜬 이름을 잠시 노려봤다. 국밥 한 그릇도 다 못 먹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아무한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받았다. 안 받으면 더 골치 아파진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어이, 아크. 지난번 정산 얘기 좀 하자." 그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뭔가 좋지 않은 얘기일 거라는 예감이, 그것도 아주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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