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쿵!
전격이 방어막을 두드렸다. 마나로 만든 얇은 벽이 파르르 떨렸다.
버텨! 버텨야 해!
이빨을 악물었다. 방어막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정확히 몰랐다. 이런 규모의 전격은 처음이었다. 교본에서 배운 수치로는 어림도 없는 출력이었다. 누가 이런 걸 창고 하나 지키는 데 깔아놨을까. 도둑 하나 막으려고 이 정도까지 하다니, 안에 있는 물건이 뭔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점점 더 알고 싶지 않아졌다.
찌직! 찌지직!
전류가 방어막 표면을 타고 스파크처럼 튀었다. 눈앞이 하얗게 번쩍였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서 있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는 거였다. 무릎이 꺾이면 그대로 끝이었다.
다행히 몇 초 만에 전류가 멈췄다. 창고 안이 다시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휴우.
숨을 몰아쉬는데 코에서 뜨끈한 게 흘렀다.
코피였다.
또야?
이번 달만 벌써 세 번째였다. 마나를 몸으로 소화하는 부작용이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과부하라고 했고, 최 브로커는 그냥 "몸으로 버는 놈들 특징이지"라고 했다. 위로랍시고 한 말인지, 그냥 사실을 말한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손등으로 코를 훔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 정도로 멈춰 있을 시간이 없었다. 방어막이 다시 충전되기 전에 안쪽까지 들어가야 했다. 창고 안 센서는 몇 초 간격으로 재가동되는 구조였다. 그 틈을 노려야 했다.
안쪽에는 낡은 금속 케이스가 하나 놓여 있었다. 무게가 상당했다. 두 손으로 들어야 겨우 균형이 잡혔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몰라야 마음이 편한 종류의 일이었으니까.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는, 궁금해하지 않는 능력을 키우는 거였다.
케이스를 들고 나오자, 최 브로커가 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그 웃음이 딱 봐도 뭔가 켕기는 웃음이었다.
"오, 잘했네."
"이거 뭔가요."
"몰라도 돼. 넌 그냥 받은 만큼만 하면 되는 거야."
그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제 와서 뭘 어쩔까.
"보수는요."
"어, 그거. 잠깐만."
최가 옆에 있던 사람들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뭔가 이상했다. 저 눈짓, 저 표정. 나쁜 소식이 온다는 신호였다. 몇 번 겪어본 적 있는 패턴이었다.
"저기, 원래 삼십만이었는데 말이야. 이게 상부에서 좀 문제가 생겨서, 이십으로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
이십?
"그건 이야기가 달랐잖아요."
"야, 상황이 바뀐 거지. 세상이 다 그런 거야."
피가 거꾸로 솟았다. 방금까지 목숨 걸고 전격을 뚫고 들어갔다가 나왔는데, 십만 원을 그냥 날린다는 소리를 이렇게 태연하게 하다니. 하지만 지금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뭐가 달라질까? 이 창고 앞에서, 저 낯선 두 사람 앞에서? 저쪽 인원이 셋이고 내가 하나였다. 계산은 순식간에 끝났다.
"이게 원래 계약이잖아요. 사인도 했고."
"계약서? 야, 그거 우리끼리 쓴 종이 쪼가리야. 법적으로 아무 효력도 없는 거 몰라?"
옆에 서 있던 다른 남자가 낄낄거렸다. 웃음소리가 창고 벽에 부딪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알겠습니다."
결국 그 말을 뱉었다. 매번 그랬다. 결국은 알겠습니다로 끝나는 인생이었다. 스물세 해를 살면서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세어본 적도 없었다.
다음날, 최가 다시 연락을 해왔다. 휴대폰 진동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번엔 또 얼마나 깎일까, 이번엔 또 뭘 시킬까.
"오늘 새 임무 있어. 이번엔 좀 다른 데야."
"어디인가요."
"시청 근처 재개발 구역. 거기 러너들 모으는 데가 있는데, 니가 껴야 할 것 같아."
러너들을 모은다는 건 뭔가 큰 작업이라는 뜻이었다. 나 혼자 하던 소소한 일과는 다른 규모의. 러너 여러 명이 붙는다는 건, 위험도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바닥에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일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자세히 좀 알려주시죠."
"가면 알아. 아, 그리고 거기 가면 텃세 좀 있을 거야. 다들 자기 구역이라고 생각하는 놈들이니까."
"텃세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가보면 안다니까. 몸 사려. 괜히 나대지 말고."
그 말이 불길했지만, 선택권이 나한테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어제 이십만 원짜리 목숨값을 받은 주제에 오늘 임무를 거부할 처지도 아니었다.
재개발 구역은 낡은 빌딩들이 반쪼가리로 서 있는, 부수다 만 동네였다. 어느 건물은 옥상까지 남아 있는데 어느 건물은 벽 하나만 덜렁 서 있었다. 먼지가 바람에 날려 회색으로 뒤덮인 골목을 지나야 했다. 그 사이에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 사무소가 하나 있었고, 그 앞에 벌써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나를 훑어봤다.
마치 새로 들어온 톰슨가젤을 보는 하이에나 무리 같았다. 위에서 아래까지,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값을 매기는 시선이었다.
"저기 저 놈이 아크야?"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코드네임은 이럴 때 참 편했다. 얼굴을 몰라도 소문만으로 사람을 구별하니까. 반대로 말하면, 소문만으로 이미 평가가 다 끝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크? 방어막 쓴다는 그 애송이?"
애송이라니. 나이는 스물세 살인데, 이 바닥에서는 그게 애송이 취급을 받는 나이였다. 서른 넘으면 노장, 마흔 넘으면 전설. 스물셋은 그냥 아직 덜 죽어본 놈이라는 뜻이었다.
키가 크고 팔에 문신이 잔뜩 있는 남자가 다가왔다. 이 무리의 우두머리쯤 되는 것 같았다. 어깨가 떡 벌어졌고, 걸음걸이부터 여기가 자기 땅이라는 티가 났다.
"어이. 여기 우리 구역인 거 몰라?"
"저는 그냥 배정받아서 왔습니다."
"배정? 누가 배정했는데."
"브로커 최요."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최가 또 자기 자리 못 채워서 딴 데서 데려왔구만."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조롱하는 웃음이었다. 열 명 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지니 그 자체로 압도적이었다.
"단백질 도둑 새로 왔네."
단백질 도둑. 이 바닥에서 마나를 쓰는 사람들, 특히 나처럼 몸으로 마나를 소화해야 하는 유형을 그렇게 불렀다. 사람들이 먹는 단백질까지 훔쳐가며 산다는 조롱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화가 났는데, 이제는 그냥 인사말처럼 들렸다.
그럴까? 나도 그런가? 정말 그런 걸까?
답도 없는 자문을 이어갔다.
"규칙 설명해줄까? 아니면 그냥 눈치로 배울래?"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남자가 이죽거리며 팔짱을 꼈다.
"이 구역 안에서 뭐가 나오든 최선임자가 먼저 가져가. 그다음 순서대로. 니가 뭘 발견해도 니 거 아니야. 알겠어?"
"순서는 어떻게 정하는 건가요."
"눈치껏. 여기 오래 있는 순서. 니가 제일 늦게 왔으니까 니가 제일 나중이야. 계산 쉽지?"
말도 안 되는 규칙이었지만, 이 무리 안에서 반박할 힘이 나한테는 없었다. 열 명 대 한 명. 게다가 저쪽은 다들 이 구역에서 몇 달, 몇 년씩 굴러먹은 러너들이었다.
"...알겠습니다."
"착하네."
남자가 손짓하자, 다들 각자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무너진 건물 안으로 발을 들이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 세게 어깨를 밀쳤다.
휘청.
중심을 잃고 바닥에 그대로 넘어졌다.
콰당!
무릎과 손바닥이 동시에 바닥에 부딪혔다. 먼지가 훅 일어나 코와 입으로 들어왔다.
"이런, 미안. 못 봤네."
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명백히 고의였다는 걸 알렸다. 못 봤다는 말치고는 웃음소리가 너무 컸다.
무릎이 까졌다. 따끔한 통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픈 건 이 무리 전체가 나를 보는 시선이었다. 저마다 재미있어하는 표정으로, 마치 서커스 구경하듯 나를 내려다봤다.
일어나야 해.
일어나서 아무 일도 아닌 척 걸어가야 해.
여기서 화를 내면 저들은 더 좋아할 뿐이다. 반응하는 순간, 나는 계속 놀림감이 된다. 그렇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등 뒤로 낄낄대는 소리가 계속 따라붙었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건물 안은 바깥보다 훨씬 어두웠다. 무너진 벽 틈으로 들어오는 빛줄기 몇 개가 먼지 속을 가르고 있었다. 발밑에서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밟혀 부스러졌다.
그런데 건물 안쪽, 어둠 속에 뭔가 웅크리고 있는 게 보였다.
사람이었다.
너무 작고 여려 보이는, 어린 여자애였다.
"저기..."
말을 걸자, 그 애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앙상한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거의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뭐지, 이 애는 왜 여기 있는 거지? 저 무리와 상관이 있는 건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사정인가?
물어볼 틈도 없었다.
순간, 뒤쪽 벽 어딘가에서 낮은 진동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웅... 우웅...
발밑이 흔들렸다. 위에서 뭔가 부스러기가 후드득 떨어졌다.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