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일주일이 지나자 병실에 새로운 사람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간호조무사 이지현이었다. 짧은 치마에 굽 높은 힐을 신고 다녔는데, 병동을 오가는 다른 직원들과는 다르게 걸음이 사뭇 가벼웠다. 또각또각, 복도 저편에서부터 그 구두 소리가 들리면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앉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처음엔 그녀를 조금 경계했다. 몸에 손을 대는 게 여전히 낯설고 불편했으니까. 서른두 남자로 살아온 시간이 몸 안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누군가의 손끝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흠칫거렸다.
지현 씨는 매일 아침 내 몸을 닦아주고, 옷을 갈아입히는 걸 도왔다. 대야에 물을 받아오고, 수건을 접고, 팔부터 시작해 목덜미까지 차례로 닦아내는 손길이 정확하고 지체가 없었다. 처음엔 그 손길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여자의 몸을 만지는 여자의 손이라는 게, 남자였던 내게는 이상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등을 닦을 때는 숨을 참았고, 옷을 갈아입힐 때는 시선을 어디 둬야 할지 몰라 천장만 노려봤다. 그런데 지현 씨는 그런 내 반응을 눈치챘는지, 딱히 캐묻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능숙하게 일을 마치고 나갔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고마웠다. 누구라도 왜 그렇게 굳어 있냐고 물었으면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을 테니까.
어느 날, 나는 거울 앞에서 또 한참을 서 있었다. 세면대 위 작은 거울에 비친 얼굴이, 볼 때마다 조금씩 낯설어졌다. 눈매는 분명 여자의 것인데,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시선은 여전히 내 것이었다. 두 개의 존재가 한 몸 안에서 삐걱거리며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지현 씨가 들어오다가 그 모습을 봤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는 놀라서 몸을 돌렸다. 손끝이 순간 차가워졌다.
괜찮아요. 다들 그래요.
지현 씨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되묻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뭔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그냥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그 담담한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화장기 없는 눈두덩, 살짝 처진 눈꼬리.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어려 보였는데, 손에는 이상하게 세월이 묻어 있었다. 이런 일을 오래 해온 사람의 손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지현 씨가 오는 시간을 조금씩 기다리게 됐다. 아침 여덟 시, 복도에서 구두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괜히 이불을 정리하거나 머리를 만지곤 했다. 그녀는 말이 많지 않았다. 대신 필요한 순간에 딱 맞는 침묵을 건넸다. 어떤 날은 내가 눈물을 흘리는데도 그녀는 그저 옆에 앉아서 손을 잡아줬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 조언도 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위로가 됐다. 위로랍시고 던지는 상투적인 말들, 다 잘될 거예요, 힘내세요, 그런 말들이 오히려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든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지현 씨에게 어느 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저는 왜 이렇게 다 낯설까요. 몸도, 이름도, 가족도.
말을 뱉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위험한 질문을 했는지 깨달았다. 지현 씨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사고를 크게 당하면 그럴 수 있어요. 몸이 기억을 못 따라가는 거죠.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그 말이 정답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말에서 위로를 받았다. 적어도 이 사람은 내가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나가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그 말을 곱씹었다. 몸이 기억을 못 따라간다. 그럼 언젠가는 따라잡을 수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영원히 이 간극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일까. 나는 답을 알 수 없었다.
***
그 주 주말, 태현과 소라가 함께 병실을 찾아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을 때, 낯선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소라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검은 머리를 하나로 묶고 세련된 옷차림을 한, 미경 씨와 닮은 눈매를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나를 와락 안았다. 향수 냄새가 코끝에 확 끼쳤다.
야, 너 왜 이렇게 말랐어. 병원 밥이 그렇게 부실하니.
소라의 목소리는 발랄했다. 팔로 내 등을 두드리는 손길에도 힘이 넘쳤다. 나는 그 텐션을 따라가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소라는 눈치가 빠른지, 내 표정을 보고 살짝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침대 한쪽에 훌쩍 걸터앉으며 신발을 툭 벗어 던졌다.
태현이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오래된 노트였다. 겉표지 색이 바랬고, 모서리가 둥글게 닳아 있었다.
하은이 니가 예전에 쓰던 일기장이야. 병실이 심심할까봐 가져왔어.
나는 그 노트를 받아들었다. 표지가 낡아 있었다. 손때가 묻어 있는 부분들이 손끝에 그대로 느껴졌다. 어느 부분은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는데, 그건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만지고 만졌다는 뜻일 거였다. 나는 그걸 열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안에 진짜 하은이가 살아 있을 것 같아서, 그게 나를 더 낯선 사람으로 만들 것 같아서. 노트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표지만 손끝으로 쓸어봤다.
왜, 안 열어봐?
소라가 물었다. 나는 그냥 웃으며 나중에 천천히 볼게, 하고 말을 흐렸다. 소라는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소라가 침대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다. 회사 얘기, 최근 만난 투자자 얘기, 엄마가 요즘 잠을 못 잔다는 얘기. 목소리에는 특유의 리듬이 있어서, 한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문장이 튀어나왔다. 나는 그 얘기들을 들으며 조금씩 이 가족의 결을 파악해갔다. 소라는 독립하고 싶어하지만 아직 엄마 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얘기를 하면서 소라는 살짝 볼을 부풀렸다. 태현은 책임감이 강해서 항상 뭔가를 짊어지려 한다. 그는 소라의 말 중간중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만 했다. 그리고 미경 씨는, 이 모든 관계의 중심에서 다들 그녀를 향해 있다. 소라도, 태현도, 말끝마다 엄마 얘기가 붙었다.
나는 그 관계 속으로 서서히 들어가고 있었다. 원래 있던 하은이가 아니었지만, 이 가족들은 나를 하은이로 대해줬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그 자리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소라가 웃으면 따라 웃었고, 태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나도 괜찮은 척 눈썹을 내렸다. 그게 연기인지, 진짜 적응인지 나조차 헷갈렸다.
소라는 한참을 떠들다가 갑자기 목이 마르다며 매점에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비웠다. 병실에 태현과 나만 남았다. 그는 잠깐 말없이 창밖을 보다가, 다시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태현이 돌아가기 전에 나를 보며 말했다.
다음 주에 최인규 박사님이 정밀검사 다시 하실 거래. 너 번개 맞은 거 아직도 이상한 게 많다더라. 근육 조직 검사도 다시 한대.
그 말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검사가 깊어질수록, 이 몸에 숨어 있는 무언가가 드러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나는 그 불안을 애써 눌러 삼켰다. 태현의 눈빛은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 아래 뭔가를 감추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저 걱정에서 나온 표정인지, 아니면 이미 뭔가를 짐작하고 있는 표정인지 나는 구분할 수 없었다.
소라가 음료수 두 개를 사들고 돌아왔을 때, 태현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두 사람이 병실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손에 든 낡은 노트를 다시 내려다봤다. 표지 위로 손가락을 얹었다. 열까, 말까. 손끝이 표지 가장자리를 서성이다 결국 다시 접혔다. 나는 그것을 침대 옆 서랍 안에 밀어넣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병실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창밖으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근육 조직 검사, 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자꾸 맴돌았다. 그들이 뭘 찾아내려는 걸까. 그리고 그걸 찾아내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