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번개로 온 가짜 딸

2화

사흘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병실에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매일 조금씩 색이 달라졌지만, 병실 안의 시간은 거의 멈춘 것 같았다. 검사는 계속됐고, 팔에는 여전히 링거 자국이 남아 있었다. 파랗게 멍이 든 자국을 손가락으로 문질러보면서, 나는 이 몸이 얼마나 쉽게 상처를 남기는지 새삼 느꼈다. 예전 몸은 이렇게 쉽게 멍이 들지 않았는데. 아니, 예전 몸이라는 표현부터가 이상했다. 예전이라는 말이 붙을 자격이 있는 몸이 있기는 한 걸까. 나는 그동안 이 몸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알아간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몸이 얼마나 낯선지는 매일 새롭게 깨달았다. 손톱의 모양, 손등의 뼈가 도드라지는 각도, 심지어 숨을 쉴 때 갈비뼈가 움직이는 방식까지도 낯설었다. 이게 내 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이 몸이 실제로 내 것처럼 움직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걷는 게 문제였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걷던 걸음이었는데, 이 몸으로는 자꾸 균형이 흔들렸다. 다리 길이가 짧아진 느낌이었다. 병실 복도를 몇 걸음 걸어보려다가 벽에 어깨를 부딪힌 게 벌써 두 번이었다. 팔도 그랬다. 뭔가를 집으려고 손을 뻗으면 예상보다 짧은 거리에서 물건이 잡혔다. 물컵을 잡으려다가 허공을 짚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뇌가 예전 몸의 비율을 기억하고 있어서, 새 몸의 크기를 계속 오차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마치 낡은 지도를 들고 새로 생긴 도시를 걷는 기분이었다. 길은 다 바뀌었는데 지도만 그대로인. 시야도 흐릿했다. 정확히는 초점이 자꾸 어긋났다. 눈이 이상한 건지, 뇌가 이상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병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나무를 보다가 갑자기 세상이 기울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고 있으면 그 흔들림이 내 시야 전체로 옮겨오는 것 같았다. 나는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손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세게. 그렇게 하면 세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걸, 며칠 사이에 배웠다. 간호사가 다녀갈 때마다 나는 최소한의 말만 했다. 체온 재실게요, 잠깐 팔 좀 주세요, 하은 님 오늘 컨디션 어떠세요. 그런 질문들에 나는 네, 라거나 괜찮아요, 같은 말들로 짧게 대답했다. 하은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뭔가 목에 걸리는 느낌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 목소리가 낯설어서 소름이 돋았다. 성대가 다른 사람의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마치 남의 목소리를 빌려서 대답하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에서 내려섰다. 링거는 이미 뗀 상태였다. 병실은 조용했다. 복도의 형광등 불빛만이 문틈으로 희미하게 새어들어왔다.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세상이 기울었다. 슬리퍼를 신을 새도 없이, 나는 벽을 짚으려 했지만 손이 허공을 갈랐다. 뇌가 예전 몸의 팔 길이로 거리를 계산했기 때문이었다. 몸이 앞으로 쏠렸다. 순간,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대로 넘어지면 어떻게 될까. 머리를 부딪히면. 아예 이 낯선 몸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면. 그 생각은 아주 짧았지만, 놀랍도록 선명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둔 문장을 꺼내 읽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스스로도 놀랐다. 정말로 그러고 싶었나. 아니면 그저 몸이 반응하기 전에 머리가 먼저 계산한 시나리오였을 뿐인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이마가 침대 모서리에 부딪혔다. 둔탁한 소리가 병실 안에 울렸다. 통증은 뒤늦게 왔다. 뜨겁고 날카로운 감각이 이마에서부터 퍼져나갔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문이 벌컥 열렸다. 태현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병원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성큼 다가와 나를 안아 일으켰다. 팔이 단단했다. 하은아, 하은아, 정신 차려. 그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손끝이 내 어깨를 꽉 붙잡고 있었다. 나는 이마를 짚으며 눈을 떴다. 태현의 얼굴이 가까이 있었다. 걱정이 진하게 배어 있는 얼굴이었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고, 이마에는 옅게 땀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면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낯선 사람인데, 그가 나를 걱정하는 게 느껴졌다. 그게 왜 이렇게 낯설고, 동시에 뭔가 뭉클했는지 모르겠다. 왜 혼자 일어나려고 해. 간호사 부르면 되잖아. 태현이 화를 내듯 말했다. 목소리에는 화보다 두려움이 더 짙게 섞여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은 넘어지려고 한 게 아니었어, 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사실은 넘어지고 싶었는지도 몰라, 라고 해야 하나. 어느 쪽도 말이 안 됐다. 어느 쪽도 이 사람에게 할 수 없는 말이었다. 태현이 나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등을 받치고, 베개를 정리해 머리를 편하게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이마의 상처를 살펴보더니 낮게 욕을 뱉었다. 씨발, 피 나잖아. 그가 서랍에서 거즈를 꺼내 상처를 눌렀다. 손길이 서툴렀지만 조심스러웠다. 거즈를 대는 각도가 자꾸 어긋나서, 결국 옆에 있던 물티슈로 피부터 닦아냈다. 그 와중에도 그는 계속 내 눈을 살폈다. 괜찮아, 괜찮아,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 남자는 나를, 아니 하은이를 얼마나 사랑하는 걸까. 진짜 하은이었다면, 이 오빠라는 사람은 어떤 존재였을까.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오빠일까, 아니면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가까워진 사이일까.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앞에서, 나는 그저 이 몸을 빌려 쓰고 있는 침입자일 뿐이었다. *** 태현이 간호사를 부르러 나간 사이, 나는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아까 그 순간, 정말로 넘어지고 싶었던 걸까. 이 낯선 몸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아니면 그냥 다리가 풀려서 넘어진 것뿐일까. 몇 번을 되짚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둘 다였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둘 다 아니었을 수도. 확실한 건, 이 몸에서 살아가는 게 매일매일 고문 같다는 사실이었다. 걸을 때마다, 말할 때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세면대 앞에 서서 낯선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그리고 그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도. 의사도, 간호사도, 심지어 나 자신도 답을 몰랐다. 간호사와 함께 들어온 태현이 내 이마에 밴드를 붙여줬다. 손끝이 조심스럽게 밴드 끝을 눌러 고정시켰다.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낮게 말했다. 다시 이런 짓 하면, 나 진짜 화낼 거야.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아듣지 못한 척, 그냥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진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 진심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진짜 하은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나를, 진짜인 것처럼 걱정하고 있었다. 간호사가 나가고 병실에는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태현은 침대 옆 보조 의자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잠들지 않은 채, 내 얼굴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느껴져서 나는 눈을 감은 채로도 잠들 수 없었다. 이 사람의 진심이 향하는 곳은 하은이었다. 나는 그 이름 뒤에 숨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 거짓이 들통나면, 저 눈빛은 어떻게 변할까. 그 생각을 하자 이마의 상처보다 더 깊은 곳이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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