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냄새였다. 소독약과 젖은 시트, 그 밑에 깔린 달큰한 꽃향기 같은 것.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냄새였다. 나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형광등 불빛이 유독 하얗게 부서졌다. 눈이 부셔서 몇 번 깜빡였는데도 초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만지려 했는데, 손이 이상했다. 가늘고 길었다. 손톱 끝이 매끈했다. 내 손이 아니었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쿵쿵쿵,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박동. 나는 손을 눈앞으로 가져와 폈다 접었다 했다. 손가락 사이로 형광등 불빛이 갈라져 들어왔다. 마디가 굵고 거친 손이어야 했다. 키보드 자판을 하루에 열 시간씩 두드리던, 담배 냄새가 절어 있던 그 손. 손등에 굳은살이 박여 있고, 손톱은 아무리 잘라도 늘 지저분하게 갈라지던 그런 손.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손톱 밑에 반투명한 큐티클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누가 관리해준 것처럼. 손가락 마디마디가 가늘어서 힘을 줘도 딱딱해지지 않았다.
왜 이래, 이거 뭐야.
목소리를 내려는데 그것도 이상했다. 낮고 걸걸했던 내 목소리 대신, 가늘고 높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이게 내 목소리인가. 다시 한번, 좀 더 크게 소리를 내봤다. 하아, 라는 짧은 신음이었는데도 낯설어서 소름이 돋았다. 목 안쪽에서 울리는 진동조차 다르게 느껴졌다. 성대가 다른 위치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헛기침을 해봤다. 그것마저도 내가 알던 소리가 아니었다.
침대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벌떡 일어섰다. 검고 긴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파란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여자는 내 손을 잡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하은아. 하은아, 정신이 드니.
하은아. 그 이름이 낯설었다. 누구를 부르는 건가 했다가, 곧 깨달았다. 저 여자가 부르는 대상이 나라는 걸. 나는 하은이 아니었다. 나는 차은호였다. 서른두 살 남자, PC방에서 살다시피 하던, 사람 만나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남자. 그런데 왜 저 여자는 나를 하은이라고 부르는가. 하은. 입안에서 그 이름을 굴려봤다. 낯선 발음이었다.
나는 입을 열려다 다시 다물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야, 나 하은이 아니야, 라고 말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하나.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때 여자, 아니 저 여자가 나를 끌어안았다. 부드럽고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덮었다.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 품 안에서 몸이 뻣뻣하게 굳는 걸 느꼈다. 이 몸, 내 몸이 아닌 이 몸이 여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가슴께에 뭔가 부드러운 것이 눌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여자의 눈이 커졌다. 상처받은 표정이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머릿속이 온통 하얬다.
***
그러고 보니 그날, 정확히 기억이 났다. 나는 PC방에서 나오던 길이었다. 사흘 밤을 새고 나온 참이었다. 랭킹전에서 한 계단만 더 올라가면 됐는데, 접속이 끊겼다. 서버 오류였는지, 뭐였는지 모르겠다. 씨발, 이라고 중얼거리며 골목을 걸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게 그때였다. 우산도 없이 걸었다. 어차피 젖는 게 대수가 아니었다. 사흘째 씻지도 못한 몸이었으니까.
엄마는 이미 삼 년 전에 죽었다. 심장마비였다. 나는 장례식장에서도 노트북을 켰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던 게 기억난다. 친척 하나가 다가와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근데 뭐 어쩌라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었나.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때 나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편했던 걸까.
비를 맞으며 걷다가 하늘이 새하얗게 밝아지는 걸 봤다. 번개였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다음은 기억이 없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근처 편의점 직원이 나를 발견했다고 했다. 몸에서 타는 냄새가 났다고. 구급차가 왔고, 어딘가로 실려 갔고, 그다음은 암전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낯선 병실 천장을 보고 있다. 낯선 몸으로. 낯선 이름으로. 죽은 걸까, 살아난 걸까. 그것도 아니면 다른 무언가로 바뀐 걸까. 답이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돌았다.
***
여자가 간호사를 부르러 나간 사이,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팔에 링거 줄이 꽂혀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시트를 걷어내고 다리를 봤다. 가늘고 길었다. 종아리에 잔털 하나 없이 매끈했다. 나는 그걸 한참 들여다보다가 손으로 만져봤다. 감촉이 낯설었다. 내 몸이 아닌데, 신경은 이 몸을 내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만지면 만져지는 감각이 그대로 전달됐다. 손끝에서 살갗의 서늘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몸이 바뀌었는데 감각은 이어져 있다니. 이건 대체 무슨 이치인가.
병실 벽에 작은 거울이 걸려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서려다 다리가 풀려 벽을 붙잡았다. 다리 힘이, 균형이 이상했다. 내 몸이었다면 벌써 몇 걸음 걸었을 텐데, 이 몸은 조금만 움직여도 무릎이 후들거렸다. 겨우 몸을 지탱하고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걸음걸이도 낯설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몸의 중심이 어디로 쏠리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거울 속에는 낯선 여자아이가 있었다. 열일곱, 열여덟쯤 됐을까. 하얀 얼굴, 긴 검은 머리, 큰 눈. 예쁘다고 해야 할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게 나였다. 저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거울을 만졌다. 차가웠다. 거울 속 여자아이의 표정이 내가 짓는 표정과 똑같이 따라 움직였다. 눈썹을 찌푸리면 저쪽도 찌푸렸다. 입을 벌리면 저쪽도 벌렸다. 당연한 일인데도 소름이 돋았다.
너 누구야.
입 밖으로 소리를 냈는데, 그 낯선 목소리가 텅 빈 병실에 울렸다. 대답은 없었다. 당연했다. 거울 속 여자아이도 나였으니까. 나는 한참을 그렇게 서서 거울 속 얼굴을 들여다봤다. 낯설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이건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그런데 그 존재가 나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황급히 거울에서 물러났다. 파란 눈의 여자가 다시 들어왔다. 그 뒤로 키가 큰 남학생이 따라왔다.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남학생이 나를 보더니 얼굴이 굳었다.
하은아, 왜 서 있어. 넘어지면 어쩌려고.
남학생이 다가와 내 팔을 붙잡았다. 힘이 셌다. 나는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침대로 끌려갔다. 등에 닿는 매트리스의 감촉이 낯설고 서늘했다. 남학생의 손이 내 팔을 감싸는 순간, 나는 그 손의 온도까지 낯설게 느껴졌다. 이 낯선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고, 나를 만지고, 나를 부른다. 그런데 나는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어지러웠다. 이 몸이, 이 세계가, 전부 낯설었다.
엄마라는 여자가 내 이마를 짚었다. 손바닥이 서늘했다. 열은 없는데. 의사 선생님 다시 불러야 하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을 뜨고 천장을 봤다. 형광등이 여전히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이 몸으로 살아야 하나. 이 이름으로. 이 낯선 가족들 속에서. 차은호로 살았던 서른두 해의 기억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이 몸 안에 갇힌 채로, 남은 평생을 하은이라는 낯선 여자아이로 살아야 하는 걸까.
답을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나는 더 이상 차은호가 아니었다. 적어도 이 세상은, 나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지금 이 순간 나를 가장 두렵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