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이리 앉아." 어머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게 깔려 있었다.
격물원 입단시험을 하루 앞둔 날 저녁이었다. 저녁 8시 무렵, 나는 다시 마도원 지하 수련실로 불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마다 발밑이 서늘했고, 벽을 타고 흐르는 냉기가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봉인된 채 남아 있던 실금 자리는 여전히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그 앞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손에는 낡은 서류철 하나가 들려 있었다.
수련실 안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지정한 의자에 앉았다. 나무 의자였는데, 등받이가 유난히 차가웠다. 아니, 차가운 건 등받이가 아니라 내 등이었는지도 모른다.
"강습장 관측 장비 오작동." 어머니가 서류를 펼치며 읊었다. "실험실 감지기 폭증 반응. 그리고 여기 수련실 균열 흔적까지."
서류철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종이 한 장, 한 장이 넘어갈 때마다 나는 어깨가 조금씩 움츠러드는 걸 느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세 건 모두 네가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어." 어머니의 시선이 정확히 나를 향했다. 그 눈빛은 마치 실험 결과를 확인하는 연구자의 눈빛 같았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정확하고 차가운. "우연이라고 생각하니?"
우연이라고 생각하니?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됐다. 정말 우연일까. 세 번이나. 아니,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겨우 대답했다.
"모른다는 대답은 필요 없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서류철을 탁, 소리 나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넌 지금 마법 수련을 회피하고 있어. 3구역 사고 이후로 각인문 근처에도 안 가려 하잖아."
그 단어, 3구역 사고. 그 말이 나오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손끝이 저렸다. 마른침을 삼켰는데, 목이 바짝 말라 넘어가는 소리조차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백승현." 어머니가 이름을 정확히 발음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끊어서, 마치 판결문을 읽듯이. "그 아이가 죽은 날, 넌 그 조에 있었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안면 근육이 굳는 게 느껴졌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폐 속에 뭔가 걸린 것처럼, 공기가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않았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아직도 나한테 말 안 하니." 어머니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감정이 섞였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구분되지 않는 떨림이었다. 그 떨림이 나를 더 무섭게 했다. 화를 낼 때보다, 이렇게 흔들릴 때가 더.
나는 고개를 숙였다. 무릎 위에 놓인 내 손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이미 떨리고 있었다.
"제가... 뭘 어쩌란 거예요." 나는 목소리가 갈라지는 걸 느꼈다. 목 안쪽 어딘가가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제가 손을 놨어요. 그래서 걔가 죽었어요. 그게 다예요!"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나조차 놀랐다. 처음으로 소리 내어 인정한 사실이었다.
몇 달을 참아왔던 말이었다. 머릿속에서만 수백 번, 수천 번 되풀이했던 문장이었는데, 실제로 입 밖으로 나오니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마치 그 말을 뱉는 순간 다시 그날로 돌아간 것처럼, 손끝에서 그날의 냉기가 되살아났다.
어머니는 잠시 침묵했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서류철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넌 죄책감 때문에 마법을 피하고 있어. 근데 그거 알아? 각인문은 감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도구야. 네가 그날의 죄책감을 안고 각인을 시도할 때마다, 그 감정이 회로를 타고 폭주하는 거다."
폭주. 그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강습장 관측 장비 오작동, 실험실 감지기 폭증 반응, 수련실 균열. 전부 내 죄책감이 만들어낸 흔적이었다는 뜻인가. 우연이 아니라, 필연.
"그럼 어쩌라고요!" 나는 소리쳤다. 목소리가 수련실 벽에 부딪혀 울렸다. 벽면에 걸린 촛대의 불빛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저는 그냥 마법이 무서워요! 손을 대면, 그날이 다시 떠올라요! 걔 손이... 걔 손이 아직도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각인문을 그려요!"
목이 아팠다. 소리를 지르느라 목 안쪽이 긁힌 것처럼 아팠다.
걔 손. 백승현의 손. 마지막 순간, 내 손을 붙잡으려던 그 손. 내가 놓아버린 그 손.
지금도 눈을 감으면 보인다. 그 손가락 하나하나, 그 손가락이 허공을 움켜쥐다가 서서히 힘을 잃어가던 모습까지도.
어머니의 얼굴이 순간 흔들렸다.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다물렸다. 뭔가 말하려다 삼킨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다시 냉정을 되찾고 말했다.
"그렇다고 계속 피할 거야? 격물원은 마도원 평가를 통과 못 하면 절대 입단시켜주지 않아. 넌 지금 시험 하루 전날에 이 상태로 가겠다는 거니?"
시험. 그 단어가 지금 이 순간 얼마나 하찮게 느껴지는지, 어머니는 모를 것이다. 아니, 알면서도 저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차라리 떨어질래요!" 나는 소리를 지르고는, 스스로도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떨어진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속이 뒤틀렸다. 몇 년을 준비해온 시험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시험조차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수련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초 하나가 타들어가는 소리, 벽을 타고 흐르는 물기 한 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어머니는 나를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마침내 등을 돌렸다. 그 뒷모습이 평소보다 훨씬 작아 보였다.
"내일 시험장에서 봐." 어머니가 문을 향해 걸으며 말했다. "거기서 뭘 할지는 네가 정해."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 소리가 마치 수련실 전체를 흔드는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남은 실금 자리를 내려다보며 주저앉았다.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그대로 바닥에 스르르 미끄러졌다.
손끝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고, 그 떨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씨발. 진짜.
머릿속으로 그 말만 되풀이했다. 입 밖으로 낼 힘도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몰랐다. 그저 실금 자리의 검은 그림자를 바라보며, 그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 같은 착각에 시달렸다.
내일. 시험장. 격물원.
세 단어가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아니, 선택이라는 게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수련실 벽 한구석에 걸린 관측 장치의 램프가 조용히, 아주 조용히 붉게 깜빡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램프는 한 번, 두 번, 세 번, 점점 짧아지는 간격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뭔가가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내일 아침, 격물원 입단시험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 붉은 깜빡임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바닥에 주저앉아 떨리는 손끝을 내려다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