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격물원 입단시험까지 이틀.
나는 아버지의 오래된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마기테크 소형 발명품 하나를 완성해야 시험 통과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갈 것 같았고, 마법 수련실에서 벌어진 그 사고를 떨쳐내려면 뭐라도 손에 잡히는 일을 해야 했으니까.
실험실은 먼지 냄새와 오래된 마정석 특유의 미세한 오존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책상 위 부품들 위로 길게 늘어졌고, 나는 그 빛줄기 사이에 앉아 몇 시간째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허리가 뻐근했지만 일어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몸이 아픈 건 참을 수 있었다. 마음이 아픈 것보다는.
책상 위에는 작은 마정석 회로판과 구리 코일, 그리고 반쯤 완성된 소형 균열 감지기가 놓여 있었다. 이건 순수하게 과학적 원리로만 작동하는 장치였다. 마나를 다루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영역.
내가 이 장치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마법은 나를 배신했지만, 과학은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회로도는 정직했다. 전류가 흐르는 방향, 저항값, 코일의 권수. 숫자로 표현되는 모든 것이 예측 가능했고, 예측 가능하다는 건 곧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회로도를 다시 확인하며 코일을 감았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손끝은 여전히 정확했다. 구리선이 손가락 사이를 미끄러지듯 감기는 감촉이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상하게도 마법 앞에서는 걷잡을 수 없이 떨리던 손이, 과학 앞에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마법은 내 안의 무언가를 끌어내야 했고 과학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겠지. 마나 회로에 손을 대는 순간마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던 그 서늘한 감각, 어제 수련실 바닥에 남긴 실금이 자꾸만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순간의 공포. 나는 그걸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코일 권수가 부족해서 감도가 지나치게 낮았다.
두 번째 시도도 실패했다. 이번엔 회로판 접합부에서 미세한 스파크가 튀었고, 나는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세 번째 시도에서야 겨우 안정적인 회로가 완성됐다.
세 시간쯤 뒤, 감지기가 처음으로 작동했다. 작은 램프가 파랗게 켜지며, 창밖 하늘의 균열 반응을 미약하게나마 포착해내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계기판을 들여다봤다. 수치는 이랬다. 3구역 22퍼센트, 4구역 14퍼센트. 어제보다 각각 1퍼센트씩 오른 값이었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 작은 변화를 내 손으로 만든 장치가 잡아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뿌듯했다.
"됐다."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성취감이었다.
가슴 한구석이 뜨끈해지는 감각. 마법으로는 다시는 못 느낄 줄 알았던 그 감각을, 나는 순수한 과학으로 되찾은 셈이었다.
그 순간 실험실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들어왔다.
"오, 이거 봐라." 아버지가 감지기를 들어 올리며 눈을 빛냈다. 아버지의 눈빛에는 순수한 호기심과 자부심이 뒤섞여 있었다. 저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펴졌다. "이 정밀도면 격물원 심사위원들 눈이 튀어나올걸."
"과장하지 마세요."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지만, 입가가 살짝 풀리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감지기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감탄을 흘렸다. 회로판을 뒤집어보고, 코일 권수를 세어보고, 계기판 위 숫자를 확인하며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이거 순수 과학 회로만으로 만든 거지?" 아버지가 물었다.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기테크는 융합이 필수인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어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신중함이 들어섰다. "과학만으로는 이 감도가 한계야. 마법 각인 회로를 심으면 감지 범위가 세 배는 늘어날 텐데."
그 말에 손끝이 다시 차가워졌다. 마법이라는 단어 하나가, 어제 수련실 바닥에 남은 실금을 눈앞에 다시 그려냈으니까.
머릿속에서 그날의 장면이 재생됐다. 마나가 손끝에서 폭주하던 감각, 수련장 강사의 당황한 얼굴, 바닥에 그어진 균열의 흔적. 심장이 다시 철렁 내려앉았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저는... 그냥 이대로 시험 볼래요." 나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작아졌다. 마치 스스로에게도 그 이유를 숨기고 싶은 것처럼.
아버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더 캐묻지 않고 감지기를 다시 내려놓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알고 있는 걸까. 어제 수련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왜 이렇게 마법을 피하는지.
대신 조용히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난 네 편이니까."
짧은 한마디였는데, 그 안에 담긴 무게가 어마어마했다. 아버지는 늘 그랬다. 캐묻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그저 내 뒤에 서 있어주는 사람. 그게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미안했다.
그 말이 고마웠지만, 동시에 무겁기도 했다. 아버지의 지지가 커질수록, 내가 회피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가 더 선명해졌으니까.
아버지가 실험실을 나간 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감지기의 파란 램프가 규칙적으로 깜빡이는 걸 바라보며,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마법 각인 회로를 심으면 감지 범위가 세 배 늘어난다는 아버지의 말. 그게 사실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면서도 손을 대지 못하는 게 지금의 나였다.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 이대로 과학 회로만으로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 아니, 통과보다 더 무서운 건 다시 마나를 다루다가 그날처럼 폭주해버리는 상황이었다. 그 상상만으로도 손끝이 저릿했다.
저녁을 먹는 내내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몇 번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건넸지만, 나는 짧게 대답하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식탁 위 국그릇에서 올라오는 김이 시야를 뭉개고 지나갔고, 나는 그 뭉개진 시야 너머로 어제의 균열 실금을 다시 떠올렸다.
밤이 깊어갈수록 집안은 조용해졌다. 부모님이 각자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다시 실험실로 내려왔다. 어쩐지 오늘 밤은 그냥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감지기를 다시 켜보았다. 파란 램프가 미약하게 깜빡이다가, 갑자기 붉게 변하며 경고음을 냈다.
삐이이이-
날카로운 소리가 조용한 실험실을 갈랐다. 나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화면에 뜬 수치가 순간적으로 폭증했다.
3구역 22퍼센트에서 순간 41퍼센트로.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감지기 고장이라 생각했지만, 창밖을 내다본 순간 알았다. 균열의 붉은 빛이 실제로 아주 잠깐, 폭발적으로 부풀었다가 다시 잦아드는 것을.
마치 뭔가에 반응하듯이.
나는 창가에 붙어 서서 하늘을 노려봤다. 붉은 빛은 이미 사라진 뒤였고, 균열은 다시 평소처럼 잠잠해져 있었다. 착각이었나. 아니면 감지기 오류였나.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났다.
계기판을 다시 확인했다. 41퍼센트라는 숫자는 화면에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3구역 수치는 다시 22퍼센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말 우연일까?
나는 그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한 채 감지기를 끝내 끄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뭔가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이 등줄기를 타고 서서히 스며들었다.
그리고 나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 감지기의 이상 반응은 마도원 관측실 서버에도 동시에 기록되고 있었다. 격물원 강습장 사고와 함께, 강여옥의 이름이 적힌 보고서 하나가 조용히 작성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아직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