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밥상은 결국 손도 대지 않은 채로 식어갔다.
아버지가 놓고 간 죽 그릇 옆에는 얇게 썬 과일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는데, 그 다정함이 오히려 목에 걸리는 느낌이었다. 사과는 갈변조차 되지 않을 만큼 신선했고, 죽 위에는 김이 아직 옅게 올라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정성이 들어간 아침상이었으나, 나는 그 앞에서 숟가락 하나 들 힘이 없었다.
오전 7시 42분.
시계를 확인하자마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오늘 마법 수련실에 가지 않으면 어머니가 직접 데리러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강여옥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상, 도망칠 구석은 없었다. 그 이름은 이 도시에서 재해와 동의어로 통했다. 아니, 정확히는 재해를 다스리는 자의 이름이었다.
나는 그릇을 내려다보다가, 결국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몸이 무거웠다. 어제 새벽에 본 그 붉은 균열이 아직도 눈꺼풀 안쪽에 잔상처럼 남아 있었기 때문일까, 손끝은 이불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미세하게 떨렸다.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봤다. 장례식장 상주 얼굴이 저기 있었다. 눈 밑은 퍼렇게 죽어 있었고, 입술은 하얗게 말라붙어 있었다. 이 상태로 마도원에 간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지만, 안 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최소한 내 발로 걸어가는 편이, 어머니 손에 끌려가는 것보다는 존엄이 남았으니까.
수련복을 대충 걸치고 현관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이게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몸살이 오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마도원 지하 수련실 문을 열자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벽을 따라 새겨진 각인문들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 중심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팔짱을 낀 채, 시계를 보는 것도 아니면서 마치 시계보다 정확하게 내 지각을 인지하고 있는 얼굴로.
"십칠 분 늦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멀리서도 다 느껴지는데, 굳이 그렇게 굼벵이처럼 기어 왔어야 했니."
멀리서도 감지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강여옥은 도시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눈을 감고도 안다는 사람이었으니까. 마도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그녀가 자기 딸의 심박수까지 감지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였는데, 나는 그게 우스갯소리가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대답 없이 수련복 소매를 걷어 올렸다. 손끝이 이미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걸 못 봤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아무 말 없이 바닥으로 시선을 돌리는 걸 보니, 오늘은 잔소리보다 실전이 먼저라는 뜻이었다.
"오늘은 3단계 각인문이다." 어머니가 바닥에 원을 그리며 말했다. "기초는 이미 끝냈으니, 실전 감각을 익혀야지."
실전이라는 단어가 귀에 박히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3단계 각인문은 실제로 소규모 술식을 발동시키는 단계였고, 그건 마나를 몸 밖으로 끌어내 회로에 흘려보내는 과정을 요구했다. 대가를 동반하는 진짜 마법의 첫 관문이라는 뜻이었다.
1단계는 감각을 익히는 단계였다. 2단계는 회로를 이해하는 단계였다. 그리고 3단계는, 실제로 몸속의 것을 밖으로 꺼내는 단계였다. 이론과 실전 사이의 벽. 그 벽을 넘는 첫날 사고를 내는 수련생이 부지기수라는 걸, 나는 마도원 선배들의 뒷담화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손을 여기 대라." 어머니가 원의 중심을 가리켰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무릎을 굽혔다. 무릎 관절이 바닥의 냉기에 눌려 서늘하게 저려왔다. 손끝이 원 안의 문양에 닿는 순간, 마나가 몸속에서 뭔가 뒤틀리듯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평소라면 이 정도 감각쯤 견딜 만했을 텐데, 오늘은 유난히 속이 울렸다.
속이 울렸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위장 안쪽에서부터 뭔가가 거슬러 올라오는 느낌이었고, 그건 마치 몸이 이 술식을 거부하고 있다는 신호 같기도 했다.
기분 탓이겠지.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원 안의 빛이 파랗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은은한 청색광이 손끝을 감싸며 위로 올라오는 걸 보면서, 나는 애써 호흡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하나, 둘, 셋. 숨을 세는 방식으로 집중하자던 훈련 매뉴얼의 조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눈앞에 승현의 손이 스쳤다.
먼지 속에서 뻗어 나온, 나를 향해 애원하듯 떨리던 그 손.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던 회색 먼지, 그 손이 닿지 못한 채로 허공을 움켜쥐던 마지막 순간까지, 전부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마치 눈꺼풀 뒤에 그 장면만 담긴 필름이 걸려 있는 것처럼.
"놔."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인지 마음속 말인지 구분이 안 됐다. 손끝의 마나가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파란빛이 갑자기 붉게 물들며 파직, 하는 소리를 냈다.
"하린." 어머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손 떼!"
늦었다.
원의 문양이 요동치며 균열 같은 실금이 바닥을 타고 번져나갔다. 마치 얼음판에 금이 가듯, 그 균열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뒤로 튕겨 나가듯 넘어졌고, 등이 벽에 부딪히는 충격에 숨이 턱 막혔다. 폐 안의 공기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붉은 섬광이 수련실 전체를 훑고 지나가며 벽에 걸린 각인문들이 일제히 깨진 유리처럼 파열음을 냈다. 쨍, 쨍, 쨍. 연속으로 터지는 파열음이 귀를 때렸고, 그 소리는 마치 유리 파편이 고막을 스치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정신을 차렸을 때, 어머니가 내 앞에 서서 손바닥으로 억제 술식을 펼치고 있었다. 손바닥에서 뻗어나온 은빛 결계가 균열의 확산을 막아섰고, 바닥의 실금은 서서히 잦아들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마치 그 자리에 작은 흉터가 남은 것처럼.
"이게 무슨..." 어머니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처음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는 강여옥이라는 사람의 목소리에서 흔들림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도시가 무너져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소문난 존재였는데, 지금 그 목소리가, 아주 짧게, 갈라졌다.
나는 대답할 힘이 없었다. 손끝이 아직도 타는 듯 뜨거웠고, 눈앞에는 여전히 승현의 손이 어른거리고 있었으니까. 손가락을 움직여보려 했지만 관절이 말을 듣지 않았고, 팔 전체가 마치 남의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바닥에 남은 균열 같은 흔적을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몇 초, 아니 몇 십 초쯤 됐을까.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내 심장은 더 빠르게 뛰었다.
그 눈빛에는 분노도, 걱정도 아닌, 뭔가 낯선 계산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풀지 못한 방정식의 답 하나를 우연히 발견한 사람의 표정 같았다.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야."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이 반응은... 사람의 각인 실패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의 각인 실패로 나올 수 없다는 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각인 실패라면 흔한 일이었고, 마도원 지하 수련실 벽에는 그런 실패의 흔적이 수십 개는 더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지금 이걸 그런 흔한 실패와 구분해서 말하고 있었다.
"어머니." 나는 겨우 목소리를 냈다. 목이 바싹 말라 있어서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바닥의 흉터 같은 균열 위에 손바닥을 가만히 얹었다. 그 손바닥 아래에서 은은한 빛이 다시 한번 반응하듯 깜빡였고, 어머니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다시 한번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창밖 저 멀리, 새벽에 보았던 붉은 균열이 아주 잠깐, 마치 응답하듯 깜빡였다는 것을,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