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과학소녀, 예언의 아이

1화

새벽 다섯 시, 청연성 상공에는 균열이 두 개나 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붉은 실핏줄이 번진 유리 같았고, 그 틈으로 흘러나오는 광채는 아름답다고 해야 할지 무섭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빛깔이었다. 방송탑에서는 삼십 분 간격으로 경보가 울렸는데, 그 소리에도 이제는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게 스스로도 소름 끼쳤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던가. 멸망에도 적응이 되다니, 청연성의 시민들은 참 대단한 족속이구나 싶어 실소가 나왔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청연성 위기경보 센터] 현재 시각 05:00, 3구역 균열 확장률 12%, 4구역 균열 확장률 9%. 격물원·마도원 합동 대응팀 출동 완료. 손목에 찬 통신구가 재난 문자를 반복해서 띄워댔다. 이제는 문자를 읽는 것도 지겨워서, 손끝으로 화면을 밀어 꺼버렸다.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그전 날에도 균열은 벌어졌고 사람들은 죽었으며 격물원과 마도원은 늘 한발 늦게 도착했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침대에 파묻혀 있는 게 전부였다. 12% → 15% → 17%. 화면을 꺼도 잔상처럼 숫자가 눈앞에 떠다녔다. 저 퍼센트가 늘어날 때마다 몇 명이 죽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알아버리면 그 숫자에 이름표를 붙이게 될 테고, 그중 하나는 분명 어제의 그 이름일 테니까. 어제 백승현이 죽었다. 짧게 뱉어내기도 벅찬 문장이었다. 3구역 붕괴 현장에서 잔해에 깔린 그 애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을 때, 나는 도망쳤다. 마법도, 과학도, 아무것도 쓸 줄 몰랐던 나는 그 손을 잡는 대신 등을 돌렸고, 그 대가로 지금 이 순간에도 손바닥에 남은 뜨거운 감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도와줘, 하린. 제발.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러붙어 있었다. 백승현. 격물원 입단 평가에서 늘 나를 낮춰보며 콧방귀 뀌던 그 재수 없는 애. 시험지 채점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내 이름 옆에서 피식거리던 그 낯짝을, 나는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정작 잊지 못하는 건 낯짝이 아니라 손끝의 감촉이었다. 그런 애가 죽어가며 매달린 상대가 하필 나였다는 사실이,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농담처럼 느껴졌다. 손을 뻗지 않은 이유를 나는 알고 있었다. 무서웠으니까. 그 잔해 밑에서 뭔가가, 인간이 아닌 것이 튀어나올까 봐. 그리고 그 무서움보다 더 무서운 건, 손을 뻗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의 무력함을 직접 확인하게 될까 봐. 결국 도망친 건 백승현을 버린 게 아니라 나를 지킨 거였다. 그 비겁한 계산이 지금도 명치 아래에서 뜨겁게 소화불량처럼 걸려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에 정신이 확 돌아왔다. "하린아, 일어났니?"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유진성. 청연성을 구원했다는 전설의 과학자이자, 자연 출생 제도를 부활시킨 개혁가이며, 지금은 그저 딸 걱정하는 아저씨일 뿐인 사람. "밥 먹자." "안 먹어요." 문 너머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그 정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절대 억지로 문을 열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대신 언제나 이런 식으로 말했다. "그래. 대신 접시는 그대로 문 앞에 둘게. 식으면 맛없으니까 아깝다는 생각 들면 먹으렴." 발소리가 멀어졌다. 아버지다운 방식이었다. 압박하지 않고, 그저 자리에 두는 것. 그런데 그 배려가 오히려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저런 다정함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문 밑으로 스며드는 냄새가 콩나물국인지 된장국인지 헷갈렸다. 어릴 때는 그 냄새만 맡아도 침이 고였는데, 지금은 속이 뒤틀리기만 했다. 사람이 사람 하나를 버리고 나면 밥 냄새조차 죄책감으로 바뀐다는 걸, 나는 어제 처음 알았다. 청연성은 성벽 안에 갇힌 인공 낙원이었다. 백 년 전, 세상이 무너지던 날 마지막 생존자들이 모여 이 도시를 세웠고,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성이 필요로 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전사, 학자, 마법사, 기술자. 그것이 청연성의 방식이었으나, 아버지는 이 제도에 반기를 들어 자연 출생을 복원시켰다. 그 결과 태어난 첫 세대가 바로 나였다. 그리고 오빠, 유하준은 그 이전 세대의 마지막 지정 출생자였다. 열세 살에 액화 지오를 발명해 붕괴하던 3구역을 되살렸고, 반란을 일으킨 장성 조덕수를 홀로 격퇴해 유폐계로 처넣었으며, 청연성을 침략한 뇌령 독고빈을 물리쳐 도시 전체를 구했다. 청연성 밖의 세계에서는 그를 초인이라 불렀다. 나는 그의 동생이었다. 그 사실이 얼마나 무거운 굴레인지, 사람들은 절대 모른다. 태어나자마자 나는 유하준의 동생이었고, 유진성의 딸이었으며, 그 두 이름 사이에 낀 세 번째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됐다.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오빠처럼, 아버지처럼. 그럴 때마다 나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웃었다. 초등 과정 졸업식 때도 그랬다. 담당 교관이 내 이름을 부르며 상장을 건네더니, 그다음 문장은 늘 똑같았다. 유하준 학생의 동생이시죠? 훌륭한 오라버니를 두셨네요. 나는 그때 상장을 받은 게 아니라 오빠의 그림자를 하나 더 받은 기분이었다. 격물원 입단시험이 나흘 뒤였다. 입단시험 D-4. 이 숫자가 통신구 화면 상단에 늘 떠 있었다. 격물원은 청연성 최고의 과학기술 기관이었고, 나는 그곳에 정말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버지의 명성 때문이 아니라, 오빠의 후광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나 하린의 이름으로. 그 하나만은 진심이었다. 그런데 마도원의 마법 수련 평가도 함께 통과해야 격물원 최종 입단이 확정된다는 게 문제였다. 과학과 마법의 융합, 마기테크 시대의 필수 요건이었으니까. 나는 마법에 재능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재능이 없는 게 아니라, 무서웠다. 마법에는 대가가 따르고, 그 대가를 치를 자신이 나는 없었다. 마도원 수련실에 처음 발을 들였던 날이 떠올랐다. 강사가 내게 기초 각인문을 그리라고 했을 때, 손끝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감각이 들었다. 마치 내 안의 어떤 부분이 뜯겨 나가는 것 같은. 다른 애들은 웃으며 그 감각을 짜릿하다고 표현했는데, 나는 그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수련실 문턱만 넘어도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격물원 게시판] 백승현 학생, 3구역 붕괴 사고로 사망. 명예 추도식은 이틀 후 대강당에서 진행됩니다. 통신구 화면을 다시 켰을 때, 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손끝이 떨렸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틀 후. 댓글창에는 벌써 애도의 말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익명1] 승현이 항상 열심히 했는데... 너무 안타깝다. [익명2] 3구역 진짜 위험하다더니 결국 이렇게 됐네. [익명3] 근데 그날 같은 조였던 애는 어떻게 된 거야? 걔는 살았다는데. 살았다는데. 그 문장 하나가 유독 크게 보였다. 마치 화면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통신구를 손에서 놓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이불 안에서 유독 크게 울렸고, 그 박동 하나하나가 백승현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 같았다. 도와줘, 하린. 제발. 도와줘, 하린. 제발. 그때까지 나는 다시 마법 수련실에 가야 했다. 간다고 해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창밖의 균열을 다시 바라봤다. 붉은 하늘이 천천히 벌어지고 있었다. 이불을 걷고 창가로 걸어갔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은 장례식장 상주의 얼굴과 다를 바 없었다. 눈 밑은 시커멓게 죽어 있었고, 입술은 핏기 하나 없이 말라 있었다. 저게 정말 나인가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유하준의 동생, 유진성의 딸치고는 참으로 형편없는 얼굴이었다. 균열은 새벽빛 속에서도 선명했다. 확장률 숫자는 여전히 오르고 있었을 테고, 격물원과 마도원의 대응팀은 여전히 늦게 도착할 테고, 누군가는 또 잔해 밑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 누군가가 다시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등줄기를 타고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이틀 후, 추도식장에 나는 무슨 얼굴로 서 있어야 할까. 나흘 후, 마법 수련실에 들어서면 나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 어느 쪽에도 자신 있는 답이 없었다. 나는 창틀에 이마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붉은 균열의 빛이 눈꺼풀 너머로도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 균열이 벌어지는 속도가, 내가 마법을 회피할 수 있는 시간과 정확히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더더욱 알지 못했던 것은, 이틀 후의 추도식장에서 내가 마주하게 될 얼굴이, 죽은 백승현의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누군가의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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