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수련실 바닥에 남은 실금은 다음 날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자리를 격리 술식으로 봉인해 놓고는, 별다른 말없이 나를 방으로 돌려보냈다. 봉인석이 자리 잡는 소리가 낮게 웅웅거렸는데, 그 소리가 마치 나를 향한 경고음처럼 들렸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훈육도, 잔소리도 없었다. 어머니 강여옥은 늘 뭔가 잘못되면 그 즉시 원인을 파헤치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밝혀질 때까지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오히려 그 침묵이 더 무서웠다. 강여옥이 말을 아낀다는 건, 뭔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실금이 갈라지던 그 순간을 몇 번이고 되짚었다. 손끝에 남아 있던 미세한 진동, 공기 중에 감돌던 탄내, 그리고 그 모든 걸 지켜보던 어머니의 무표정한 얼굴까지. 아, 조졌다. 확실했다. 뭔가가 잘못되고 있었다.
격물원 입단시험까지는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시험 대비를 위해 격물원 예비 강습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3구역 붕괴 사고 이후 임시로 4구역 외곽에 마련된 곳이었는데, 강습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보이는 하늘에는 여전히 그 두 개의 균열이 걸려 있었다. 붉은 틈은 어제보다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았고, 그 틈 사이로 비쳐드는 이질적인 빛이 거리를 온통 붉은 그늘로 물들이고 있었다.
확장률은 이제 3구역이 21퍼센트, 4구역이 13퍼센트였다.
18% → 19% → 21%.
숫자가 오를수록 사람들의 걸음도 빨라졌다. 방송탑에서 30분마다 울리는 경보음이 도시 전체를 채찍처럼 후려쳤고, 그 소리에 맞춰 사람들이 하늘을 흘깃거리며 종종걸음을 쳤다. 어떤 이는 아예 뛰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멈춰 서서 하늘을 향해 손을 모으고 뭐라 중얼거렸다. 마치 이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한폭탄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상점가는 평소처럼 문을 열었고, 가판대 주인들은 익숙하다는 듯 손님을 받았다. 사람은 결국 익숙해지는 동물이었다. 재앙도, 균열도, 종말의 냄새도.
강습장 입구에서, 낮게 웅웅거리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격물원 소속 견습생들이 균열 관측용 소형 마기테크 장비를 조립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손끝에서 파란 빛이 규칙적으로 점멸했다. 나는 그 옆을 지나가며 곁눈질로 장비를 살폈다. 처음 보는 정밀한 회로 구조였고, 견습생들의 손짓 하나하나가 신중했다. 그 신중함이 부러웠다. 나에겐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발을 헛디뎠다.
이유는 단순했다. 장비 코드에 발이 걸렸을 뿐인데, 넘어지면서 무의식적으로 팔을 뻗어 근처의 관측 장치를 붙잡았고, 그 순간 장치가 과부하를 일으키며 작은 불꽃을 터뜨렸다. 손끝에서 찌릿한 전류가 스치듯 지나갔고, 코끝에는 탄내가 확 번졌다.
"뭐야!" 견습생 하나가 소리쳤다.
또 다른 견습생은 황급히 장비 앞으로 달려가 전원을 차단하려 애썼다. 나는 얼른 뒤로 물러났지만, 장치는 이미 연기를 뿜으며 멈춰버린 뒤였다. 시커먼 연기가 가느다랗게 피어올라 허공으로 흩어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나는 말을 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관측 장비 하나가 고장 났을 뿐인 일이었는데도, 나는 그 순간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부터 시작된 떨림이 팔뚝까지 번졌고,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쭉 올라왔다. 어제 수련실에서 일어난 일과 지금 이 일이 겹쳐지면서, 내가 뭔가를 건드릴 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어긋난다는 착각이 들었으니까. 착각이었을까. 착각이었을 거다. 착각이어야만 했다.
"괜찮아?"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서다은이었다. 몇 년 전 이미 격물원에 입단한 선배로, 나보다 훨씬 여유로운 얼굴로 장치를 살펴보며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 이거 어차피 낡아서 늘 그래." 다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견습생들을 향해 손짓하며, "이거 셋째 주에도 한 번 터졌잖아, 기억 안 나? 얘 탓 아니야"라고 덧붙였다. 견습생들은 툴툴거리면서도 더는 나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그 웃음이 어쩐지 위로처럼 느껴져서, 나는 그제야 숨을 골랐다. 심장이 아직도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적어도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다은은 내 상태를 눈치챈 듯 강습장 뒤편 벤치로 나를 끌고 갔다. 벤치는 낡아서 앉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고, 그 위로 붉은 균열의 빛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졌다. 다은은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아 다리를 쭉 뻗으며 물었다.
"손 아직 떨려?"
나는 고개를 숙여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조금."
"뭔 일 있었어? 요즘 표정이 계속 안 좋던데."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지만 다은의 눈빛에는 재촉이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눈빛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승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꺼냈다. 3구역 붕괴 현장에서 도망쳤던 일, 그가 뻗었던 손을 외면했던 순간, 그리고 그날 이후로 마법 수련실 문턱을 넘는 것조차 두려워졌다는 것까지. 말을 하면서도 손끝이 계속 떨렸는데, 이상하게도 말을 다 끝내고 나니 그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너 원래 그렇게 냉소적인 애 아니었잖아." 다은이 낮게 말했다. "항상 뭘 숨기고 있는 표정이었어. 어릴 때부터 그랬어."
"그게 나야." 나는 벤치 등받이에 고개를 기댔다. 나무 등받이가 등에 닿는 느낌이 차가웠다. "오빠는 열세 살에 세상을 구했고, 아버지는 도시를 다시 세웠어. 나는 그냥... 그 옆에서 넘어지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도망치는 거고?" 다은이 조용히 되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하늘의 균열을 올려다보았다. 그 붉은 틈이 마치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보였다. 갈라지고, 벌어지고, 그러면서도 아무도 그걸 막지 못하는.
"승현 오빠가 손을 뻗었을 때,"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그냥 도망쳤어. 무서웠던 것도 아니야. 그냥... 내가 거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았어. 오빠 옆에 서 있으면, 내가 얼마나 초라한지 더 잘 보일 것 같아서."
"그건 초라한 게 아니라 비교당하는 거지." 다은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네가 초라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자꾸 너를 걔랑 비교하니까 그런 거야."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 어딘가를 콱 찔렀다. 나는 잠시 숨을 참았다.
"난 오빠도 아버지도 되고 싶지 않아." 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난 그냥... 하린으로 인정받고 싶어."
다은이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손바닥의 온기가 어깨를 타고 퍼져나갔다. 그 손길이 처음으로, 승현의 손을 떠올리지 않게 해주었다. 신기했다. 같은 손짓인데도, 이렇게 다른 온도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시험 사흘 남았지?" 다은이 화제를 돌렸다. "떨지 말고 그냥 네 실력만 보여줘. 격물원은 배경 안 봐. 실적만 봐."
"그거 진짜야?"
"적어도 겉으로는 그래." 다은이 어깨를 으쓱했다. "속으로 뭘 생각하는지는 나도 모르지."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웃은 것 같았다.
멀리서 다시 경보음이 울렸다. 30분이 또 지난 모양이었다. 하늘의 균열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착각이었을 것이다. 아니, 착각이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몰랐다. 그날 강습장에서 일어난 작은 사고가, 격물원 내부 감시망에 이미 기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기록이, 사흘 뒤 있을 입단시험보다 훨씬 먼저 나를 다시 그 붉은 균열 앞으로 끌고 갈 거라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