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가정부가 꿈인데 총애라니

4화

정하은은 청진기를 목에 걸고 조심스럽게 내 팔을 잡았다. 그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걸 눈치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병실 안은 조용했다. 창밖으로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침대 시트 위에 하얀 줄무늬를 그렸다. 그 빛 속에서 정하은의 손가락이 내 손목을 따라 미끄러졌다. "동공 반응 정상. 맥박도 안정적이네요." 정하은이 차분한 목소리로 소견을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자꾸 내 손목의 문양으로 향했다. 그녀는 소형 스캐너 같은 기기를 꺼내 문양 위에 가만히 갖다 댔다. 삐- 삐- 삐- 기기에서 낮은 경고음이 반복됐다. 정하은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건··· 처음 보는 형태예요."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국가 등록 문장 데이터베이스에도 없는 패턴이에요." 기기 화면에는 붉은 글씨로 [매칭 실패]라는 문구만 반복해서 떠 있었다. 정하은은 그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더니, 결국 기기를 내려놓았다. 한서연이 그 말을 듣고 표정이 굳었다. "등록 안 된 문장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러니까··· 성좌 계약일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정하은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성좌급 축복은 국가 헌터청에 즉시 보고해야 하는 사안이라···." "보고요?" 강정훈이 미묘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는 침대 옆 보호자 의자에서 몸을 반쯤 일으키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럼 우리 도윤이가 조사받는다는 소리예요?" 정하은은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아니에요. 일단 저는 병원 내부 의료 기록으로만 남길게요. 강씨 가문이니까···." 그녀는 말을 흐렸다. 강여옥이 팔짱을 끼며 낮게 말했다. "강씨 가문이니까 봐준다는 거예요, 아니면 강씨 가문이니까 더 위험하다는 거예요?" 정하은은 그 물음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서류철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그 짧은 침묵이 병실 안 공기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며 조금씩 이 세계의 구조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성좌급이라는 게, 이 세계에서는 그냥 좋은 게 아니구나.' '뭔가··· 감시당하는 조건이 되는 건가.' [상태창을 확인하시겠습니까?] 눈앞에 다시 알림이 떴다.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듯 생각했다. [강도윤 / 21세 / 헌터 등급: 미측정] [성별비: 여성 1 : 남성 5] [강씨 가문: 남성 출생률 이상치 보유 가문, 국가 보호 등급 지정] [특성: 모후의 총애 (성좌 '모계의 전쟁과 사랑' 축복)] 나는 그 문구를 읽으며 숨이 막혔다. '여성 1대 남성 5라니. 이 세계는 남자가 훨씬 많은 세계구나.' 숫자를 다시 봤다. 1대 5. 그냥 스치듯 넘길 숫자가 아니었다. 방금 전 간호사들의 낯빛이, 정하은의 흔들리던 눈빛이, 전부 이 비율 위에 겹쳐졌다. 그리고 그 사실은, 정하은의 아까 그 흔들리던 눈빛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형들 중 태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윤아, 너 상태창 볼 줄 알아?" "네, 방금 떴어요." 태호는 놀란 얼굴을 했다. 그는 침대 발치에 서서 팔을 뻗어 내 이마를 짚어봤다. 열은 없는 듯 손을 다시 내렸다. "보통 처음 각성하면 며칠은 상태창도 안 보이는데." 민준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 있었다. "그러네. 얘 뭔가 이상하게 빠르다." 윤재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는 침대 옆 간이 의자에 걸터앉아 발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이상한 게 아니라 대박이지. 성좌급 문장이면 국가에서 눈에 불 켜고 볼 텐데." 그 말에 한서연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윤재야,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윤재는 어깨를 슬쩍 움츠렸다. "아이, 누나. 나는 그냥 사실을 말한 거지···." 병실 안 분위기가 순간 무거워졌다. 강정훈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봤다. 그의 등이 유난히 굳어 있었다. 아무도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손목의 문양을 다시 내려다봤다. 두 개의 초승달이 등을 맞댄 모양. 왜인지 그게 나를 감싸 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양은 은은한 빛을 아주 희미하게 내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봐야 겨우 보일 정도의 빛이었다. 그때, 병실 문이 살짝 열리며 간호사 두 명이 들어왔다. 한 명은 서류를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링거를 확인하러 온 듯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걸음이 흐트러졌다. "어···." 서류를 든 간호사가 나를 보고 순간 멈춰 섰다. 종이가 손에서 살짝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촤르륵- 서류가 바닥에 흩어지는 소리가 병실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간호사는 그 종이를 주울 생각도 못 하고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다른 간호사도 링거대를 붙잡은 채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손끝이 링거대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저, 저기···." 그녀가 말을 더듬었다. "혈압 좀··· 재려고요." 정하은이 미묘한 표정으로 그 둘을 바라봤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평소보다 힘이 실려 있었다. "두 분, 나가서 서류 정리 먼저 하고 오세요." 간호사들은 아쉬운 듯 나를 몇 번이나 돌아보며 병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두 사람의 시선은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들 왜 저렇게 쳐다보지···?' '내가 뭐 이상한 표정 짓고 있었나.' 한서연이 한숨을 쉬며 내 곁에 앉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내 손목을, 정확히는 문양이 있는 자리를 살짝 덮듯이 잡았다. "도윤아, 앞으로 밖에서 조심해야 할 거야." "제가··· 뭘 조심해야 하는데요?" 한서연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걱정과 미안함이 뒤섞여 있었다. "네 문장이···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끌어당긴다니. 방금 간호사들이 그것 때문에···?' 머릿속에서 방금 전 장면이 다시 재생됐다. 종이가 흩어지던 소리. 링거대를 붙잡은 손. 말을 더듬던 목소리. 전부, 그냥 놀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정하은이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일단은 안정이 우선이에요. 검사 결과는 며칠 더 지켜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문장의 활성도가 벌써 이렇게 높은 건 드문 케이스예요." 그녀는 서류에 뭔가를 적으며 나를 살짝 곁눈질했다. 펜을 쥔 손끝이 아주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 시선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걱정과는 조금 다른, 뭔가 억누르는 듯한 눈빛이었다. '저 표정, 방금 간호사들이랑 비슷한데···.' '설마 정 선생님도?' 한서연이 그 시선을 눈치챈 듯 정하은을 조용히 불렀다. "정 선생님, 잠깐 나와서 얘기 좀 할까요." 정하은은 순간 흠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섰다. 그녀의 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문이 닫히기 직전, 나는 밖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를 들었다. "정하은, 너 지금 눈빛이 이상했어." 한서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미안, 나도 왜 그런지···." 정하은의 대답이 문틈 사이로 흐릿하게 들렸다. 그 뒤로는 목소리가 더 낮아져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다만 두 사람의 그림자가 문 밑 틈으로 잠깐씩 겹쳐졌다가 떨어지는 것만 보였다. 태호와 민준, 윤재는 서로 눈치를 주고받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정훈은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지 않았고, 강여옥은 팔짱을 낀 채 문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며 손목의 문양을 다시 매만졌다. 문양은 여전히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마치 내 불안을 알아챈 것처럼, 손끝이 닿는 순간 아주 살짝 더 밝아진 것 같기도 했다. '이 문장 때문에,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문밖에서는 여전히 두 사람의 목소리가 낮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 사이로, 나는 정하은이 아주 작게 내뱉은 한마디를 들었다. "···나도 모르게, 계속 눈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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