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창밖은 아직 컴컴했다.
천장에 핀 곰팡이 자국을 물끄러미 보다가, 나는 몸을 일으켰다.
반지하 방은 여름에도 서늘했다.
습기 때문이었다.
벽지 한쪽이 들뜬 자리에서 곰팡이 냄새가 올라왔다.
익숙한 냄새였다.
이 방에서 삼 년을 살았으니 이제는 코가 마비된 것도 같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 반이었다.
오늘도 새벽 알바였다.
나는 강도윤, 스물한 살, 호텔경영학과 3학년이었다.
말은 그렇게 쓰지만 학교보다 알바를 더 많이 다녔다.
등록금은 절반은 대출, 절반은 내 손으로 벌었다.
장학금이라도 받으면 좀 나을까 싶었지만, 성적을 유지할 시간조차 사치였다.
이불을 개고 방바닥에 앉아 스트레칭을 했다.
어깨가 뻐근했다.
어제 물류센터에서 무거운 박스를 나른 여파였다.
목을 좌우로 꺾자 뚝, 소리가 났다.
씻고 나와 냉장고를 열었는데, 남은 건 반쪽짜리 계란과 식은 밥이었다.
계란은 프라이팬에 그냥 익혔다.
기름이 튀어 손등에 작은 화상 자국이 생겼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거라도 먹었다.
배가 부르진 않았지만, 급한 대로 넘겼다.
식탁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접이식 상 위에서 밥을 먹으며 휴대폰을 봤다.
학교 공지가 하나 올라와 있었다.
'중간고사 일정 안내.'
가슴이 살짝 무거워졌다.
공부할 시간이 있을까, 걱정이 먼저 들었다.
편의점으로 걸어가는 길은 늘 같은 풍경이었다.
가로수 아래 쌓인 담배꽁초, 셔터가 아직 내려간 가게들.
그 사이를 지나며 어머니 전화가 왔다.
"도윤아, 밥은 챙겨 먹고 다니니?"
"네, 걱정 마세요."
나는 늘 그렇게 대답했다.
사실이 아니었지만, 어머니를 더 걱정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이번 달 생활비는 좀 늦어질 것 같아. 아빠 공장이 요즘 일이 좀 줄어서···."
어머니 목소리가 작아졌다.
전화기 너머로 아버지가 뭐라 말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괜찮아요. 저 알바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나는 애써 밝게 말했다.
"그래도 밥은 꼭 챙겨 먹어. 알았지?"
"네, 네."
어머니는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숨이 나왔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번 달 통장은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
잔액을 확인할 때마다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다.
0이 하나씩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원래 가정부가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집을 정성껏 돌보고, 살림을 매만지고, 작은 것 하나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일.
그게 내 진짜 꿈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유난히 살림에 관심이 많았다.
어머니가 빨래를 널면 옆에서 각을 맞춰 개는 법을 배웠고, 국을 끓일 때는 간을 맞추는 순서를 눈여겨봤다.
친구들이 게임을 할 때 나는 인터넷으로 청소 노하우나 다림질 방법을 찾아보곤 했다.
남들은 이상하게 봤지만, 나는 그게 좋았다.
정리된 방, 반짝이는 그릇, 깔끔하게 다려진 옷.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사관리학과 진학을 이야기했다가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크게 혼났다.
"남자가 가정부가 뭐냐. 남자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지."
그날 아버지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식탁 위에 놓인 젓가락이 딱, 소리를 내며 부딪혔던 것까지 기억이 났다.
나는 그날 이후로 그 꿈을 서랍 깊은 곳에 넣어버렸다.
대신 호텔경영학과를 골랐다.
서비스업이니 비슷한 맥락이라고, 나 자신을 애써 다독였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가끔은 그 서랍을 몰래 열어보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편의점에 도착하니 사장님이 이미 나와 있었다.
"도윤 씨, 오늘도 일찍 왔네."
"네, 안녕하세요."
나는 유니폼을 걸치고 계산대에 섰다.
사장님은 삼각김밥 진열대를 정리하며 말을 걸었다.
"요즘 대학생들 힘들지. 우리 딸도 알바한다고 난리야."
"다들 그런가 봐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다들 힘들다는 말로 위로가 되긴 하는 걸까.'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삼각김밥, 커피, 담배.
나는 기계처럼 바코드를 찍었다.
삑- 삑- 소리가 반복됐다.
한 손님이 카드를 두 번이나 잘못 긁었다.
"아, 이거 왜 안 되지."
"제가 도와드릴게요."
나는 조심스럽게 카드를 받아 다시 결제했다.
별일 아니었지만, 이런 작은 순간에도 손님이 편안해하는 표정을 보면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어쩌면 이게 내 성격인가 싶었다.
그날은 유독 손님이 많았다.
등교 시간대와 겹치면서 편의점 문이 쉴 새 없이 열렸다.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계속 남았다.
오전 아홉 시가 되어서야 겨우 숨 돌릴 틈이 생겼다.
나는 계산대 아래 놓인 물병을 꺼내 한 모금 마셨다.
목이 타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어머니였다.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괜히 또 죄송하다는 말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결국 받았다.
"엄마,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저 지금 알바 중이라···."
"알아, 알아. 끊자, 미안해."
어머니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 짧은 통화가 왜 그렇게 마음에 걸렸는지 모르겠다.
나는 계산대에 서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버스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다들 어딘가로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나만 이 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는데, 나는 그 몇 초도 못 내드렸구나.'
속으로 그런 생각이 스쳤다.
가슴 한쪽이 조금 무거워졌다.
오후에 학교 수업이 하나 있었는데, 결국 가지 못했다.
다음 알바 시간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카톡으로 조모임 팀원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괜찮아, 우리가 정리해서 보내줄게."
다행히 팀원들은 이해해줬지만,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일이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었다.
야간에는 물류센터 상하차 일을 나갔다.
몸은 고됐지만 시급이 조금 더 높았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박스들.
무거운 것부터 가벼운 것까지, 종류도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허리를 굽히고 펴는 동작을 몇백 번쯤 반복하다 보면 팔이 후들거렸다.
같이 일하는 아저씨가 물었다.
"학생, 대학생이라며. 이런 일 힘들지 않아?"
"괜찮습니다. 익숙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익숙해질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말하는 게 편했다.
일이 끝나고 밤 열한 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향하는 골목에 들어섰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빗방울이 사선으로 떨어졌다.
나는 우산도 없이 그냥 걸었다.
어차피 이 시간에 우산 챙길 여유도 없었다.
젖은 어깨가 서서히 무거워졌다.
'이렇게 계속 살면, 나는 언제쯤 내 꿈을 다시 꿀 수 있을까.'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었다.
발끝에 물이 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가로등 하나가 깜빡거리다 꺼졌다.
어둠이 조금 더 짙어졌다.
나는 발걸음을 조금 서둘렀다.
그때, 골목 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부아앙-!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심하게 튀었다.
뒤이어 사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위험해요, 비켜요!!"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골목 저편에서 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미끄러지듯 넘어지는 게 보였다.
타이어가 빗물에 헛돌며 끼익- 소리를 냈다.
헬멧을 쓴 배달원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듯 굴렀다.
그리고.
그 오토바이 뒤로, 커다란 트럭 한 대가 코너를 돌아 들어오고 있었다.
트럭의 헤드라이트가 빗줄기를 가르며 골목을 하얗게 비췄다.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인지, 미끄러지는 소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끼이이익-!
쇠와 아스팔트가 마찰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넘어진 배달원은 아직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