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다음 날부터, 우리 셋은 후원 별채에서 매일 밤 모였다.
별채는 원래 창고로 쓰던 곳이라 인적이 드물었고, 강옥영이 오래전부터 관리를 맡고 있어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하기에도 적당했다. 곰팡이 냄새가 은근하게 배어 있는 공간이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절박함을 어떻게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것인가.
말이야 쉽지, 실제로 해보니 이게 얼마나 어이없는 짓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의 공포를 계획적으로 조달해야 한다니. 세상에 이런 미친 훈련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첫날 밤, 나는 그냥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듯 조식을 시도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며 뱃속 깊은 곳의 만고진천비를 느껴보려 애썼다. 결과는 뻔했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강옥영과 난영이 옆에서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삼십 분 넘게 눈을 감고 있다가 결국 다리에 쥐가 나서 신음을 흘렸다.
"...아무것도 안 느껴져요."
강옥영이 팔짱을 낀 채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하지. 명상으로 죽음의 공포가 생길 리가 있나."
둘째 날, 숨을 참는 방식으로 시도했다. 처음엔 참을 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조여오고 목구멍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폐가 터질 듯한 고통이 왔지만, 그건 절박함이 아니라 그냥 괴로움이었다. 결국 숨이 트여 콜록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뱃속에서는 여전히 아무 기척도 없었다. 역시 반응 없음.
"이건 그냥 목 졸림 체험이잖아." 내가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난영이 물이 담긴 그릇을 내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도련님?"
"괜찮긴 한데... 이대로는 답이 없어요."
셋째 날, 난영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도련님, 혹시... 진짜로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설아가 죽어가던 순간처럼, 진짜로 무언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런 상황이 아니고선 만고진천비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명상은 가짜였다. 숨참기도 가짜였다. 몸이 속아 넘어갈 만한 진짜 위험이 필요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건 어때요." 내가 먼저 제안했다. 강옥영이 눈을 부릅뜨고 반대했다.
"제정신이야? 무공도 없는 몸으로 뛰어내리다가 뼈라도 부러지면 어쩌려고!"
"그럼 다른 방법 있어요?" 내가 되물었다. 강옥영은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별채 뒤편의 낮은 창고 지붕 정도라면 위험하지 않으리라 판단하고 시도해보기로 했다. 높이는 사람 키 두 배 정도, 잘못 떨어져도 죽지는 않을 높이였다.
지붕 위에 올라선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높이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지만, 무공이 전혀 없는 이 몸으로는 잘못 떨어지면 뼈가 부러질 수도 있었다. 밑에서 강옥영이 팔을 벌리고 서 있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고, 발밑의 기와가 삐끗하는 소리를 냈다. 나는 눈을 감고, 뛰어내리는 순간의 공포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려 애썼다.
뛰어내렸다.
허공에 몸이 떠 있는 그 짧은 순간, 뱃속에서 뭔가 미약하게 울렸다. 지난번보다 약했지만, 분명 있었다. 심장이 튀어 오르는 것 같은 느낌과 동시에, 뱃속 깊은 곳에서 미세한 진동이 퍼져나가는 걸 느꼈다.
땅에 떨어지며 발목을 살짝 접질렸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반응했어요! 방금, 확실히 반응했어요!"
강옥영이 놀란 얼굴로 달려와 발목을 살폈고, 난영은 안도와 걱정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나무랐다.
"발목이 이렇게 부었는데 지금 웃음이 나오세요?"
"이거 별거 아니에요. 진짜로, 방금 뭔가 느꼈다고요!" 나는 절뚝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발목을 흔들어 보였다. 아팠다. 그런데도 입꼬리가 자꾸 올라갔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이건 실험이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그날 이후 며칠간, 우리는 안전한 범위 내에서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찬물에 오래 몸을 담그기, 숨을 극한까지 참기, 급류 근처에서 균형을 잡으며 서 있기.
찬물에 몸을 담글 때는 입술이 새파랗게 질리고 이가 딱딱 부딪힐 만큼 떨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추위가 진짜 죽음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면 뱃속에서 미약한 파장이 일어났다. 급류 근처에서 발을 헛디딜 뻔한 순간엔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등줄기가 서늘해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반응이 왔다.
매번 정도는 달랐지만, 진짜로 죽음에 가까운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만고진천비는 미약하게 반응했다.
절박함이 클수록 반응이 강하다.
그 사실을 확인할수록, 명륜 각성까지 남은 건 얼마나 더 강한 절박함을 만들어내느냐의 문제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 결론은 동시에 두려운 것이기도 했다. 진짜로 죽을 뻔한 위기가 아니라면, 이 반응조차 얻어낼 수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이거 계속하다간 진짜로 죽을 수도 있겠어요." 난영이 젖은 수건으로 내 몸을 닦아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다들 조심스럽게 하는 거잖아." 강옥영이 대답했지만, 그 목소리에도 불안이 배어 있었다.
일주일째 되던 날, 낮에 예상치 못한 손님이 백가를 찾아왔다.
삼촌 백중헌의 아들, 백결이었다.
태범경 2중 충맥에 이른 그는 나보다 겨우 한두 살 위였지만, 이미 무공의 격이 완전히 달랐다. 그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하인들이 허리를 굽혔고, 그 위압적인 기운은 마당을 지나는 것만으로도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나는 마침 마당을 지나다 그와 마주쳤다.
"어? 이게 누구야." 백결이 나를 훑어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위아래로 훑는 그 눈길에는 경멸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아직도 명륜도 못 연 반쪽짜리 아니야?"
"할 말 있으면 짧게 해라." 전생의 기억 때문일까, 나는 예전만큼 이 자식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저 여유로운 표정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오, 말투가 좀 늘었네." 백결이 재밌다는 듯 팔짱을 꼈다. "한 달 뒤 가문 무술대회 있는 거 알지? 거기서 너랑 나, 한번 겨뤄봐야 하지 않겠어."
"..."
"솔직히 말해줄까? 너 같은 반쪽짜리가 그 자리에 서는 것 자체가 백가의 수치야." 백결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목소리가 낮아지며 한 걸음 다가섰다. "그날, 확실하게 정리해주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웃으며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살기는 진짜였다. 마치 이미 결과가 정해진 승부라도 되는 양, 백결의 표정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끝이 떨렸다. 이건 두려움이 아니라, 분노였다.
"기대하고 있어." 나는 그렇게만 대답하고 자리를 떴다.
등 뒤에서 백결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낮고 오만한 웃음소리가 한동안 귓가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한 달. 무술대회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그 안에 명륜을 각성시키고, 지존경까지 넘어서지 못하면, 저 자식은 정말로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이라는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뼈 몇 개쯔부러뜨려도 상관없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정말로 목숨을 걸고 겨뤄보자는 뜻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결과는 참혹할 게 뻔했다.
별채로 돌아와 강옥영과 난영에게 이 사실을 전하자,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강아." 강옥영이 낮게 말했다. 목소리에 평소보다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야. 백결이 저렇게 나온다는 건, 큰형님 쪽에서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일 수도 있어."
"큰형님 쪽에서요?" 난영이 미간을 좁혔다. "그럼 무술대회를 이용해서, 대놓고 없애려는 걸까요?"
"확실친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지." 강옥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명분도 확실하잖아. 대회 중에 벌어진 일이니 사고로 처리하면 그만이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 밤, 별채 지붕 위에 다시 올라섰을 때, 뱃속의 그 파장이 전보다 조금 더 뚜렷하게 느껴졌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뛰어내리기도 전인데, 백결의 그 비웃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뱃속이 진동했다.
분노도, 절박함의 일종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지붕 끝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한 달. 그 시간 안에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야 할지, 그리고 그 끝에 정말로 명륜이 열릴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