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연회장은 화려했다. 처마 끝까지 등불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붉은 비단 휘장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은은한 향내가 퍼졌다. 악사들의 가야금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마당 전체를 채웠다. 상 위에는 산해진미가 넘쳐났지만, 나는 그 어느 것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구석 자리였다. 기둥 그림자가 절반쯤 드리운 자리를 일부러 골랐다. 무재로 낙인찍힌 몸이니, 아무도 나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시선을 준다 해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도였다. 그게 오히려 편했다. 관찰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자리가 없었다.
나는 잔을 든 채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훑었다. 누가 누구와 눈짓을 주고받는지, 누가 누구의 잔을 채워주는지, 그 작은 움직임들이 곧 세가 내 서열과 파벌을 보여주는 지도였다. 술이 두어 순배 돌 때까지, 나는 이미 대여섯 개의 시선 궤적을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도현이 등장한 건 바로 그 무렵이었다.
키가 컸다. 나보다 반 뼘은 더 큰 것 같았다. 어깨가 넓었고, 걸음 하나하나에 여유가 배어 있었다.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마치 이 연회장 전체가 자신의 것이라는 듯한 걸음걸이였다. 그 뒤로 원로들과 시종들이 물결처럼 줄지어 따랐다.
눈이 마주쳤다.
그 눈은 웃고 있었다. 그런데 웃음 속에 아무 온기도 없었다. 마치 잘 만들어진 가면 같았다. 눈꼬리는 휘어졌지만, 눈동자 안쪽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웃는 얼굴로 사람을 재는 눈. 나는 그 눈빛에서 한 가지를 읽었다. 이자는 나를 이미 계산 안에 넣어두었구나. 다만 아직 셈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뿐.
나를 발견하고도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벌레 한 마리를 본 것처럼, 아주 잠깐 시선을 던졌다가 거뒀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무시당하는 것에는 이미 익숙해진 몸이었다. 그러나 익숙함과 무덤덤함은 다른 문제였다. 속에서 뭔가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오늘은 특별히 여러분께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도현의 목소리가 연회장에 울렸다. 낮았지만 또렷했다. 그는 마당 한복판으로 걸어나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주변의 공기가 눈에 띄게 무거워졌다. 등불의 그림자마저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그 변화를 온몸으로 느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손끝이 저절로 차가워졌다.
그의 손끝에서 기운이 형체를 갖췄다. 반투명한 기의 덩어리가 허공에 떠올랐다. 옅은 푸른빛이 도는 그 덩어리는 천천히 회전하며 존재감을 뿜어냈다. 지켜보던 원로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연체 육중천이라니, 저 나이에—"
"이씨세가의 미래는 이제 도현 공자님께 달렸구나."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도현은 그 박수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표정에는 겸손도, 오만도 없었다. 그저 확인 절차를 하나 끝냈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관찰자의 눈으로 지켜봤다. 확실히 강했다. 저 정도 기운을 다룬다는 건, 시스템이 준 용위 하나만으로는 아직 상대가 안 된다는 뜻이었다. 격차를 정확히 재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감정을 섞을 여유는 없었다. 부럽다거나 억울하다는 감정은 계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운의 크기, 회전 속도, 유지 시간. 나는 그 세 가지를 속으로 되뇌며 저장했다. 언젠가 저 숫자들이 쓸모 있을 날이 온다.
원로들 틈에서 한 노인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가 원로 중 가장 나이가 많다는 이 태사였다. 백발이 성성했고, 등이 살짝 굽었지만 눈빛만은 형형했다. 그는 도현에게 박수를 치지 않았다. 다른 원로들이 환호하는 와중에도, 그의 눈은 오히려 나를 향해 있었다. 마치 도현의 재주 따위는 이미 다 아는 것이라는 듯한 무심함이었다.
연회가 끝나갈 무렵, 그 노인이 슬며시 내게 다가왔다. 걸음이 느렸지만, 그 느림 속에 어떤 계산된 신중함이 배어 있었다.
"신우 공자." 낮은 목소리였다. "몸은 좀 어떠신가."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사님." 나는 예를 갖춰 답했다. 속으로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 사람이 진짜 아군인지, 아니면 또 다른 감시자인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목소리의 온도만으로는 부족했다. 말 속에 숨은 의도까지 읽어내야 했다.
"자네 아비가 살아 계셨다면, 오늘 광경을 어찌 보셨을지 모르겠군."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짧지 않았다. 이 노인은 도현의 편이 아니다. 적어도 완전히는. 아버지를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신호였다. 죽은 자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이 세가의 법도였으니까.
노인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되새겼다. 씨 하나가 심어졌다.
연회장 반대편에서는 젊은 원로 하나가 도현의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 눈빛에 야심이 그득했다. 말할 때마다 몸을 살짝 숙이는 태도, 도현의 잔이 비면 먼저 채워주는 손놀림. 저자는 도현의 편이 확실했다. 그것도 단순한 추종이 아니라,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세가 내부의 균열을 봤다. 표면적으로는 도현의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였지만, 그 아래에는 이미 두 개의 흐름이 갈라지고 있었다. 도현을 따르는 흐름과, 그렇지 않은 흐름. 물살은 아직 조용했지만, 언젠가는 부딪힐 것이었다.
[정보: 세가 내 원로 세력 분열 감지. 관련 정보 열람 가능.]
시스템의 알림이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그것을 조용히 확인하며 속으로 되뇌었다. 판을 짜야 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언젠가 저 균열을 파고들 날이 온다. 이 태사라는 이름 하나, 젊은 원로의 야심 하나. 오늘 밤 얻은 건 그 두 조각뿐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판은 조각부터 채워지는 법이었다.
연회가 끝나고 처소로 돌아가는 길, 밤공기가 유난히 차가웠다. 등불이 하나둘 꺼져가는 회랑을 지나며, 나는 오늘 본 모든 얼굴들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내 뒤를 따라붙는 기척이 느껴졌다. 발소리가 조심스러웠다. 나는 걸음을 늦추지 않은 채 조용히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 발소리는 하인의 것치고는 너무 절제되어 있었다. 보폭이 일정했고, 돌부리 하나도 밟지 않는 정교함이 있었다. 감시자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을 가진 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심장이 조용히 속도를 올렸다.
골목 끝에서, 그림자 하나가 내 앞을 막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