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문 앞에 선 것은 셋이었다.
가운데 선 자가 가장 컸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걸음마다 마룻바닥이 삐걱거렸다. 족히 여섯 자는 되어 보이는 덩치였다. 목이 굵어 상체가 그대로 담벼락 같았다. 눈매가 사나웠다. 개처럼 사람을 노려보는 눈이었다. 웃고 있는데도 눈은 웃지 않았다—저건 즐기고 있는 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저런 표정을 짓는 거다.
"어이, 신우 도련님. 오늘도 살아 계셨네?"
최견도. 들개. 유모가 말하던 그 이름이 이 남자일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목소리부터가 짐승 울음 같았다. 뒤에 선 둘은 그보다 체구가 작았지만, 눈빛은 비슷했다. 아무 죄책감 없는 눈. 이런 눈을 가진 자들은 명령만 있으면 사람을 죽이고도 저녁밥을 먹는다.
유모가 몸으로 나를 가렸다. 작은 몸이었다. 그 작은 몸으로 최견도의 덩치를 막아보겠다는 것 자체가 무모했다. 그럼에도 유모는 물러서지 않았다.
"공자님, 도련님은 아직 몸이—"
"비켜, 할멈." 최견도가 손을 휘저었다.
그 손짓 한 번에 유모가 밀려나 벽에 부딪혔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유모는 신음도 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이상하게도 화가 나기보다 먼저 계산이 돌아갔다—저 정도 힘이면 나는 한 대에 갈비뼈가 나간다.
이 몸의 근력을 처음으로 시험해봤다. 팔에 힘을 줘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아니 평범보다 못한 몸이었다. 오래 앓아누운 몸, 근육이라곤 실오라기만큼도 붙어 있지 않은 몸.
계산이 빠르게 돌아갔다. 저항하면 죽는다. 저항하지 않아도 맞는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최대한 약하게, 최대한 무력하게 보이는 것. 강한 척은 여기서 독이다. 약한 척이 유일한 살길이다.
"최… 공자님." 나는 목소리를 떨었다. 절반은 연기였고 절반은 진짜였다. 목소리가 갈라지는 건 연기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두려우니까. "어인 일로 다시—"
"어인 일이긴." 최견도가 이불을 걷어찼다. 발끝에 걸린 이불이 방구석까지 날아갔다. "도현 공자님이 걱정하시더라고. 형님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헛소리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어서."
도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직감으로 알았다—이 집안의 진짜 주인. 이 몸의 배다른 아우, 혹은 그런 위치에 있는 자. 지금 이 방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배후.
헛소리. 그게 뭘 뜻하는지 짐작이 갔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죽기 전 무언가 말했을 것이다. 억울하다든가, 다시 일어서겠다든가. 그런 말이 이자들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발악이, 지금 이 몸을 빌린 나에게 고스란히 빚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소인, 아무 말도—"
주먹이 날아왔다.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옆구리에서 불이 터졌다. 숨이 막혔다. 나는 바닥에 웅크렸다. 눈앞이 잠깐 캄캄해졌다가 되돌아왔다. 뒤에 있던 하수인 둘이 다가와 발을 얹었다. 등을 밟혔다. 어깨를 밟혔다. 발바닥의 무게가 그대로 뼈에 전달됐다.
이 몸이 먼저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 비명을 관찰자처럼 듣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고통 속에서 머리는 오히려 선명해졌다—공포는 몸의 것이고, 판단은 내 것이다. 죽지 않으려면 저들이 원하는 걸 줘야 한다. 저들이 원하는 건 굴복이다.
"공자님, 살려—"
"살려달라고?" 최견도가 낄낄거렸다. 웃음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도현 공자님이 그러시더라. 형님 목숨은 아직 안 거둬도 된다고. 대신 다시는 일어설 생각 못 하게 만들라고 하셨지."
다시는 일어설 생각을 못 하게. 그 말이 뜻하는 건 명확했다. 이건 경고가 아니다. 각인이다. 몸에, 뼈에, 새겨넣으려는 거다—너는 벌레라고.
하수인 하나가 발을 들어 내 팔을 힘껏 밟았다. 뼈가 어긋나는 감각이 들었다. 눈앞이 하얘졌다. 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숨을 헐떡이며 바닥을 긁었다.
그때였다.
가슴 한복판에서, 정확히는 단전이라 불리는 자리에서, 뜨거운 것이 확 치밀었다. 통증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뭔가 깨어나는 감각. 심장이 뛰는 자리와는 다른, 배꼽 아래 어딘가에서 올라오는 열기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 열기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형체가 아니었다. 마치 안개를 움켜쥐려는 것 같았다.
최견도가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뭐야, 죽어가는 벌레 주제에 눈빛은 살아있네."
그가 발을 들었다. 이번엔 머리를 노리는 발이었다. 발끝이 허공을 가르며 내려오는 궤적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여기서 저 발에 맞으면 진짜로 끝난다. 머리를 정통으로 맞으면 이 몸도, 나도 함께 끝이다. 몸을 굴렸다. 반사적인 움직임이었는데도, 몸이 이상하게 가벼웠다. 마치 누군가 내 관절을 대신 움직여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발끝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람이 귓가를 훑고 지나갔다.
"어라?" 최견도의 눈썹이 올라갔다. "제법인데. 죽기 직전에 발버둥은 다 배웠나 보지?"
그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하수인 둘도 양옆에서 조여왔다. 세 명. 나는 하나. 무공도 없고, 힘도 없고, 방법도 없었다. 방 안 공기가 다시 좁혀 들어왔다.
가슴속 열기가 다시 한 번 확 치솟았다. 이번엔 더 강했다. 마치 뭔가가 몸속에서 시동을 거는 느낌이었다. 단전이라는 자리가 이렇게 실체감 있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나는 그 감각에 집중했다. 지금 이 순간 붙잡을 수 있는 건 그것 하나뿐이었다. 세 명의 폭력 앞에서 내가 가진 유일한 패,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열기.
최견도의 주먹이 다시 날아왔다. 얼굴을 정면으로 노린 주먹이었다. 주먹이 다가오는 속도가 아까와는 다르게 느렸다. 시간이 늘어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눈앞에 낯선 글자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