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글자는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최견도도, 하수인들도, 심지어 유모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오직 나에게만 보였다.
[생명 위험 감지. 기운 적립 시스템, 강제 기동합니다.]
글자가 시야 한복판에 못 박히듯 떠 있었다. 이런 걸 볼 여유가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묻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 순간 주먹이 코앞까지 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었다. 정확히 반 뼘 차이로 스쳤다.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감각이 소름 끼치도록 선명했다.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몸속에서 뭔가가 대신 움직여준 느낌이었다.
—누가 대신 조종한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이 몸의 주인이 나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보유 기운: 0. 최초 지급 보너스 지급.]
[신급 환약 '금룡 양골단' 1개, 폭발 부적 3매 지급.]
머릿속에 물건의 위치와 사용법이 통째로 들어왔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지식처럼. 품속 깊은 곳, 원래 이 몸이 늘 지니고 다니던 헝겊 주머니 안에 있었다. 왜 지금까지 몰랐는지도 이해가 갔다. 이건 위기 상황이 아니면 존재조차 인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상한 시스템이었다. 죽음 앞에서만 문을 여는 금고 같은.
최견도가 헛손질에 화가 났는지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가 감히—"
목소리에 실린 분노가 진짜였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당혹감도 섞여 있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저자는 내가 반응할 수 있으리라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나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손을 품속에 넣었다. 부적 하나를 꺼내 쥐었다. 종이는 얇았지만 손끝에 닿는 감촉이 이상하리만치 무거웠다. 마치 그 안에 무언가 살아 있는 것이 웅크리고 있는 듯했다.
사용법은 간단했다. 기운을 불어넣고 던진다. 그뿐이었다.
간단하다고 쉬운 건 아니었다. 기운을 어떻게 끌어모으는지, 그 감각조차 낯설었다. 하지만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마치 수백 번 해본 동작처럼, 손끝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몸속의 열기를 끌어모았다. 조금 전 각성하려던 그 뜨거운 기운이었다. 단전 언저리에서부터 실처럼 풀려나온 열기가 팔을 타고 손끝까지 흘렀다. 부적에 그것을 밀어 넣자 종이가 붉게 달아올랐다. 마치 살아있는 숯덩이를 쥔 것 같았다.
"뭐야, 그거—"
최견도가 눈치챈 순간엔 이미 늦었다. 그의 눈동자가 커지는 걸 봤다. 두려움과 의문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행동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가 몸을 피하기도 전에, 나는 부적을 던졌다. 하수인 한 명의 발치에 정확히 떨어졌다.
폭음이 터졌다.
불덩이가 그자의 다리를 통째로 삼켰다. 비명조차 짧았다. 살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두 번째 부적은 남은 하수인에게, 세 번째는 최견도의 발치로. 순식간에 세 발이 날아갔다.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알고 던지고 있었다.
화염과 연기 속에서 최견도가 뒷걸음질쳤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방금까지의 오만함은 어디로 갔는지, 그저 도망치려는 짐승의 얼굴만 남아 있었다. "너, 너 이게 무슨—"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지막 부적이 그의 가슴팍에 명중했다.
폭발이 방 안을 뒤흔들었다. 창호지가 찢어지고, 서까래 먼지가 쏟아졌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굉음이었다. 연기가 걷혔을 땐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방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을린 벽, 부서진 문틀, 그리고 세 구의 시체. 조금 전까지 나를 죽이려 했던 자들이 모두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유모가 벽에 기댄 채 벌벌 떨며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엔 두려움과 경악, 그리고 낯선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나 자신도 방금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았다. 손끝이 아직도 뜨거웠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머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죽였다. 셋을.
담담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지금 여기서 흔들리면 안 됐다. 감정은 나중에 처리해도 늦지 않았다.
[기운 +30 획득. 살해 시 대상의 경지에 비례한 기운을 획득합니다.]
[정보 열람 가능: 이씨세가 내부 감시망 (기운 18 소모)]
감시망. 그 단어가 눈에 밟혔다.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것이었다. 나는 유모를 향해 손을 저었다. "아무 일도 없었소. 아무도 못 봤소. 알겠소?"
목소리를 낮추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유모가 무너지면 모든 게 끝이었다.
그녀는 넋이 나간 채로 고개만 끄덕였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는 건 아직 이성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기운을 소모해 정보를 열람했다.
[기운 18을 소모했습니다.]
[현재 보유 기운: 12]
순간 머릿속으로 지도 같은 것이 펼쳐졌다. 세가 곳곳, 정원 나무 뒤, 하인 처소, 심지어 내 방 서까래 틈새까지. 붉은 점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도현의 눈과 귀였다.
숫자가 많았다. 열댓 개는 족히 되어 보였다. 나는 그 붉은 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봤다. 정원의 늙은 향나무 뒤, 하인 처소 지붕 밑, 내 방 창문 바로 옆 서까래까지. 손바닥만 한 지점 하나하나가 전부 누군가의 눈이었다.
이미 사흘 전, 내가 정신을 잃고 있던 그 시간부터 이 감시망은 존재했다.
다시 말해, 도현은 처음부터 나를 완전히 죽이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 다시 일어서는지, 언제 진짜로 위협이 되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판을 짜놓고 기다렸다.
그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최견도의 습격조차 어쩌면 도현이 짜놓은 시험 중 하나였을지 모른다. 이 몸이 죽으면 그걸로 끝이고, 살아남으면 다음 수를 준비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방금 벌인 일도 이미 저 감시망 어딘가에 걸렸을지 모른다. 붉은 점 중 어느 것이 지금 이 방을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그저 최악을 가정하고 움직이는 수밖에.
나는 품속의 마지막 물건, 신급 환약이라던 '금룡 양골단'을 꺼내 들었다. 손바닥 위에서 은은한 황금빛이 돌았다. 크기는 작았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의 밀도가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이걸 먹으면 뭐가 달라질지, 시스템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도현의 눈이 사방에 박혀 있는 이상, 나는 최대한 빨리 힘을 키워야 했다.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다. 저 붉은 점들 중 하나가 지금 이 순간의 참상을 도현에게 보고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망설임은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 몸에 새겨진 위기를, 이제는 온몸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환약을 입에 넣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뜨거운 기운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삼키는 순간, 단전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듯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