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12년 학비, 최후의 전장

5화

그로부터 사흘 후, 우리는 임무를 마치고 학원으로 복귀했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 사흘간 제대로 잔 시간이 채 열 시간도 안 됐으니까. 요괴 사냥이라는 게 그렇다. 낮에는 걷고, 밤에는 불 지키고, 새벽에는 또 걷고.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굴러다니다 보면 어느새 학원 정문이 눈앞에 서 있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 정문 앞에서 나를 맞이한 건, 이미 학원 심사부에 제출되어 있는 강민호 대마법사의 보고서였다. 정확히는 보고서 자체가 아니라, 그 보고서가 학원 안에 퍼뜨린 소문이었다. 어떤 경로로 새어 나갔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심사부 직원이 입이 가벼웠던 걸까, 아니면 백승훈 단장이 어디선가 흘렸던 걸까. 그것까지 추적할 여력은 없었다. 나는 그저 기숙사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몇몇 학생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혀 있다는 걸 느꼈을 뿐이었다. "저기 쟤가 그 흰색 배지 얘기?" 하고 누군가 낮게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맞장구를 쳤다. "진짜야? 낙제 후보 다섯 명 중에서 혼자 흰색 배지 받았다는 거?" "그렇다니까, 저기 저 남학생." 시선이 이쪽으로 몰리는 게 느껴졌는데, 나는 그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며 식탁 자리로 향했다. 관심이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그 관심의 절반이 순수한 놀라움이 아니라 의심에서 나온 거라는 걸, 이미 겪어봐서 알고 있었으니까. "신경 쓰지 마" 라고 혜인이가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식판을 내려놓는 손짓이 익숙했다. "부러움 반, 못 믿는 마음 반이야." "못 믿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은데" 라고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웃음이 나온 건 그 상황이 재밌어서가 아니라, 예상이 맞아떨어지는 게 씁쓸하게 재밌어서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곧바로 확인되었는데, 식당 반대편 자리에서 차강윤이 몇몇 학생들에게 뭔가 설명하는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일부러 크게 말하는 건지, 원래 목소리가 그렇게 큰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요괴들이 좁은 병목에 몰려 있었고, 도훈이가 그 밀집된 지점에 화구를 던진 것뿐이야" 하고 강윤이 말했다. 손을 휘휘 저으며 설명하는 태도가 아주 여유로웠다. "위력 자체는 별거 아니었어. 운이 좋았던 거지, 뭐 대단한 실력은 아니었다는 얘기야. 오히려 위험한 순간엔 내가 앞에서 막았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병목에 요괴들을 몰아넣자고 결정한 것도, 그 타이밍에 정확히 조준해서 화구를 던지자고 판단한 것도 결국 나였는데, 강윤은 그 판단력을 아예 운으로 치환해버리고 있었다. 게다가 앞에서 막았다는 부분은 아예 새로 지어낸 서사였다. 그때 강윤은 뒤쪽에서 방어벽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 병목 앞에 나선 건 나와 성재였다. 뭐, 기억이 조금씩 미화되는 거야 인간이라면 다들 겪는 일이겠지만, 저 정도로 뻔뻔하게 재조립하는 건 재능이라고 봐야 하나. "차강윤 저러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라고 혜인이가 낮게 중얼거렸다. 숟가락으로 국을 뜨며 시선은 여전히 강윤 쪽을 향해 있었다. "신경 안 쓰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아. 저러다 지 발등 찍는 날이 올 거야." "그날이 언제쯤일지가 문제지" 라고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기가 쉽지 않았다. 학원 내부에서 귀족 출신 학생들이 갖는 발언력은 성적표 위의 숫자보다 훨씬 강력했으니까. 간단한 계산이었다. 강윤의 아버지는 왕국 남부의 영지를 다스리는 백작이었고,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학원 내 교수진 중 절반은 강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면 나는 성 밖 광산촌 출신, 아버지는 광부, 어머니는 좌판 상인. 이 배경 차이가 실제 실력 차이보다 훨씬 크게 작용한다는 걸, 나는 이미 여러 번 겪어서 알고 있었다. 강윤이 저렇게 이야기를 퍼뜨리면, 실제로 백승훈 단장과 강민호 대마법사가 작성한 보고서 내용보다 강윤의 말이 더 빠르고 넓게 퍼질 게 분명했다. 사실이 소문을 이기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었다. 그날 오후, 나는 학원 우체국에서 집에서 온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어머니가 보낸 것이었다. 우체국 창구 직원이 편지를 건네주며 내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심장이 조금 빨리 뛰기 시작했다. 편지 봉투를 뜯는 손끝이 살짝 떨렸는데, 그 이유는 언제나 같았다. 좋은 소식이 아닐 것 같다는 예감. 어머니는 나쁜 소식을 전할 때 항상 밝은 어투로 시작했고, 나는 그 패턴을 이미 몇 번의 편지를 통해 학습해버린 상태였다. [도훈아, 잘 지내고 있지? 아버지 어깨가 요즘 부쩍 안 좋아져서, 광산 일을 며칠 쉬셨단다. 걱정 말고 공부에만 집중하렴. 엄마도 좌판 잘 하고 있으니까. 졸업 시험 잘 치르고,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짧은 편지였는데, 그 짧음 속에 담긴 무게가 상당했다. 아버지 어깨가 부쩍 안 좋아졌다는 문장 하나가, 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무리해서 일을 해왔는지를 그대로 증명하고 있었다. 광산 일이라는 게 그렇다. 어깨가 삐끗한 정도로는 절대 일을 쉬지 않는다. 아버지 성격상, 뼈가 부러지지 않는 이상 광산에 나가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아버지가 며칠이나 일을 쉬었다는 건,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세 번쯤 다시 읽으며, 편지지 위에 적힌 어머니의 손글씨를 눈으로 따라갔다. 글씨체가 평소보다 조금 흐트러져 있었는데, 그것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신호였다. 나는 그 편지를 접어 품에 넣으며, 이번 임무에서의 성과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했는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최고 성과자라는 평가, 흰색 배지로 이룬 결과. 그건 나 혼자만의 성취가 아니라, 아버지의 어깨와 어머니의 갈라진 손등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였으니까. 졸업만 하면, 정식 마법사 자격증만 손에 넣으면, 그때부터는 내가 부모님의 어깨를 대신 짊어질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그 계산이 어그러지지 않게 하려면, 나는 지금 여기서 멈출 수가 없었다. 품 안에 편지를 넣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는 길, 창밖으로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오렌지빛 하늘이 학원 첨탑 위에 얹혀 있는 풍경을 보면서도, 머릿속은 여전히 광산과 좌판 생각뿐이었다. ...이럴 때 보면 나도 참 웃긴 놈이다. 흰색 배지 받았다고 잠깐 좋아했으면서, 편지 한 장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꼴이라니. 저녁 무렵, 학사관 게시판에 새로운 공고가 붙었다는 소식이 기숙사에 퍼졌다. 소식이 퍼지는 속도가 유난히 빨랐는데, 아마 낙제 후보라는 타이틀이 붙은 학생들에게는 모든 공고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혜인이와 함께 게시판으로 향했는데, 거기 붙은 공고 앞에는 이미 강윤과 성재, 유하늬가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유하늬가 먼저 나를 발견하고 살짝 눈짓을 보냈다. 표정이 평소보다 굳어 있었다. [특별 실전 평가 2차 임무 배정 안내: 낙제 후보 학생 전원, 강민호 대마법사 소대 재편성 후 재투입. 임무 지역: 북부 산림 요괴 대량 발생 구역. 위험도: 상.] "위험도 상이라니" 하고 혜인이가 그 문구를 읽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저번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거잖아." 목소리에 평소의 여유가 사라져 있었다. 혜인이도 이번 공고가 가볍지 않다는 걸 바로 알아챈 모양이었다. 나는 그 공고문을 다시 읽으며, 이번 임무가 단순히 성과를 인정받는 자리가 아니라 진짜로 목숨이 걸린 시험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북부 산림이라는 지역명부터가 마음에 걸렸다. 학원 내에서 도는 소문에 따르면, 북부 산림은 요괴 발생 밀도가 남부보다 세 배는 높다고 했다. 게다가 지형 자체가 복잡해서, 병목처럼 요괴를 몰아넣을 만한 지형지물을 찾기도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저번처럼 지형을 이용한 전략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옆에서 강윤이 그 공고를 읽으며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팔짱을 끼고 게시판을 내려다보는 자세에서, 위기감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위험도 상이면 오히려 좋지" 라고 강윤이 성재에게 말했다. "저번처럼 어중간한 결과 말고, 확실하게 우리 실력을 보여줄 기회잖아." "...위험도 상이라는 게, 실력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라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인데" 라고 성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성재는 항상 이런 순간에 가장 현실적인 말을 하는 편이었는데, 강윤은 그 말을 듣고도 별 반응 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살면서 위험 안 감수하고 뭘 이루겠어" 라고 강윤이 답했다. 자신감이라기보단 근거 없는 낙관에 가까운 태도였다. 그 말투에서 나는 뭔가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강윤은 이번 임무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재능과 귀족으로서의 자존심을 증명하는 데만 집중할 것이 분명했는데, 그런 태도가 병목 전투 때처럼 또 어떤 위기를 불러올지, 나는 이때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다음 임무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할 것이고, 그 임무에서 낙제 후보 다섯 명은 물론이고 강민호 대마법사 소대 전체가 처음으로 진짜 죽음의 위협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게시판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위험도: 상'이라는 세 글자가, 마치 나를 향해 경고하듯 종이 위에서 유난히 진하게 인쇄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옆에,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강윤의 웃는 얼굴이 자꾸 눈에 걸렸다. 저 웃음이 다음 임무에서도 저렇게 여유로울 수 있을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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